[스페셜2]
[인터뷰] 쉼표 하나, 그려보는 마음으로, <힘을 낼 시간> 하서윤
2024-12-19
글 : 이자연
사진 : 오계옥

해사하고 말간 미소 뒤편에 숨겨진 불안 증세. 귀여운 외모와 작은 체구에 가려진 흔들리는 목소리. 대중에게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끝내 은퇴한 아이돌 러브앤리즈의 ‘사랑’은 무척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다. 좀처럼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사랑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의 돌발 행동이 있기 때문에 잔잔한 수학여행이 자기 고백적인 자리로 거듭날 수 있다. 인물을 체화하기 앞서 배우 하서윤은 사랑이 충동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왜?’라는 질문을 먼저 건넸다. 그리고 그 답안지를 채우는 동안 사랑이 끌어안아온 오랜 외로움을 알아차렸다.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만이 그려낸 희망이 이 사랑 안에 담겨 있다.

- 사랑이는 속마음이 투명하게 보이지만 어떤 행동을 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를 어떻게 바라보았나.

사랑이와 나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모두가 성공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분야다. 그런데 사랑이는 제약 안에 갇혀 있기보다 계속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이라 그런 부분이 희망처럼 보였다. 사랑이를 두고 남궁선 감독님과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감독님은 사랑이를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거기서부 터 캐릭터 방향성을 잡아가려 했다. 아무래도 자기만의 슬픔과 쓸쓸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결핍을 토대로 사랑이만의 세계를 상상해보려 했다.

- 제주도 야외 노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사랑이는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행인이 자신을 비난한다고 착각해 테이블을 밟고 넘어가 육탄전을 벌인다.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액션신이다.

그 장면 찍을 때 정말 재미있었다. 상대 배우님이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하라고 하셔서 더 힘차게 연기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한번에 정확히 소화하려 했다. 테이블을 뛰어넘어 머리를 잡아채고 그 뒤로도 테이블 주변을 쫓아다닌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웃으면서 그만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예전에 오디션 준비를 위해 액션을 배운 적 있고 오랫동안 해동검도를 수련해와서 몸 쓰는 일에 별로 부담이 없다. 이런 지점이 원활한 촬영 환경을 만나서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이번 작품은 아이돌 업계 종사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지만 한창 불안한 길을 걷고 있는 20대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사랑이를 통해 어떤 점을 부각하려 했나.

<힘을 낼 시간>은 수학여행을 가보지 못한 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돌과 관련 산업의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갖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일단 사랑이를 표현할 때 이 지점에서 시작해보려 했다. 각자의 험준한 길을 걸어가는 청춘들이 힘든 나날을 유연하게 이겨낼 수 있길 바랐다. 그런 공감을 담아내고 싶었다. 나 또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주변에 얼마나 많은 내 편이 있는지 종종 잊을 때가 있다.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일어설 힘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 사랑이를 통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건 희망적인 의지였다.

- 사랑이는 영화 초반부터 정신적, 정서적인 어려움을 드러낸다. 그의 슬픔은 어디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가장 큰 부분은 아이돌 은퇴, 그룹 해체이지 않을까. 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친한 동료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그래서 수민(최성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사랑이를 연기하면서 사랑이에게 수민은 거의 부모님 같은 정신적 지주라는 생각을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왔고 수민이 리더여서 크게 의지했을 테니까. 그룹이 해체됐을 땐 수민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도 집에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나. 그런 행동을 녹여내려 했다. 수민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따르거나. 사랑이는 외로운 아이돌 생활 중에 수민의 따스함이 무척 좋았을 거다. 신호등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하거나 싸운 다음에도 재워주는 장면 같은 것들.

- 인터뷰를 하면서도 수민을 수민 언니라고 부른다. 진짜 사랑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함께한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연기이지만 진짜 사랑이의 마음으로 수민 언니를 따랐다. 또래여서 그런가. 더 화기애애했다. 셋이 온전히 수학여행을 떠나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알고 지낸 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몇년 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편했다. 내 인생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제주도 한달 살기였는데 <힘을 낼 시간> 덕에 제주에서 머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갑자기 날씨가 변하는 변수 외에는 큰 어려움 없이 원활하게 진행됐다.

-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사랑이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모든 소리를 차단한다. 어울리고 싶은 듯, 혼자 있고 싶은 듯 아리송하다.

이어폰을 끼는 건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랑이가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 힘을 낼 시간이야!”라는 말을 한 후부터는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여기서 큰 변화가 드러난다. 부정적인 생각을 스스로 차단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키워나가면서 더이상 부차적인 것, 외부에 있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가 성장해나가는 면이 너무 좋다.

- 사랑이의 사고로 세 친구는 급하게 귤따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귤따기, 어땠나.

내가 손이 작아서 귤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이걸 한손에 세개씩 들어야 하는데! (웃음) 귤이 막 떨어지고 난리였다. 농장 사장님이 직접 귤을 구워줬는데 정말정말 맛있었다. 귤을 구우면 당도가 훨씬 올라가더라. 촬영 끝나면 스태프마다 손에 귤을 한 봉지씩 안고 있었다. 그럼 또 숙소에서 다들 맛있게 까먹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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