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
2025-01-09
글 : 김사월

2024년 12월3일, 밤새도록 뉴스를 보다가 지쳐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너희 아빠 무서워서 우셨다.” 부모님이 계엄령을 경험한 세대였다는 것이 덜컥 실감이 나서, 우리 세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무서워서 저도 울컥했습니다. 이후 며칠간은 일상이라는 것이 박살 난 상태로 뉴스를 봤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12월7, 8일에 있을 연말 단독 공연을 기다리며 그걸 준비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이제 7일은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삶이 심각하게 침범당하는 이때에 우리는 준비해온 공연을 약속대로 해야 합니다. 공연팀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공연 당일, 대기실에서 곱게 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데 뉴스 소리가 들렸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 암전 속에서 기도를 했는데 무대팀 스태프가 기도하는 제 두손을 아프도록 꼭 잡아주었습니다. 오프닝곡이 끝나고 인사를 하니 관객석에 소복이 앉은, 힘든 티를 낼 수도 괜찮은 척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보여 저는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공연은 대통령 탄핵안 부결이 선포된 오후 9시20분에 마쳤습니다. 무대를 내려온 연주자들과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나눴습니다. 공연장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 관객들과도 인사를 했습니다. “언니, 저 오늘 여의도에 갔다가 공연장에 왔어요.” 파리해 보여 나도 모르게 잡아버린 그 작은 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웠습니다. 집회에 갔다가 도저히 시간이 안되어 공연장에 도착을 못했다는 SNS 메시지도 받았습니다. 공연을 마친 저는 미안하다는 메시지, 사랑한다는 말이 가득 담긴 손편지들과 함께 세상의 경악스러운 뉴스들을 계속 읽었습니다. 거실 소파에 몸을 옆으로 누인 채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저에겐 12월이 기다려지던 또 하나의 일정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친구의 음악극(이끼 콘서트 <우는 나와 우는 우는>, 12월4~14일, 신촌극장)에 낭독자로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여하는 날은 12월14일, 2차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날이었습니다. 12월4일부터 14일까지 공연 일정을 잡아둔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극장에 도착하니 그녀는 오히려 담담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아담한 극장무대에는 공연자와 낭독자를 위한 의자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원래 글을 쓰고 연극과 움직임을 만들던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어렵게 맺은 열매 같은 노래들을 모아서 들려줍니다. 수줍지만 정성스러운 기타 연주와 노래들입니다. 저는 그 옆자리에 앉아서 노래가 태어난 곳이라 유추되는 그녀의 글을 낭독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길바닥에서 목이 아프게 외치고 있을 사람들, 그곳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 부채감, 현실에 대한 분노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만 같은 지난 주말 속 나의 공연, 세상이 위급해질 때면 쉽게 미뤄지고 취소되는 내가 하는 일.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저는 제 옆에 앉은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70분만큼은 불안한 현재에 덩그러니 올려진 단 하나의 삶을 생각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았습니다. 되돌아오는 길을 차라리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깊고 깊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행위가 너무 아파서 무대조명이 어두워질 때마다 몰래 눈물을 흘려보냈습니다.

낭독을 하는 것은 좀 묘한 일이었습니다. 가사를 부연 설명하며 노래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거나 가수와 관객 사이를 이어주는 일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습니다.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내어 글을 읽고 있으면 그 이야기 속의 사건은 제가 겪은 일이 되는 듯했습니다. 순간이지만 나를 잊고 그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방금 제가 본 장면을 위로하는 듯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새까만 극장 속 핀라이트를 받은 그녀는 하얗게 빛났습니다. 어떻게 외웠을지 신기한 가사와 멜로디를 들으며 기타를 잡은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실감했는데,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 풍경은 제가 지금껏 무대에서 줄곧 해오던 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무대가 얼마나 신기하고 비일상적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너와 내가 이토록 숨을 쉬고 감각하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느끼게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모두 떠난 극장에 형광등이 켜졌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기념사진을 찍고 무대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짐을 실을 용달차가 올 것이고 그전까지 우리는 극장을 비워야 합니다. 그사이 누군가가 틀어놓은 실시간 뉴스 속에서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네다섯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이 일순간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까 하던 정리의 몸짓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의자와 방석을 치우고 음향 장비를 해체했고 사다리에 올라가 천장의 조명을 뗐습니다. 저는 얼마만큼 돕다가 이후 식사 자리에 가면 어색할까 봐 할 일이 있는 척 중간에 나왔습니다. 상쾌하다 못해 독하게 느껴지는 겨울 공기가 피부를 베어버릴 듯이 파고들었습니다. 아직 덜 어두워진 하늘엔 시리도록 하얀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