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중간첩> 현장을 가다 - 한석규 인터뷰
2002-10-12
˝나에게 새로운 연기는 없다˝

훨씬 수척해진 얼굴에 거뭇거뭇한 수염을 기른 채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 한석규는 이미 꽃다발을 안겨주며 “받아주실 거죠?”라고 부드럽게 묻던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유난히 천장이 높은 프라하의 한 선술집에서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날의 집단 인터뷰는, 공백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들과 고액의 개런티에 대한 집요한 질문 공세로 그리 편하지만은 않게 진행되었다.

<텔미썸딩>이 99년 11월에 개봉했으니 3년 만의 복귀다.

→ 정말 오랜만의 촬영이라 긴장된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궁금할 거다. <이중간첩>을 하려고 3년간 쉬었다는 대답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동안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과 기분들이 교차했고 결론적으로는 편안해졌다. 작품을 안 하는 동안 얻은 것도 많았다. 나의 위치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것을 잘 생각할 기회였다. 사실 한국영화계를 위해 무엇을 할까, 뭐 이런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완성도 있는 장르영화에서 제 몫을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쉬는 동안 영화를 많이 봤다. <빌리 엘리어트>를 DVD로 봤는데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였다.

작품 선택을 주저했던 것은 흥행이나 성공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나. 혹은 연기의 상투성에 대한 지적 등을 의식했나.

→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3년을 쉬었는지. 나만의 영화관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힘들다. 그저 내가 지금껏 했던 여덟 작품이 나의 영화관이다. 배우란 감독이 자신의 영화관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위치다. 선택될 때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더라. 3년이 정말 훌러덩 지나가버렸다.

<이중간첩>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라면.

→ 첫인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올 2월이나 3월쯤에 소설형식으로 된 책을 처음 받았는데, 시나리오 형식만 안 취했지 시나리오 단계였다. 첫인상이 너무 좋아서 바로 결정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이야기이고 꼭 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유오성 등 많은 남자배우들의 성장이 있었다. 초조한 마음은 없었나.

→ 사실 크게 괘념친 않았다. 모든 배우들에겐 각자의 밥그릇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텔미썸딩> 이후 시나리오는 몇편 정도 받았나.

→ 형님과 영화관이 비슷해서 형이 볼 필요없다고 한 시나리오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1년에 30편 정도는 봤던 것 같다.

개런티 부분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 “돈생각 하면 돈연기 한다”는 것이 늘 형님의 말씀이다. 쉽지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는 데 있어서 돈 생각은 안 한다.

<이중간첩>을 통해 한석규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 나에게 새로운 연기는 없다. 그동안 여러 장르를 하다보니 늘 다른 연기, 다른 캐릭터를 하는 것처럼 비쳐졌겠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 한석규란 배우의 틀이 있는 것 같다. 늘 고민을 하고 연기를 하는 편이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연기는 없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연기할 순 있어도.

어떤 준비를 했나.

→ 살도 뺐고 몸도 좀 태웠다. 아무래도 북한의 군인 출신이며 사상이 투철한 인물이니까 날카로운 인상이 필요해 평상시보다 4, 5kg 뺐다. 원래 체중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라서 그 정도 빠지니까 많이 빠져 보이고 꺼칠한 느낌이 나나보다. 외부적으로는 그랬고, 내부적으로는 잠수함 사건 때 귀순한 군인으로부터 북한 무술지도를 받았고 조언을 많이 얻었다. 매일매일 시나리오를 읽고 잔다.

배우가 자신이 연기할 인물에 대해 완전히 동화될 수도 있고, 철저한 분석을 할 수도 있으며, 어떤 부분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 림병호는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나. 혹시 림병호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이미지나 느낌이 있다면.

→ 림병호의 매력은 한국이란 나라 밖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거다. 꽤 오래 전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신념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 가지 사상을 죽을 때까지 끝까지 가지고 가는, 굽히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신인 감독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

→ 그동안도 거의 신인 감독과 작업해왔다. 신인 감독이라서 오는 부담은 거의 없다. 다른 점이라면 비교적 젊은 감독이라는 것이다. 감독의 주문에 따르는 편이고 연출자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란 것이 70%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30%는 내가 채워야 한다고 본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부적인 혼란은 크지만 대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다.

→ 안개 속에 가려져 있고 이것인 것 같기도 하고 저것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명확히 벗겨내서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쪽으로 진행을 하자고 제안했고 조금 수정한 부분도 있다. 담벼락을 따라 걷는 기분이다. 이쪽으로 가면 넘치고 이쪽으로 가면 모자라고, 이런 것이 늘 연기하면서 제일 힘든 부분이다. 선을 지키며 연기하려고 한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