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이 있을 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2처럼 거대한 축제 같은 속편은 더욱 그렇다. OTT 시장의 판도를 바꾼 공전의 히트작 <오징어 게임>의 후속작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진즉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신선한 신드롬을 불러왔던 속편을 넘어서기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몇배는 어렵다. 게다가 시즌2와 시즌3로 나뉘어 공개하기로 결정된 순간 <오징어 게임> 시즌2는 필연적으로 미완의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수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아쉬운 건 수많은 평가의 말로 둘러싸인 화제성에 비해 정작 작품 자체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다음으로 이어질 준수한 징검다리이자 흥미로운 놀이터다. 게임 속 숨겨진 의미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며 시즌3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황동혁 감독에게 힌트를 구했다. 놀이는 이제 시작이다.
-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된 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전세계를 돌며 홍보하느라 그간 정신없이 바빴을 텐데.
아무래도 시즌1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즌1은 초반에 동남아시아쪽 위주로 약간의 홍보를 하는 정도였고 공개 한두달 뒤 전세계적인 반응이 올라와서 뒤늦게 대응했다. 이번엔 시즌1의 성공에 힘입어 공개 전부터 유럽과 북미쪽에서 대규모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전세계 모든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2분짜리 티저 트레일러 후에 기립박수를 받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웃음) 하나의 콘텐츠가 이 정도로 사랑과 관심을 받는 건 그것만으로도 큰 영광과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이 정도의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는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국가, 문화권마다 반응이 달랐을 테고, 공개 직후의 반응과 한달여 지난 후의 반응이 또 다르다. 살짝 시간이 지난 지금이기에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기사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최근엔 대략의 반응과 분위기를 살피는 정도다. 크게 보면 핵심은 다 비슷하다고 느낀다. 다만 유럽이나 북미, 아시아, 한국의 반응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건 웃음이나 디테일한 부분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타노스(최승현)처럼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국내에선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걸 보며 과장된 묘사에 대한 수용 정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 “자본주의적 착취, 도덕성의 훼손, 계급 불평등 같은 현대 한국 사회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했다” (<버라이어티>)는 긍정부터 “기발함이 부족한 잔혹함의 반복” (<할리우드 리포터>)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까지 양측의 반응이 고루 쏟아졌다. 대체로 “신선함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볼만하다”는 평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걸 발견해내는 이들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시즌1 때도 마냥 호평만은 아니었고 두 번째 시즌인 만큼 새롭지 않다는 지적은 각오하고 있었다. 시즌1에서 유지할 건 유지하고 변주할 건 변주하면서 확장해나가는 게 시즌2의 최선이니까. 다만 한국에선 다소 부정적인 평들이 과표집되어 확대 재생산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라운드 인터뷰 때 한국 기자들에게 그런 섭섭함을 조금 드러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원래 있었던 호평들이 뒤늦게 소개되는 부분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아쉽다는 의견 중엔 아무래도 마무리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상업적인 판단으로 한 시즌 더 하려고 나눈 게 아니겠냐는 반응이 다수 있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오징어 게임>이 자본주의에 투항했다는 식의 반응도 기억에 남는다.
- 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하나의 이야기로 썼던 걸 시즌2, 시즌3으로 나눠 제작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엔딩의 완결성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었다. 처음 쓴 이야기가 워낙 길기도 했고 요즘 시리즈로는 열개가 넘는 에피소드가 다소 긴 호흡인 것도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1도 원래를 영화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시나리오를 쓸 땐 시리즈용, 영화용 등 상황을 구분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재미를 중심으로 인물과 상황을 확장하다보니 볼륨이 커졌다. 물론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갈 때처럼 시즌3까지 3년이 넘게 걸린다면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몇 개월 정도 텀은 오히려 기대와 호기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시즌을 나눈다는 원칙이 세워진 후에는 완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제일 먼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했는데, 성기훈(이정재)의 반란이 좌절되는 지점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다만 이 엔딩이 그렇게까지 파격적인지는 모르겠다. 주요 인물들이 다 죽어버리는 <왕좌의 게임> 속 ‘피의 결혼식’ 에피소드에 피하면 이 정도 충격은 무난하지 않나. (웃음)
- 시즌2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실패에 대한 서사다. 대중적인 오락물에서 이렇게 좌절의 순간으로 마무리한다는 게 놀랍다. 적어도 주제와 캐릭터, 두 가지 지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선 캐릭터 관점부터 묻고 싶다. 시즌3에서 기훈의 변화와 선택, 성장을 보여주겠지만 적어도 시즌2까지는 실패를 반복하다보니 주도적인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른 캐릭터들을 받쳐주는 역할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즌을 나눌 때 당연히 그런 우려가 있었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기훈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던, 인간성은 살아 있는 사람이 실패를 거듭하며 자각하는 과정이 주요 골자다. 기훈은 프런트맨(이병헌)을 추적하다가 실패하고, 게임에서 사람들을 살리려다 실패하고, 투표를 통해 상황을 바꿔보려다 실패하고, 시스템을 전복하는 무장봉기를 일으키려다 실패한다. 일련의 좌절을 겪은 후에 한 인간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중요하다. 다만 다음으로 도약하는 변곡점 직전에 멈추기 때문에 시즌2에서는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묘사하는 측면에선 한계가 있었다. 그걸 보완하려고 기훈의 다양한 일면을 주변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 가령 정배(이서환)는 목적에 매달려 시야가 좁아져가는 기훈의 잃어가는 인간성을 보완해주는 캐릭터로 불러왔다. 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얼굴을 여러 캐릭터에 분산시킨 셈이다. 그런 인물들간의 관계가 이어지는 과정을 거미줄처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핵심이기도 했다.
- 사실 기훈이 하는 건 거의 없다. 기훈이 최후의 1인이자 이야기의 주도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거의 운에 가깝다.
맞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기훈이 중요했다. 선의를 가진 평범한 인물이 이 상황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계획과 의도가 좌절될 때 한 인간이, 나아가 인간 군상이 어떻게 바뀌어나가는지를 보고 싶었다. 기훈과 프런트맨의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을 기대한 분들도 있겠지만 일단 기훈은 그 정도로 스마트하지 못하다. 어쩌면 프런트맨은 기훈이 다다를 수 있는 미래 중 하나다. 프런트맨은 참가자들, 특히 점점 목적에 잠식되어가는 기훈을 보며 어떤 확신과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프런트맨은 한 캐릭터 안에 여러 모습을 가진 다중적인 인물이다. 그는 상황을 통제하는 프런트맨이자 정체를 숨긴 참가자 오영일이고, 오징어 게임을 우승해본 인호이기도 하다. 이병헌 배우는 리액션을 할 때 인호, 오영일, 프런트맨 중에 어떤 자아로 대해야 하는지 매번 묻기도 했다. 반면 기훈의 다면성은 주변 동료들이 나눠 가진다. 정배, 현주(박성훈) 등 인물의 빈틈을 메워주고 때로는 과거의 인물을 불러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정배와 불침번을 서며 대화하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이번 시즌에선 웃음기나 인간적인 서사를 보여줄 장면이 적었는데, 자신의 과거를 슬쩍 이야기하는 정배의 모습을 통해 부피를 만들 수 있어서 특히 마음이 간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주의 게임을 응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가득할 때 모두가 한마음으로 성공을 응원하는 순간에서 게임 자체를 즐겼던 어떤 순수함이 전해지길 바랐다.
- 주제적인 측면에서 실패한 반란으로 마무리되는 건 지금 시국과 겹쳐 보이며 복잡한 마음이 든다. 감독님은 90년대에 대학을 다니시면서 액티비즘으로서의 영화의 위치 등에 대한 고민이 체화됐으리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시대정신이라고 해도 좋겠다.
평론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듣는 건 즐겁다. 얼마 전 이동진 평론가가 7일간의 천지창조를 <오징어 게임>에 빗대어 인간의 탄생으로 연결시킨 걸 들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어떻게 눈치채신 거죠?’라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웃음) 다만 <오징어 게임>은 의미가 앞자리에 있는 창작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중오락으로서 재미있을 것 같은 상황을 먼저 구상하고 개연성을 만들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순 있겠지만 그걸 위해 이야기를 짜진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동시에 창작자로서 내가 겪은 다양한 시대의 일면과 경험들이 반영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말씀하신 지점은 한국 시청자들이 더 내밀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3), <남한산성>(2017) 모두 같은 감독이 연출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장르도, 접근 방식도 다르다. 어쩌면 의도를 앞자리에 놓지 않고 이야기의 본질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기에 가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가장 대중적인 오락물에서 여러 각도의 해석이 가능한 부피를 만들어내는 비결이 있을까.
감사하다. 작품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내가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로 화두가 옮겨갔다. 90학번인 내가 겪은 민주주의는 광주와 87년 6월 항쟁을 겪은 위 세대와는 또 다르다. 민주주의가 마침내 제도권으로 수용되었을 때 그 열망이 어떻게 왜곡되고 좌절되는지를 목격한 세대다. 한국 사회는 긴 투쟁 끝에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보장되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고 97년 김대중 정권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도 이뤄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이들의 이상적인 세상이 진정 도래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왜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왜 이렇게 높은가. 민주적 혁명이 성공했는데 오히려 그때보다 불행한 세상이 되어버리진 않았나. 그런 고민들이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에 반영됐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힘이 있는가. 내 나름의 답이 <오징어 게임>의 인간 군상에 녹아 있다.
- 동시에 언급하신 것처럼 <오징어 게임>은 순수하게 ‘게임’의 재미가 핵심 콘텐츠다. 전세계 시청자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다양한 게임들이 나오는데, 게임은 어떻게 고른 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기준은 하나다. 재미있는 것. 볼거리가 다양한 것.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했던 그 시절 게임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재미가 피어날 거라 생각했다. 돈과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상상도 그중 하나다. 철저하게 재미를 중심으로 게임을 고르고 디자인했다. 어떤 욕을 먹어도 참을 수 있는데 재미없다는 소리만큼은 듣지 않겠다는 각오로. (웃음)
- 올해 마침내 <오징어 게임>이라는 대장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7, 8년 동안 쉰 적이 없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자유로웠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뭘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껏 찍은 작품이기도 하다. 시즌3에선 미처 완성되지 못한 기훈의 서사를 중심으로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훨씬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면서 깊이가 있는 이야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시즌2를 재밌게 보신 분들은 시즌3를 한층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고, 시즌2에 실망하거나 엔딩에 분노하신 분이 있다면 시즌3에서는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 보상해드릴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시즌2를 안 보신 분은 몰아서 볼 수 있으니 더 좋다. 재밌게 보신 분, 실망하신 분, 아직 못 보신 분들까지 볼 수밖에 없도록 후반작업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