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은 처음 대본을 읽고 몰락한 코인 유튜버 이명기를 악인으로 규정하려 했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으로부터 들은 의외의 코멘트는 그 생각을 바꿔놓았다. “임시완이라면 이 캐릭터가 착해 보일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 시청자들에게 명기가 그저 사람으로 느껴지기를 바라셨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이명기는 그에게 마지막까지 “거짓과 진심의 정도를 헤아려야 했던” 숙제를 남긴 인물이었다. 유튜브에서 스캠 코인을 추천했다가 모두를 빚더미에 앉힌 명기를 연기하기 위해 임시완은 “홀로 집에서 카메라를 켠 채 리딩방(주식/코인 등의 종목을 추천하는 커뮤니티.-편집자)을 하는 유튜버”가 되어보기로 했다. “가령 추천한 뒤 이미 80% 손실이 발생한 코인이 30% 정도 반등하자마자 ‘거봐, 내가 이 코인 오른다고 했잖아’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설정했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 덕에 명기의 주된 말버릇인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 특유의 필요 이상으로 교양을 차린 말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시탐탐 복수를 다지는 타노스(최승현) 일당부터 자신의 아이를 가진 김준희(조유리)까지. 생사만 고려하는 것도 벅찬 게임 속에서 명기는 누구보다 신경 쓸 일이 곱절이다. 임시완은 그런 명기의 상황을 “얄팍한 잔머리를 쓴 업보”라고 여겼다. “본인의 욕심이 화근이 되어 적을 만들고, 애인으로부터 잠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서 재회한 준희를 향한 감정만큼은 명기에게 진심일 수도 있다. “준희는 명기를 전 애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명기는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여전히 준희를 여자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게임에 들어오기 전 밝혀지지 않은 두 연인의 전사에 대해 “자주 티격태격하느라 주변에서는 헤어지라고 말리지만, 둘만의 기이한 주파수가 통한 것이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병헌 선배님의 정체를 알았을 때 너무 놀라 직접 전화를 걸었을 정도”로 <오징어 게임> 시즌1의 팬이었던 임시완은 직접 게임 속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특히 기묘한 자세로 화제가 된 제기차기 장면은 “이틀 전 급히 게임 종목을 바꾼” 감독님과 “원테이크로 성공하면 위스키를 얻어먹겠다는 내기”를 걸고 촬영한 장면이라고. <길복순>의 스핀오프작 <사마귀>을 통해 한번 더 넷플릭스와 인연을 이어갈 임시완은 다음에는 선한 얼굴이 되길 바라는 중이다. “악역이 배우로서 축복이긴 하지만, 정서가 누적되다 보니 언젠가 친구들이 일상생활에서 ‘너 그거 방금 <비상선언> 눈빛이었어’라고 말하더라. 이제는 말랑한 로맨틱코미디를 열렬히 원하고 있다.”
이명기의 이 순간
세 번째 게임 ‘둥글게 둥글게’가 진행된 6화. 종료 1초 전 넘어진 영미(김시은)를 대신해 방에 들어온 명기는 격노하는 현주(박성훈) 앞에서 억울한 듯 항변을 쏟아낸다. 임시완은 선도 악도 아닌 명기의 입체성 탓에 이 장면을 “가장 모호한 감정선”으로 꼽았다. “헛똑똑이지만 실리에 밝은 명기가 이토록 뻔뻔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그 변명을 진심으로 믿은 건지 나조차도 연기하는 내내 모호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