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X됐다.”(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의 첫 문장) <마션>은 유인 화성 탐사 임무 중 혼자 화성에 낙오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549화성일간의 ‘로빈슨 크루소’식 생존기를 다룬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에 이어 개봉한 이 작품은 앞선 우주 배경 영화와 달리 낙관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살려 차별화됐다. 캘리포니아 공학대학 출신 작가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과 비교할 때 화성의 중력 묘사(지구의 3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돌아다닐 수 없다), 소리 전달(소리를 전달한 매질, 즉 대기가 지구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비티>를 생각하면 된다) 등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영화적 허용을 한 일부 대목을 제외하면 과학적 논리도 잘 살아 있다. (다만 화성의 대기압이 지구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모래 폭풍 때문에 화성상승선이 쓰러진다는 초반 전개는 비현실적이다. 이는 원작자인 앤디 위어도 인정한 부분이다.) 우선 초반부 마크 와트니가 있던 나사 아레스 3호가 모래 폭풍을 마주친 뒤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유도 꽤 흥미롭게 설정돼 있다. 부러진 통신 안테나에 맞고 날아간 이후 생명유지장치가 오프라인됐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안테나 파편에 관통된 생명유지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이었다. 감압 상태에서는 1분도 버티지 못하지만 금속 파편과 응고된 피가 슈트에 난 구멍을 막아 내부 압력을 보존해준 덕분에 마크는 생존할 수 있었다. 아레스 4호가 화성에 도착하는 것은 4년 후. 주거 모듈은 31일용으로 설계됐고 식량은 비상시를 대비해 68일치가 준비돼 있다. 먼저 떠난 대원들의 식량을 합쳐서 최대한 아껴 먹으면 400일 정도 생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행히 마크는 화성에서의 생물학적 과정 연구를 담당한 식물학자였고 화성에서 3년치 식량을 재배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대략 4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 가운데 마크는 다소 위험하지만 현실 가능성 있는 발상을 떠올린다. “인류 역사에서 수소를 태워서 나쁜 일이 생긴 적은 없다.” 조크다. 어쨌든 우리는 물을 분리하면 수소와 산소가 나오고 수소와 산소를 화학반응시키면 물이 나온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다. 그런데 연료전지의 원리이기도 한 후자의 실행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지구상에 풍부한 수소와 산소를 이용해 물을 만드는 일이 쉽다면 물부족 국가가 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수소와 산소를 촉매(반응 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를 첨가해 반응시키면 물과 에너지가 발생한다. <마션>에서는 화성하강선에 남은 로켓 연료인 하이드라진에 이리듐 촉매를 첨가해 질소와 수소를 분리한 뒤 수소를 연소시켜 물을 만든다. 그런데 우주에서 불이 나면 다 죽는다. 때문에 불연성·난연성 소재만 가득한 이곳에 유일하게 불에 탈 수 있는 건 마르티네스가 두고 간 나무 십자가였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수소는 가볍고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자칫하면 산소와 반응할 때 산소 비율에 따라 폭발할 위험이 있다. <마션>에서는 마크 본인이 내뿜는 산소의 양을 고려하는 것을 깜빡해서 결국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다음 불연성 호일을 몸에 두르고 헬멧을 착용한 뒤 연소에 성공, 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마션>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것이 가능한가? 영화에서는 화성의 흙에 마크를 포함한 대원들의 인분을 거름 삼아 감자를 심는데 이렇게 할 경우 감자가 자랄 수 없다. 화성과 지구의 토양 구성은 다르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미생물이나 유기물, 영양소가 화성에는 없다. 이를테면 지구의 흙에서 감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뿌리혹박테리아(콩과 식물의 뿌리에 침입해서 뿌리혹을 만드는 세균. 이 균은 콩과 식물로부터 녹말을 공급받아 증식에 이용하는 반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질소화합물을 만들고 이를 뿌리에 돌려줌으로써 공생관계를 이룬다)를 비롯한 박테리아가 없다. 또한 인분을 바로 거름으로 쓸 경우 직접 접촉하는 식물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비료로 만드는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지구에서 가져온 흙을 함께 섞어 감자 재배에 필요한 박테리아가 화성의 흙에서 자라날 수 있게 한 뒤 여기에 물과 화성의 토양 등을 다시 섞는 절차를 반복한다. 영화에서는 수확한 감자를 바로 잘라서 심지만 그렇게 하면 싹이 나지 않는다. 통상 50~120일이 지나 싹을 틔운 후 심어야 감자를 번식시킬 수 있다. 소설에서는 싹을 틔운 후 감자를 재배한다고 묘사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됐다. 우여곡절 끝에 감자 재배에 성공해도 식량으로 쓰기에 부적합할 수 있다. 화성의 토양에는 인체에 해로운 과염소산염이 포함돼 있고 산화철 성분은 철분 중독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화성의 식물 재배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들은 화성의 기후환경에서 고구마, 딸기, 토마토를 키워낼 수 있는 수경재배 시스템(토양을 이용하지 않은 무토양 상태에서 작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지 고정시키고, 작물생육에 필요한 필수원소를 그 흡수비율에 따라 적당한 농도로 용해시킨 배양액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미국 유타주 소재 ‘화성 사막 연구 센터’에서도 50일간 비료 없이 토마토, 갓류 식물, 밀, 겨잣잎을 키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언젠가 열릴 우주 시대를 대비한 우주 식물 재배 실험은 1946년부터 시작됐고, 우주탐사를 갈 때 이들의 씨앗을 가져가 실제 재배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특히 우주정거장에서 밀, 배추, 유채, 상추, 심지어 사과나무를 재배하는 것은 이미 시도된 바 있다. 이같은 우주 식물은 우주인들에게 영양소를 보급하고 산소를 제공하며 지구로부터 식량 운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활발하게 연구될 전망이다. 재배 모듈이나 LED, 수경재배법을 이용한 우주 재배 실험이 전개 중이다.
아마 <마션>에서 가장 치명적인 과학적 오류 중 하나는 태양 플레어 등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방사선을 거의 없는 셈치고 진행한다는 점일 것이다. 방사선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보다 훨씬 견고한 장벽이 필요하다. 앤디 위어 역시 방사선 차폐를 간과하고 소설을 썼다고 인정하며 “방사선을 처리할 수 있는 소재를 발명했다고 치자”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마션>은 과학적 고증을 따져 영화적으로 더 재미있을 설정과, 과학적 고증을 생략해 영화적으로 매끄럽게 만드는 지점을 적절하게 판단해가며 정말 웃기고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우주영화를 탄생시켰다. 유희를 위해서라면 눈감아줄 수 있는 구멍과 탐닉하고 싶은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