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영상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는 무의식적인 소망, 세대적 염원이 담겨 있다. 한때 사람들은 냉철한 여성 캐릭터를 “걸크러시”라며 환호하고, 갈등을 극적으로 뒤집는 이야기를 “사이다 마신다”고 표현했다. 이 현상의 뒤편에는 여성 중심 작품이 가뭄이거나, 극적 카타르시스로 대리만족을 느끼길 원하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유독 눈에 많이 띄는 반응은 바로 “사람들이 정말 순하다”이다. 특히 90년대 초중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깜짝 카메라 영상 아래에는 붙여넣기를 한 듯 비슷한 반응이 쏟아진다. SBS <초특급 꾸러기 대행진>의 한 코너인 ‘깜짝 비디오’는 일상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분식집에서 계산을 하려 하니 라면 한 그릇에 2만원이라고 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아저씨는 “저 아가씨가 대신 계산할 거예요”라고 말하고 나가버린다. 또 물수건이 없다는 식당 주인은 뻔뻔하게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내어온다. 프랭크 콘텐츠는 당황한 사람들의 반응이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 경우엔 난색 다음의 행동을 더 주요하게 바라본다. 허허실실, 유순하게 웃으며 넘어가는 모습들. 자신의 속음을 밑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너그러운 태도들. 당시 기억이 희미하거나 그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세대가 꼬박꼬박 ‘그 시절’ 사람들이 ‘순했다’고 이름을 붙이는 데엔 아마도 그것이 희귀해진 요즘 세태에 대한 염증 때문일 것이다. 옥스퍼드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10인분 먹방과 온라인 노출 방송 등 유해 콘텐츠에 노출된 오늘의 문제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동시에 어떤 모순이 보이기도 한다. 정작 1020세대는 유물 같은 영상 속에서 순함을 찾지만 이 세대를 재현하는 많은 프로그램은 가엾은 소망을 읽지 않은 채 이기적인 20대만을 재현하기 바쁘다.
check point
‘깜짝 비디오’에 등장하는 이 시절 멋쟁이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엄청나다. 미니스커트에 야구잠바를 어깨에 걸친 젊은 여자와 헐렁한 양복에 흰 티셔츠를 입은 사나이. 이게 바로 90년대 디지털 여행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