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죽어도 좋아>, 죽여도 좋은가? [5] - 박찬욱의 격문 ②
2002-08-02

그렇다면 심의 자체를 아예 하지 말란 얘기냐,이렇게 물으신다면 저는 또 이렇게 대답하렵니다.

예!

하지만 지금 그런 논쟁 벌일 계제가 아니니까, 좋습니다, 심의합시다, 등급도 주고, 제한상영으로 몰아낼 영화는 몰아내야 한다고 치자고요. <죽어도 좋아>가 정말 그런 영화입니까? 여기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표현이 무슨 <동물의 쌍붙기>(주- 최근 등급위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또 하나의 영화)로 보이십니까? 외설적이라니요, 그 귀여운 로맨틱코미디가! 물론, 이것을 허용하면 앞으로가 문제라는 변명이 가능하겠지요. 너도나도 실제 섹스와 구강성교를 찍어오면 어쩌냐는. 문제는 뭐가 문젭니까, 그때그때 봐서 좋은 구강성교는 허하고 나쁜 구강성교는 막으면 되지. 그런 거 가리라고 있는 등급위 아닌가요? 작품성을 판단하는 기구는 아니라구요? 그것 참 무책임한 소리입니다.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은 영화의 작품성을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적어도 18세냐 제한상영이냐의 갈림길, 다시 말해 개봉이냐 밀봉이냐의 선택에서는 그렇습니다. 여태까지 여러분이 자랑삼아 이야기해온, ‘조항의 고지식한 해석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바로 그 얘기죠. ‘성기노출은 무조건 안 된다’면 뭐 하러 심의위원으로 양식있는 각계 지도층 여러분을 위촉하나요? 눈만 달렸으면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를? 결국 그건 뭔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뜻 아닌가요? 부디 다시 한번 잘 보시기를 권합니다. <죽어도 좋아>의 경우, 남성성기와 여성구강은 나무고 ‘사랑과 생명, 시간에 관한 성찰’이 숲입니다.

정작 여러분이 판단해서는 안 될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묘사했어야 했느냐’는 질문. 한 예술가가 자기 사상을 피력하는 데 있어 어떤 표현의 수단을 구사하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영역입니다. 오시마 나기사에게 성기를 클로즈업하지 않고도 영화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거나 프랜시스 코폴라한테 그 물소를 꼭 진짜로 죽여야만 했느냐고 항의하는 건 완전히 무의미할 뿐 아니라 대단히 무례한 일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당부드리건대, 차라리 제한상영가를 고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질문만은 절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과거에 검열의 최대피해자였으며 지금은 등급심의위원장이신 김수용 감독님께 감히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감독님이 그 자리에 계신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거기에는 모종의 ‘역사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감독님은 지금,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십니다. 저희 후배들은, 다른 사람 아닌 감독님의 손에 의해 오점이 찍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듣자하니 비영화인들에게만 맡겨두기 염려스러워 위원장직 연임을 원하셨다지요, 바로 그 인터뷰에서 하신 이 말씀, 너무 감동적이어서 저는 잊지를 못하겠습니다. “일찌감치 소아병적인 사고를 걷어치우고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를 줬으면, 국내 영화계는 지금 세계적으로 발전해 있을 것입니다.”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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