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타이틀 [4]
2002-08-24
글 : 김혜리

비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모델로 떠오르다

하나의 하위 장르를 창조하며 워킹 타이틀을 할리우드 파워 서열 안쪽까지 밀어올린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코미디는 머천트 아이보리의 유산영화와 사회드라마, 데이비드 퍼트냄과 리처드 아텐보로의 휴머니즘으로 대표되는 대처 시대 영국영화의 흥미로운 대립항을 형성한다. 영국 평단이 분석하듯 워킹 타이틀의 로맨스에서 과거는 아주 사적인 노스탤지어의 앨범 속에만 존재하며 미래는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수표다. 그래서 이들 영화 속의 30대들은 믿을 수 없는 과거나 미래와 연결된 이상주의적 인생관, 야심, 정치학을 창고에 처박고, 언제든 신뢰할 수 있는 패션, 축구팀, 팝음악, 취향, 우정을 숭배한다.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 규모가 불어나면서 지난 2000년 워킹 타이틀은 <빌리 엘리어트>를 기점으로 <네번의 결혼식…> 규모인 450만달러급의 ‘저예산’영화를 생산하는 라인으로 WT2를 설립, 특화했다. 로맨틱코미디는 <바로워즈> 같은 가족영화와 함께 매우 영국적인 스토리에 기초한 매우 보편적인 장르영화 그룹을 형성하며 워킹 타이틀의 오른쪽 날개로서 코언 형제, 스티븐 프리어즈, 팀 로빈스 같은 감독과의 지속적 관계로 이루어진 왼쪽 날개와 균형을 잡아나갈 전망이다. 나란히 영국 영화산업의 양대 지주를 형성했던 필름 포가 지난 7월 초 제작 포기를 발표한 지금 꾸준한 물량과 꾸준한 질의 영화를 생산하고 있는 워킹 타이틀의 진로는 어느 때보다 벤치마킹 대상으로서 영국과 비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나는 영화 하나를 만들고 그것이 걸작이기를 기도하기보다 온갖 영화를 만들어보고 매번 그들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에릭 펠너는 1997년 그레이엄 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워킹 타이틀이 그려온 궤적도 펠너의 직업적 신념과 공명하는 바가 있다. 사람들은 로맨틱코미디가 뻔하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뻔하다고 불리는 욕망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절실한 욕구라는 뜻이며 그만큼 내밀하고 다양한 판타지를 포괄하는 거대한 실체라는 뜻이다. 워킹 타이틀의 로맨틱코미디는 국경을 넘어 도시의 러브스토리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의 정서가 갈증내는 ‘사랑과 그 밖의 몇 가지’를 제대로 짚어냈다. 또한 영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추상적 정답으로부터 드라마를 연역해내기보다 문화적 특수성을 일단 잊고 작가가 가장 잘 아는 현실을 관찰하고 나와 타인이 함께 보고 싶어할 스토리와 드라마에 집중하면 창작자의 손길에 내재된 DNA는 불가피하게 영화에 문화적 서명을 남긴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워킹 타이틀이 가꾸어낸 로맨틱코미디의 영국식 정원은 할리우드의 규칙으로 할리우드 밖에서 게임하는 모든 영화인들의 샘나는 성공사례일 뿐 아니라 문화의 세계화 시대에 지역성이 살아남을 길을 고심하는 이들이 어떤 세미나보다 방문하고 싶어할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배우 휴 그랜트

기본적으로, 휴 그랜트(42)는 <네번의 결혼식…>에서 <어바웃 어 보이>에 이르기까지 휴 그랜트를 연기했다는 것이 세상의 중론이다. 실제로 휴 그랜트는 차기작이 또 로맨틱코미디라고 말할 때마다 다소 미안해하면서도 이른바 ‘진지한’ 영화에 대해 별반 욕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 만족만을 위해 연기하는 배우도 있지만 나는 연기가 누군가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다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랜트의 견해는 워킹 타이틀의 지향과도 매끄럽게 어울린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연극으로 단련된 폭넓은 소양을 갖고 있으면서도 굳이 재능의 지평을 넓히려고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는 한가로운 성격도 어딘가 스크린 속 그의 모습과 닮았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휴 그랜트는 훌륭한 코미디언이다. 어린이들의 틱 현상의 성인 버전 같은 그의 고갯짓과 경련, 어색한 미소가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의 어휘는 매우 풍부하며 타이밍 또한 절묘하다.

<네번의 결혼식…>과 <노팅 힐> 그리고 디바인 브라운 매춘 사건 당시 그의 경찰 사진은 <가디언>의 표현대로 안경으로 페이소스를 표현하는 데 있어 그랜트를 따를 배우가 없음을 증명한다. <어바웃 어 보이> 개봉에 즈음해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진 관객과의 문답에서 나온 극중 인물과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랜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게으르게, 인생목표와 인간관계에 대해 얄팍한 생각으로 보냈다는 점. 스페인에서 10주간 미녀들과 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수락한 적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현재 휴 그랜트는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주연의 클래식 스크루볼코미디에 오마주를 바치는 마크 로렌스의 감독 데뷔작 에서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는 변호사 샌드라 불럭을 온갖 시시껄렁한 의뢰로 짜증나게 만드는 백만장자를 연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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