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 싱> Sing Sing
감독 그레그 퀘다르 / 출연 콜먼 도밍고, 클라렌스 매클린, 폴 레이시
‘싱 싱’은 부드럽게 발음하는 느낌과 달리 뉴욕의 최대 보안 등급 교도소인 싱 싱 교정시설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영화 <싱 싱>은 분명 흥과 멋을 가지고 있다. 살인자란 누명을 쓰고 복역 중인 아티스트 존 디바인 G.(콜먼 도밍고)가 예술을 통한 재활 프로그램을 도입해 교정 내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관심 대상은 무장 강도로 들어와 감옥에서도 마약 거래를 일삼는 매클린(클라렌스 매클린)이다. 디바인 G.는 매클린을 무대 위의 배우로 거듭나게 하려고 애쓰고 결국 그 진심은 통하게 된다. <싱 싱>은 뜨겁고 감동적인 할리우드 감옥영화란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쪽에 가깝다. 재소자에게 실제로 연기를 가르쳤던 그레그 퀘다르 감독은 무대를 올리는 전 과정을 현실주의에 입각해 연출했다. 실화를 소재로 했으며 실제 복역한 경험이 있는 클라렌스 매클린이 각본에도 참여해 이야기의 사실감을 더했다. 콜먼 도밍고는 2025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영화음악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음악상, 주제가상 부문 예비 후보로 선정됐다. /이유채
기대되는 혹독함 -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감독 브래디 코베 / 출연 에이드리언 브로디, 펄리시티 존스
북미 영화 전문지를 <씨네21> 못지않게 열독하는 독자들이라면 2024년 하반기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의 영화를 심심찮게 마주했을 것이다. <브루탈리스트>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직후 영화제 내내 데일리 평점 1위를 지켰고 끝내 경쟁부문의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각종 미디어 전문지나 기관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순위권에도 매번 이름을 올렸다. 주연배우인 에이드리언 브로디 또한 “<피아니스트>를 넘어서는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 속에 현재 미국 각 지역 비평가 주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으로는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전후 미국 정착기를 다룬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미스테리어스 스킨> <퍼니 게임>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브래디 코베다.
영화의 제목인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을 활용해 건물을 짓는 건축 양식.-편집자)주의자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과 주인공의 직업에 걸맞게 1950~60년대 유행했던 다양한 브루탈리즘 건축이 관객들의 눈을 현혹할 전망이다. 영단어 ‘브루털’(brutal)이 ‘잔인한’을 의미하듯 <브루탈리스트>는 해외에선 R등급 관람가를, 국내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이는 성적 맥락과 약물 등의 직접적 묘사는 물론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라즐로의 30년 일대기 또한 억압과 핍박으로 점철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영화를 미리 감상한 해외 관객들은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잔인한 요소는 촬영 방식과 러닝타임이라고 전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50년대의 필름 메이킹을 복각해 비스타비전 카메라와 35mm 필름을 동원해 촬영했고, 개봉 당시 필름 상영이 가능한 극장에 한정하여 70mm 필름 프린트를 납품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맘때 작품이 으레 그렇듯 215분(3시간15분)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벤허> 등 1950년대의 대작 영화처럼 미국 개봉 당시 15분의 인터미션이 상영 도중 주어졌다. 홍보사에 따르면 한국 개봉판에도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인터미션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정재현
<화이트 버드> White Bird
감독 마크 포스터 출연 헬렌 미렌, 브라이스 가이저, 질리언 앤더슨
소설가 R. J. 팔라시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안면 기형 소년 어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원더>다. <원더>는 제이컵 트람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팔라시오는 <원더>의 출간 이후 어기의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아름다운 아이’ 연작을 썼고 그중엔 어기를 괴롭히던 소년 줄리안을 주인공으로 한 그래픽노블 <아름다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가 있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월드워Z>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이 이 그래픽노블을 <화이트 버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줄리안(브라이스 가이저)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피해자였던 유대인 할머니 사라(헬렌 미렌)로부터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전해 듣는다. 줄리안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역사의 참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본다. 21세기와 1940년대를 오가는 영화가 집중하는 시점은 1940년대이고, 1940년대의 어린 사라를 연기한 배우 아리엘라 글레이저와 사라의 짝꿍인 줄리안으로 분한 올랜도 슈베르트가 그리는 찬란한 우정이 공개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 <원더>에서 줄리안으로 출연한 배우 브라이스 가이저가 다시 한번 줄리안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정재현
<위 리브 인 타임> We Live in Time
감독 존 크롤리 출연 플로렌스 퓨, 앤드루 가필드
이를테면 <위 리브 인 타임>은 “사랑은 교통사고다”라는 비유를 홍상수의 <자유의 언덕> 방식으로 풀어낸 정통 멜로다. 이혼 후 실의에 빠진 토비아스(앤드루 가필드)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토비아스는 사고 가해자인 셰프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갖고 사랑에 빠진다. 예쁜 딸과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알무트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최루성 멜로는 <위 리브 인 타임>만의 독특한 편집 방식으로 특별해진다. 두 남녀가 나눈 사랑의 파편은 무작위로 뒤섞여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던져진다. 삶과 사랑은 언제 어떻게 제시되든 그 자체로 진귀한 것이라며 관객을 다독이는 듯한 영화적 연출이다. 영국의 밀레니얼세대 배우 중 가장 연기를 잘하는 두 배우가 각자의 전공 분야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가는데, 특히 완연한 병색 속에 삶을 향한 의지만은 잃지 않으려는 플로렌스 퓨의 기개가 코미디와 비탄 모두에 형형하게 살아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작은 스포일러 하나. <위 리브 인 타임>의 두 주연배우인 플로렌스 퓨, 앤드루 가필드와 <씨네21>이 나눈 단독 인터뷰가 개봉에 맞춰 게재될 예정이다. /정재현
<미키 17> Mickey 17
감독 봉준호 /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개봉 일정은 3월로 변동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을 때마다 우린 새로운 걸 배우고 인류는 나아갑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미키 17>은 2017년 <기생충> 이후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를 참고하자면 이렇다. 생존을 위해 머나먼 행성 니플라임을 개척한 인류는 모진 생활 환경과 미지의 생명체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따라 위험한 임무를 대신 처리해주는 ‘익스펜더블’이 떠오르고 미키는 그 일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한다. 절차도 간단하다. 임무에 투입되어 일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고, 복제되어 또 태어난다. 일곱 번째 복제를 마친 게 소설 속 미키 7이라면, 아마도 그보다 10번의 죽음을 더 맞이하고 다시 태어난 게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규칙은 복제 인간은 복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불행하게도 미키 17 눈앞에 미키 18이 등장한다. 섬뜩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한 <미키 17>은 농담 사이로 현실적인 맥락을 날카롭게 욱여넣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잘 죽고 내일 보자”와 같은 오묘한 인사말 사이로 호기심이 드리워진다. 2025년 3월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