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짜증나게 사랑스런 드라마다, 쿠쿡∼
민동현/ 영화감독·<지우개 따먹기> <외계로부터의 제19호 계획>
이상타. 좀체 이상타.나란 사람은 말이다. 정말 TV드라마를 안 본다. 아니 정확히 TV를 잘 안 본다. TV가 재미없다거나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가뜩이나 집안에서 비생산적 다소비적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라 빈둥거리면서 TV 앞에 죽치고 있기가 영 화면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근데 요즘 일주일 내내 난 TV를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거기다 수요일, 목요일에는 어떠한 저녁 약속도 잡지 않는다(뭐 사실 약속도 그리 많진 않지만…). 내가 그토록 TV 앞에서 움직이질 못하는 것. 그건 바로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 때문이다. 정말 우연히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본 첫회를 시작으로 지금의 16회까지 한회도 빼놓지 않고. 한회당 평균 3회 정도의 반복시청률을 기록하며 열심히 보고 있다. 수요일날 저녁에 본회를 보고나서 바로 다음달 아침이나 오후에 다시 케이블TV에서 하는 재방송 봐주고 나서 목요일 본회 보고 다시 다음날 케이블TV로 재방송 보고 토요일날 오후에 공중파로 2회 연속 재방송 봐주고 일요일 케이블TV 재방송까지 봐주면 정말 일주일 내내 <네멋대로 해라> 가득히 살 수 있다. 뭐 며칠 이렇게 살다가 이제는 아예 녹화해서 좋아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보곤 하지만 아무튼 이건 내가 생각해도 광적이다. 미친 것이리라!!!
그렇다면 뭣이 이리도 나를 이 드라마에 미치게 하는 것일까? 역시 뭐니뭐니해도 대사발이다. 거기다, 마치 배우들이 자신들의 일상사를 꺼내놓듯이 편하게 연기해내는 연기발. <네멋대로 해라>의 배우들은 정말 너무나도 편하게 연기를 한다. 그 점이 난 너무너무 좋다. 억지스럽지 않게 멋져보이지 않게 그래서 더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그들이 참 난 좋다. 아마 작가분은 어떤 배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 배우에 맞게 캐릭터를 구성하여 대사를 만든 것 같다. 뭐 작가분을 만난 적도 없기에 100% 물증없는 심증이긴 하다만, 어찌 대사들이 그렇게 배우들 입에 쩍쩍 들러붙냔말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8회였던가? 공효진이 이세창보고 말하길 “아저씨 은근히 느끼하시다….” 그 말에 받아치는 이세창의 명대사! “은근히는 무슨 은근히냐? 나 본 사람마다 한방에 느끼하다던데.” 오호랏. 이런 커밍아웃을. 이제 드디어 이세창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이세창의 평소 연기를 봐온 사람들은 다 안다. 그가 얼마나 느끼하며 썰렁한지. 그러나 이전의 드라마에선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지나가기 일쑤였지만 이제 그는 떳떳이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연기를 찾은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대담성. 이건 필시 작가가 배우들의 각 면들을 계산하여 만들어낸 대사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양동근의 연기나 연기가 물올랐다는 이나영이나 일용엄니 이후 이런 구수한 대사 소화력은 첨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효진까지 모두 정말 자신의 모습에서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연기와 대사들을 보여준다.
이제 어느덧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네멋대로 해라>!! 지난주까지만 해도 으레 어떤 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번주 15, 16회를 보니 작가분 공력이 예사롭지가 않은 듯싶다. 어찌 그렇게 죽는다는 말을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그리도 묘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놀랍다. 이 외계스러운 드라마 한편에 난 정말 뻑가고 말았다. 자! 앞으로 남은 4회 동안 난 또 얼마나 뻑가야 하는 것일까남? 정말 짜증나게 사랑스런 드라마다. 쿠쿡∼.
미운 짓 하는 귀여운 녀석들!
성기완/ 음악평론가
나는 엄밀히 따지자면 (비록 작은 일을 맡은 것이긴 하나) 이 드라마의 제작진의 일부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전경(이나영)이 키보드 주자로 있는 ‘미완성 밴드’가 인디밴드로 설정되어 있고, 그 밴드가 만들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음악이 사실은 내가 소속된 인디밴드인 ‘3호선버터플라이’의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분들처럼 편하게 드라마 ‘시청기’를 쓸 입장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나 역시 이 드라마의 팬 중 한 사람이다. 제작진의 일부이며 ‘팬’인 나는 그 두 입장을 오가면서, 약간은 팔이 안으로 굽는 걸 감수하면서, 그동안 겪은 일들과 시청기를 내 멋대로 섞어서 써보겠다.
우선적으로 이 드라마의 힘은, 작가가 막 나간다는 데서 나온다. 내가 보기에 인정옥이라는 작가는 막 나가는 작가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삐딱하게 설정되어 있고 그들의 집안은 다 콩가루다. 이년, 저년, 이 새끼, 저 새끼, 대사는 거칠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렇게 막 나가는 인물들을 밉지 않게 그리는 재주가 있다. 밉기는커녕 귀엽기까지 하다. 작가 자신이 좀 그렇기도 한 것 같다. 스턴트의 액션장면, 밴드의 공연장면 같은 설정이 따로 배치되어 있어 이야기가 일상성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계속 볼거리가 등장한다는 것도 재미난 대목이지만, 그거보다 더 재미난 것은 ‘미운 짓 하는 귀여운 아이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막 나가는 쪽이 작가라면, 거기에 따뜻함의 옷을 입히는 것은 감독쪽이다.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그리기는 어떤 의미로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인생에서 따뜻함을, 희망을 건져올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처음에 박성수 감독을 만난 것이 6월쯤이었던 것 같다. 그는 드라마에 ‘인디밴드’를 설정해놓고 어떤 밴드의 음악이 자신의 드라마에 적합한지 물색하고 있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이미 그런 소문을 들은 수많은 ‘유사 인디밴드’가,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매니저가 자기들 음악을 좀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성수 감독은 실제 인디밴드의 음악을 쓰고 싶어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밴드 멤버들은 그렇게 드라마에 자기들 음악이 쓰이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잘 몰랐고 지금도 실은 그것이 어떤 상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드라마라는 것이 하나의 작품이기보다는 엄청난 이권의 결합체라는 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엄청난 영향력의 상품 전시관에 자기 물건을 들이민다. 드라마 감독 역시 그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참 힘들다. 그런데 박성수 감독은 달랐다. 우리 밴드의 음악을 썼다는 것 자체가, 박성수 감독이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이 드라마의 힘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그와 같은 ‘마음’에서부터 나온다고 본다. 화려한 물건들과 배우들, 한마디로 온갖 돈되는 것들, 시청률 높일 만한 것들로 개떡칠을 하는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네멋대로 해라>는 비교적 그와 같은 ‘떡칠’을 애초부터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 태도로부터 사물을 보는 어떤 시각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리라는 점을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그 잘난 물건들과 잘빠진 배우들과 번지르르한 음악이 아니라 비교적 ‘있는 그대로’를 보고 또 보여주려는 시각 말이다. 그와 같은 시각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제일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최고의 삼각관계 드라마 아이가...
김정영/ 프로듀서, <우렁각시> 기획
셋이란 숫자는 참 절묘한 숫자다. 혼자인 것 같으면서도 여럿이다. 그리고 공존한다, 아니 공생한다. 두명씩 편먹고 헐뜯기도 하고 프라이버시 지키면서 놀 수도 있다. 이런 3인 구도가 독특하고도 멋지게 나오는 <네멋대로 해라> 덕분에 판에 박힌 트렌드 드라마와는 화해할 수 없었던 아웃사이더들이 수요일마다 소주병 끼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우리집의 노총각 노처녀 삼남매는 주말이면 시골서 유학온 사촌 3남매(물론 20대)와 모여서 만화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며 소리를 지르거나 술을 마시면서 논다. 가만히 보면 다들 왕따의 기질이 있으나 하나같이 “친구 만나기 귀찮아”라며 잘난 척이다. 요즘 이 왕따 형제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이 양동근 주연의 <네멋대로 해라>다. 지난 주말 한 장면을 보자.
TV 앞에 술상이 벌어져 있고 나의 남동생들은 둘 다 흰빛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러닝셔츠를 걸쳤다. 아우는 러닝을 바로 입었고 형은 뒤집어 입었다. (형: 30대 주성치를 좋아하는 백수/ 아우: 20대 공대 3학년/ 눈썹이: 못생겼다고 버려진 똥개)
아우: 형 러닝 뒤집어 입었다 아이가…. 바로 입어라.
형: 괘안타 이래야 스킨이제….
아우: 난 말이다, 여기서 신구 아저씨랑 윤여정 아줌마가 정말 연기 잘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진 몰랐는데 말이다. 정말 너무 잘하더라.
형: 그치그치, 이세창도 죽이잖아. 사실 속옷선전 같은 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선 너무 멋지지 않냐? 아예 “난 느끼하니깐” 그러고 말야.
아우: 이혜숙도 그 희한망측한 엄마를 천연덕스럽게 잘도 한다. 테레비에서 그런 엄마 본 적 있나?
형: 절대 없지. 남편, 호랑이 선생님도 좋잖아? 조경환인가, 경철인가? 속세에 때묻은 아버지지만 다들 아버지편일끼라. 오랜만에 보니 역시 호랑이 선생님이던데…캬….
(눈썹이: 컹!! 임마 조경철은 동물박사 김정만과 쌍벽을 이루던 천문학자 아저씨!)
아우: 난 말이다, 집에 왔는데 드라마가 시작하고 5분만 지났어도 안 본다아이가…. 다음날 인터넷서 다운받아서 본다아이가…. 그것도 당나귀에서 SDTV급 화질로만 다운받아서 감상한다.
형: 너네 학교에 너같이 이 드라마 열내는 사람 많나? 너 공대잖아….
아우: 없다. 드라마 안 보잖아. 나도 여기서 2화 안 봤으면 몰랐을 거다. 난 CD로 구울 거고 나중에 DVD 나오면 꼭 살 거다.
(눈썹이: 컹컹!! 이 동네 내 친구들은 다들 본다. 그거 안 보면 다음날 왕따된다.)
형: 내 주변에선 별로 안 보더라고. 찐한 재미도 없고, 주인공들도 못생겼다고….
아우: 왜 이 재밌는 드라마를 안 본단말이가? 우리가 이상한 건가?
(눈썹이: 것도 몰라? 이 러닝 브러더스야, 컹컹. 바로, 프로그레시브 드라마기 때문이지. 버뮤다 삼각지대, 황금의 트라이앵글, 불멸의 삼총사 같은 최고의 삼각관계가 나오잖아.)
형: 이거 재미없다는 사람들은 아마 사하라사막 한복판에서도 된장찌개 먹겠다며 고집 부릴거야. 서서히 적응하면 그 묘미를 알 수 있는 건데…. 드라마 시작에서 주인공, 복수가 죽을 거라는 걸 자신있게 깔 때부터 난 너무 좋았다.
아우: 응… 맞아. 좀 있으면 나 울 것 같아 걱정이다.
(눈썹이: 컹컹!! 나도야…. 난 <서울의 달> 이후 일케 술맛나는 드라마 처음이야.)
둘은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 ‘눈썹이’는 안주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