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속이 시원하다”라며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공개 소감을 말하는 박규영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꽁꽁 숨겨왔던 그의 역할은 게임 참가자가 아닌 진행 요원. 북한에 두고 온 어린 딸을 찾는 게 삶의 목적인 명사수 강노을 역이다. 누굴 맡을지 모르는 상태로 오디션에 참가, 합격 뒤 주어진 예상 밖의 인물은 박규영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핑크가드가 시즌1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매력적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평소 밝은 성격인 박규영은 “기본적으로 마음 상태가 최저까지 가라앉은” 역할을 헤아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만큼은 차분히 일상을 꾸려나갔다. “단순한 무표정과 낮은 목소리로는 황동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노을이의 감정적 깊이를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건조하고 푸석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체중을 감량하고 액션스쿨에서 자세를 익히”면서 냉철하고 정확한 스나이퍼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 노을 캐릭터의 중핵인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심정”은 현재의 박규영에겐 최대의 난제였다. “모성애로 국한하기보다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재회하려는 사람의 절박함으로 넓히면서” 가닥을 잡아나갔다. 노을이 왜 차 안에서 생활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존재를 상실했을 때 책임감 강한 성격상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평범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심지어 방 한칸을 얻어 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노을이 참가자를 즉사시키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노을이 기훈(이정재)이 우승한 전 게임에서도 저격수로 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거기서 최소한의 인간적 윤리가 지켜지지 않는 현장을 목격한 뒤 잘못된 걸 바로잡고자 재참여했을 거다.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는 게 현재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리즈에 합류하면서 박규영은 ‘들뜨지 말자’라는 철칙을 그 어느 작품 때보다 자주 되뇄다. “데뷔 때부터 해온 내 중심으로 돌아오는 훈련”에 충실하면서 “일과 개인적 시간의 균형”을 지금까지도 유지해나가고 있다. 곧 그는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온다. 올해 공개를 앞둔 <길복순>의 스핀오프작 <사마귀>에서 킬러 역을 맡아 이번엔 제대로 얼굴을 드러낸다. “임시완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와 달리 상대역이라 충분한 호흡을 맞추면서 재밌게 촬영했다. 작품이 쌓여갈수록 현실과는 다른 세계관 속에서 집중하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 앞으로도 내가 어느 곳에 놓여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나아가고 싶다.”
강노을의 이 순간
2화에서 노을은 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탈북 브로커(최재섭)를 찾아간다. 딸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찾아봐 달라”고 말할 때 박규영의 눈은 강단 있게 빛나지만 얼굴은 결코 눈물로 얼룩지지 않는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오히려 감정을 자제하는 게 노을이답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하는 동안 예상치보다 덜어내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