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레 영화 프레임 안에 서는 것들은 조명받을 자격이나 특권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멜로무비>는 요상하게도 영화로 다뤄지지 않는 작고, 평범하고, 멋지지 않은 것을 비춘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나이 터울 많은 형이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방구석에서 혼자 비디오를 보고 자란 고겸(최우식)은 불현듯 영화배우를 꿈꾼다. 같은 촬영장에서 막내 스태프로 일하는 김무비(박보영)는 똥강아지 같은 고겸을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처럼 고겸의 고백을 하릴없이 받아들인다. 이제 간질거리는 연애담으로 넘어갈 타이밍이지만 잠시 스톱. 고겸이 사라졌다. 일방적인 잠수, 이유 모를 부재. 그대로 5년이 흘렀을 땐 어엿한 영화감독이 된 김무비 앞에 GV 빌런으로 거듭난 고겸이 이글거리며 등장한다. <멜로무비>는 어긋난 발 박자를 뒤늦게 맞춰나가는 두 연인의 이야기를 비추는 듯 보이지만, 극 안에 성좌를 이룬 무수한 실패와 머뭇거림을 조명하면서 주변부 이야기로 동심원을 넓혀나간다. 끝내 자기 영화를 만들지 못한 아버지, 비디오 가게를 폐업한 사장, 영화 평론을 찾아보지 말라고 권유받는 중년의 영화감독, 한번도 제 삶을 즐겨본 적 없는 형. 영화가 결코 주인공 삼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동시에 땅에 붙은 현실적인 얼굴들도 여기 있다. 영화를 사랑하노라 말하는 아버지, 낡은 비디오를 인테리어로 활용한 사장, 새 세대의 감독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한 영화감독, 그리고 언제나 존재 자체로 형인 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그랬던가. 인생이란 게 열심히 살아도 체면 구길 일이 많다고. 딱한 오늘을 뒤로하는 강인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할까. 수치심 면역력이 높지 않은 세상에서 <멜로무비>는 자꾸만 뻔뻔해질 용기를 쥐어준다.
check point
어쩐지 재미있는 발견 하나! 4화 9분35초부터 김무비는 영화잡지 <필름25>를 뜯어본다. 얇고 투명한 흰 봉투, 반짝이는 커버 재질, 맨들거리는 속지에 익숙한 레이아웃까지. 이거이거 뭐야! <필름25>가 사실은 <씨네21> 아니야?! 누가 진실을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