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이병헌
2025-02-04
글 : 임수연

“열 할리우드 작품 데려와 봐야 한 <오징어 게임>만 못하다. (웃음)” 이병헌은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 <지.아이.조2> <레드: 더 레전드> 등 할리우드영화들을 부지런히 찍었지만 해외에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 출연한 전 시즌과 달리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해외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야말로 시리즈의 메인 빌런을 넘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서 게임 관리자 프론트맨은 2015년 28회 우승자 132번 황인호였다는 설정이다. 시즌2는 프론트맨이 001번 참가자 오영일로 위장해 게임에 참가한다는 발상을 더해 시즌1이 던졌던 질문을 보다 날카롭게 확장시킨다.

- 시즌1에서 잠깐 등장한 황인호의 고시원 방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책과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이 있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나. 이후 프론트맨은 “밖은 불평등하지만 오징어 게임 안에서는 게임 앞에서 참가자들이 평등하게 경쟁하고 차별 없이 동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데 그가 이 논리에 설득되고 이를 주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형사라는 직업이 평범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형사들 중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영일이 성기훈(이정재)에게 자신이 오징어 게임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실제 인호가 과거에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감정을 처음 드러내는 순간이다. 절박한 사연을 가진 그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후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비관을 넘어 세상을 증오하고, 인간성은 우리가 흉내내는 것일 뿐 결국 인간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프론트맨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깥세상에 나가기 싫은 마음 때문이다.

- 시즌1에서 게임의 호스트였던 오일남(오영수)이 수행한 역할을 시즌2에서는 오영일이 하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형이지만 영일 역시 시즌1의 일남이 그랬던 것처럼 종종 진심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5인6각 게임을 할 때 환호하는 모습이 그렇다.

= 짧은 시간 안에 강한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에 영일로 설정된 후에는 함께 환희를 느끼고 두려워하고 긴장된 듯한 연기를 한다. 거기엔 예전의 인호의 모습도 녹아 들어가 있다. 동시에 게임의 모든 룰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여유가 있고 어떤 순간은 스릴과 위험을 즐기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연기라 해도 저렇게 포효하며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너무 신난 게 이상한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이 내게 가장 큰 숙제였다. 황동혁 감독님은 어두운 가운데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고, 나는 처음에 설득이 잘 안됐다.

- 결과적으로 설득이 됐나.

= 결국 감독과 그의 의도를 최종적으로 표현하는 배우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둘이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더라도 결론이 같아야 한다. 감독님이 인호도 영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저 상황에 자기도 빠져서 생각하고 즐기지 않을까 설명하며 좀더 감정을 표현해달라고 했다. 설득이 잘 안됐지만 해봤다. 확실한 건 그렇게 찍고 나서 모니터링을 하면 재밌긴 하다. 내가 설정한 대로 어둡게만 연기하면 되게 재미없었을 거다. 그럴 수 있겠다고 합리화하며 해맑게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쪽으로 설정을 잡아나갔다.

- 그런데 오영일은 너무 들키기 쉬운 이름 아닌가. 오일남 001. 오영일도 001. (웃음)

= 그뿐만 아니라 우유를 못 먹는다면서 양보하고 팽이를 돌릴 때 원래 왼손잡이인데 일부러 오른손으로 시도해 계속 실수하는 모든 것들은 기훈을 갖고 놀기 위한 장치다. 시청자들에게도 아슬아슬한 재미를 줄 수 있다. 시즌1을 다시 보면 그때도 프론트맨은 왼손만 쓰는데 예리하신 분들은 이것까지 찾아내더라. 감독님에게 그런 얘기도 물어봤다. 만약 프론트맨의 팀이 지면 죽는 건가? 병정들이 일부러 그는 쏘지 않는 건가?

- 만약에 병정이 조준을 잘못해서 영일이 대신 맞으면 어떡하나. (웃음)

= 그런데 인호는 죽음과 삶에 초연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본인이 죽고 사는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할 인물이 아니다.

-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지금 계급사회에서는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작품이다. 게임 주최자와 참가자는 각각 자본가와 노동자,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 속한다. 황인호는 두 집단을 오가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복잡하고 흥미로운 것 같다. 실제 연기할 때도 그 복잡성이 투영되어 있고.

= 사상과 진영으로 캐릭터를 접근하진 않았다. 다만 시즌2에서 O와 X의 대립이라는 장치를 새롭게 넣고 공정하고 공평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과 사람들의 분열이 이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오락적이면서 지금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문제들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황동혁 감독은 정말 천재적인 분이다.

- 영일은 처음에 게임을 계속 진행하자며 O를 선택했다가 X로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100% 성기훈을 속이기 위한 연기라기에는 은연중에 그의 신념이 맞기를 바란다는 진심이 투영된 결과라도 해석해도 되나.

= 시즌2의 마지막, 영일이 프론트맨 옷을 다시 입고 나오기 전까지 그의 가장 큰 임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여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편이 되고 심지어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까지 내주지만 기훈을 보며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결국 나처럼 될 텐데 왜 바보 같은 신념을 갖고 안달하는 거니? 하지만 그의 밑바닥에는 기훈처럼 신념을 지키며 살지 못했다는 시기 비슷한 감정도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시즌 전체를 보면 결국 네 말이 맞기를 나도 바란다는 응원의 마음이 아주 작게 존재한다. 드라마에 직접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 그래서 ‘둥글게 둥글게’에서 이미 들어와 있던 남자를 죽여버리는 잔혹함을 마주했을 때 놀란 시청자가 많았을 것 같다. 보는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영일을 믿는 순간이 있었을 테니까.

=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가장 하기 힘든 연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척 중요한 신이었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였던 인호와 잔혹한 프론트맨 그리고 정배(이서환)가 지켜보고 있으니 영일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혹은 동시에 보여야 했던 신이다. 가장 가까운 것은 과거 오징어 게임에서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던 황인호였을 것이다.

- <오징어 게임> 시즌2 자체가 황인호, 오영일, 프론트맨의 비율을 계산하며 찍어야 하는 현장이었겠다.

= 질문을 안 하고 넘어간 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신에서는 내가 인호의 모습을 많이 보여줘도 될까요? 여기서는 프론트맨의 느낌으로 쳐다보는 거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의견을 일치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 7화는 실패한 혁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훈은 반대파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영일은 더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화장실 학살 이후 게임 중단파가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밤에 상대를 먼저 공격하면 결국 게임을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훈은 주최측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영일이 보여주는 표정은 어떤 의미였나.

= 주최측을 공격하자고 할 땐 “어쭈? 바보 같은 놈.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의미냐고 묻자 기훈은 부정하지 않는다. 참가자로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이유는 기훈의 신념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그것을 목도한 순간이다. 영일의 미묘한 웃음은 “드디어 너도 신념을 무너뜨리는구나”라는 감정이 담긴 것이다.

- 영일이 “이것이 너의 영웅놀이의 결과”라면서 친구 정배를 잔혹하게 죽이는 신은 어떤가.

= 기훈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감독님에게 그런 질문을 했었다. “정배를 쏘기로 결정하고 죽일 때 인호도 마음이 아팠겠죠?” 감독님은 동의했다. 짧지만 같이한 시간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역시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자고 생각했다. 그때 프론트맨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나서 캐릭터의 감정이 궁금해지고 사람들의 해석이 갈리는 작품들이 있는 것처럼 총을 쏜 순간 영일의 감정 역시 의견이 분분할 듯하다. 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안쓰러워하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한 대로 그저 행동으로 옮겼을 캐릭터다.

- 오영일과 성기훈의 관계성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국내외에 많더라. 이정재씨와 함께한 작품이 무엇이 있나 거슬러 올라가봤더니 드라마 <백야 3.98>가 있었다. 그때 이후로 작품으로는 오랜만의 재회다.

= <백야 3.98>에서 직접 마주친 장면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1 때는 거의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합을 맞추며 촬영했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이정재라는 배우의 자기 관리에 깜짝 놀랐다. 나도 <지.아이.조> 시리즈나 <아이리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위해 몸을 만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정재씨는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성기훈 캐릭터를 위해 식단 관리를 했다. 체중 감량을 위해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물만 마시는 등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관리를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오랜만에 조우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촬영이 1월 중순에 끝났다. 원래 <도끼>로 알려진 프로젝트였는데.

= 내가 감독님한테 그랬다. 제목이 <도끼>면 관객이 안 든다고, 안 그래도 감독님 영화가 잔인하다고 하는데 “이번엔 망치가 아니라 도끼로 죽이나 보다”라고 반응할 거라고. (웃음) 반면 <어쩔수가없다>는 어떻게 제목이 저렇냐며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나. 영화는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대한 작품이 없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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