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2 캐스팅 이유를 들은 박성훈은 적잖이 놀랐다. “예전 출연작인 KBS 단막극 <희수>를 보고 현주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하시더라. 극 중 평범한 가장 역할이었는데 말이다. 감독님이 내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꿰뚫어보신 것 같았다.”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조현주 역할을 맡은 뒤 감독과 함께 세운 첫 번째 원칙은 “절대 희화화하지 말 것”이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에 게이 역할을 여러 번 하면서 성소수자에 관해 비교적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실제 트랜스젠더 분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특히 전형적인 과도한 제스처를 삼가”면서 인물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게임 참가자들과 달리 주변인을 앞장서서 챙기는 현주는 “이타적이고 강인한” 역할로 간단히 정의되곤 하지만 박성훈은 그 너머를 봤다. “특히 후반 반란 때 현주가 총을 거침없이 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안은 채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숨겨진 레이어에 집중했을 때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현장을 찾았다. 5인6각 게임에서 드러난 ‘팀 조현주’의 단합력은 배우들의 실제 조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고. 금자(강애심)와 용식(양동근) 모자, 영미(김시은), 용궁 선녀(채국희) 역의 배우들과 긴 대기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손을 잡을지 서로 팔짱을 낄지, 어떤 타이밍에 아이 콘택트를 할지를 신 바이 신으로 맞추면서” 딱치치기부터 제기차기까지의 재미를 만들어나갔다. 팀원 중 영미는 현주에게 그랬듯 박성훈에게도 가장 애틋한 친구다. 그만큼 네모난 구멍으로 영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큰 감정”이 나와 스스로도 놀랐다고. “영미에게 ‘언니도 예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현주는 마음 깊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포스터에 얼굴이 크게 박히는 꿈”을 꾸었다는 박성훈은 <오징어 게임> 시즌2를 통해 그 꿈을 이루었다. 세계 곳곳에 걸린 현주 포스터에 “배우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50번째 작품을 마친 지금, 전재준(<더 글로리>)처럼 이름을 대체하는 캐릭터를 되도록 여러 번 만나는 새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장에서 우연히 슬레이트를 보았는데 거기에 2023년 10월 며칠이라고 쓰여 있더라. 순간 내가 연극영화과 03학번인 게 떠올랐다. 한 우물을 판 지 20년 만에 가장 주목받는 작품을 찍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고생해온 지난날을 잊지 않고 배우 생활에 임하겠다.”
조현주의 이 순간
7화에서 현주는 같은 편 참가자들이 총을 들고 헤매는 걸 눈치챈 뒤에야 앞에 나선다. 대장 노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팀 내 문제를 즉각 해결하기 위해 나선 모습에서 그가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갖췄다는 걸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현주의 순발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총기 설명 마지막에 ‘아시겠습니까?’란 대사는 내 아이디어다. 현주의 특전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함을 강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