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 친구들, 오늘은 뭐하고 지냈나, 싸우진 않았나, 아프진 않았나, 궁금함에 오늘도 TV 앞에 앉는다. <네 멋대로 해라>에는 영웅이 없다. 대신 친구와 동생, 그리고 이웃이 있다. 복수와 전경과 미래의 안부가 궁금하고 한 기자, 전강, 복수 아버지, 꼬붕이, 양찬석, 우찬석 심지어 정달이의 근황까지 궁금한 것이다. 이는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와 PD의 몫도 크겠지만 33%는 역할들을 완전히 체화시킨 배우들의 몫이다. 양동근과 복수가, 이나영과 전경이, 공효진과 미래가, 다른 독립된 인물이라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의 동물적이면서 본능에 가까운 메소드 연기는 드라마를 살린 1등 공신이다. 하여 이 세 배우와 드라마 속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잊을 수 없는 대사를 모았다.
송미래
“니가 뭐하러 소매치길 좋아하냐? 니가 나 같은 년도 아닌데, 뭐하러 걜 좋아하냐? 걔가 잘났냐? 너같이 이상한 것들 땜에 나같이 불쌍한 년들이 생기는 거다.…… 너 같은 년들은, 잡생각이 많아서,… 믿음이란 걸 모르지?… 믿는다는 게 뭔 줄 아냐? 그 사람이 날 속여두, 끝까지 속아넘어가면서두, 그냥 믿어버리는 거… 그게 믿음이다… 근데, 복수는 안 속여. 됐지?”
야구장 치어리더. 악착스럽게 돈도 잘 모으고 생활력도 강한 여자로 부모없이 동생 현지와 함께 살아간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현행범으로 잡은 고복수를 감방에 보낸 인연으로 “남자가 아니라, 가족” 같은 복수와 7년째 정을 쌓아간다. 간호사가 되어 복수와 함께 잘살아보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미래는 세명의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자 이름 그대로 미래지향적 인물이다. “넌 참 곱게 복수를 도왔는데… 나, 아주 드럽게 복수 도와야 했거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운 쪽이랑, 드런 쪽이랑 나눠져 있나부다. 난, 늘, 드런 쪽에서 살아야 되는 년인가 부다. 그게 참… 눈물 나. 왜 이렇게 태어났냐, 난….” 늘 ‘명쾌함의 여왕’이었던 미래지만 자신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전경이 복수의 새 연인으로 나타나자 자신감을 잃는다. 그리고 미래는 “답답하지만 귀여운” 전경마저 좋아하고 만다.
공효진
질펀한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내뱉는 공효진의 연기는 상스럽지 않고 정답다. “날씬하고 예쁜”데다 삶의 통찰까지 갖춘 송미래를 연기해낼 80년생 배우가 어디 그리 많으랴. 늘 “세상 다 산 년”처럼 굴다가도 복수 앞에서만은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이나, 전강의 호의에 양아치처럼 구는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매회마다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 한마디쯤을 박아넣고 떠난다. 최근 자매처럼 동고동락하던 코디네이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씩씩하게 촬영에 임하면서 속깊은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걔 옆에서 얼마나 사는 맛이 나겠니? 알어. 나두. 나두 너 만나구 그랬으니까… 근데… 어뜩할라구? … 인제 소리까지 바락바락 지를 정도루 아플 텐데…. 그거 걔 앞에서 숨기려구, 기를 쓸 텐데…. 내가 그걸 모른 척하니? 너, 죽어. 걔나 나보다, 빨리 죽어.… 난, 니 드런 꼴 다 볼 수 있는 사람이야, 복수야. … 난 니가 내 옆에서 눈 감을 거까지, 다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근데, …갠, 너 죽으면 다쳐. 알겠냐? 너, 아파죽겠따구 맘대루 지랄지랄 할 수 있어야 돼.… 안 그러냐, 복수야?”
고복수
“울지마, 미래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근데…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심장에 깊이 박혀서… 그걸 뜯어내면… 심장마비루 내가 죽어…. 살자구 하는 짓이니까… 니가 용서해. 응?”
아버지(신구)가 원로가수 고복수를 좋아해 붙여진 이름. 열살 때 어머니(윤여정)가 도망가자 복수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3년 뒤에 찾으러 올게”라는 아빠의 약속의 말에 “뻥까지 마…”라고 대답했지만 부자의 재회는 그로부터 15년 뒤, 그것도 소매치기로 형을 살고 출소하는 날 이루어진다. 그동안 옥바라지해준 ‘와이프 같은’ 미래와 연애하며, 소매치기로 돈벌며, 그 돈으로 어머니 가계자금 보태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던 복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지갑을 훔친 전경이란 여자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뇌종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지금 같은 세상에 가장 큰 복수는 착한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너의 착함을 가지고 세상에 대항해봐라는 뜻으로 붙였죠.” 전경이 술취해 벽에 “복수는 내꺼”라고 낙서하는 것은 복수의 작명이 <복수는 나의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양동근
“머리가 심하게 까맣고 곱슬에… 말투가 심하게 졸리는 사람인데요….” 전경이 복수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다보면 어느새 복수는 양동근 그 자체다. 무심한 듯 힙합리듬에 몸을 싣던 그의 몸짓이나 씹지 않고 흘리는 듯한 양동근의 말투 역시 마치 고복수를 위해 준비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멜로라서…” 선택했다는 <네멋대로 해라>는 양동근의 ‘사내다움’과 ‘섹시함’에 대한 발견인 동시에 아역부터 시작한 탄탄한 한 사람의 배우발견이다. 16회 마지막 신에서 죽은 아버지의 몸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던 그의 연기를 본다면 그가 얼마나 이 배역에 몰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요즘요. 내 몸에 남아 있는 쓰레기 냄새가… 경이씨 몸에 닿는 것 같애서… 참 심란해…. 경이씬 그냥 음악 속에서만 살아요. 내 나쁜 냄새, 되도록 피해가면서… 난 경이씨가, 내 냄새나고 드런 기억 갖는 거 싫어요.”
전경
“난 복수씨 쓰레기 냄새 같이 맡을래요…. 자기 안에 쓰레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착하구 이쁜 것만 보고 싶은가봐요. 자기만의 쓰레기 안 볼려구… 그래서, 드런 거 보면 토하구….근데 난 내 쓰레기두 보구 복수씨 쓰레기도 볼래요… 난 비위가 강해서요. 토하고 그러지 않아요….”
“난 원래 천박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졸부(전경환)의 딸로 태어난 전경은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다. 친구의 수술비로 가지고 있던 돈 500만원을 복수에게 소매치기 당한 뒤 친구가 죽게 되자 복수를 “영원히 미워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마음은 결심을 배신한다. “…좋아해두 되나요?…” 닭집 앞에서 엉겹결에 내뱉은 고백과 함께 “그 험한 기억이 복수씨가 살아왔던 현실이라면 난 그것두 좋아할래요…”라며 그의 지난 삶마저 받아들인 전경. 하지만 문제는 복수의 옛 애인 미래다. 아무리 ‘질투의 화신’인 전경이지만 미래는 복수만큼 멋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을 좋아하는 한 기자(이동건)의 호의도 싫지가 않다. 전경은 세명의 주인공 중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변화가 크고 다중적인 캐릭터다. 마치 자라나는 아이처럼 1회부터 20회까지 전경의 캐릭터는 복수로, 미래로 때론 그들간의 관계에 인해 점점 바뀌어 나간다.
이나영
대부분 CF로 기억하는 것과 달리 인정옥 작가가 처음 본 이나영은 ‘여자 드림팀’으로 참여해 열심히 뛰고 구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수박 2통은 거뜬히 들고 누구라도 쓰러지면 업고 뛰는 씩씩한 전경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양동근 옆에 있는 제 모습이 왠지 어울리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하하. 전경은 계산하면 안 되는 아이예요. 머리로 이해하려는 순간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거든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전경이 부러워요….”
“언니가 간호사 노릇하는 거 참 좋은 일인거 같애요. …그치만, 나까지 간호사 만들진 말아요, 언니. …나한테 복수씬 환자가 아니라, 남자거든요. …난, 그사람 애인 할래요. …속두 썩이구, 일두 부려먹구, 싸우구, …그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