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식 |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미술감독님이 그러는거야. “나는 승범이가 너무너무 부러워. 살면서 배우가 아니면 그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던지고 토해내고 어떻게 그렇게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겠어.” 니가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대. 너무너무 부럽고 슬프고 그랬다는 거야. 결국 이 장면을 잘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 몰라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맘껏 놀다
류승범 | 아, 후반부에는 촬영 끝나가는 게 너무너무 싫고 아쉬운 거예요. 그러다보니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아진 거야. 반 감독이었죠. 내 조감독은 봉태규. 봉가랑 나랑 촬영 들어가기 전에 야, 우리 이렇게이렇게 하자 우리끼리 다 맞추고, 그러고도 의욕이 넘쳐나는 거야. 마지막에는 거의 감독님은 별다른 디렉팅 없이 우리 수위조절만 하셨어요.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 않게 그 안에서 맘대로 놀게.
조근식 | 정말, 다른 게 필요없어요. 조금만 올려보자 조금만 내려보자. 그 정도만 말해도 아이들이 아 그거요 알았어요. 뭐 이랬죠. 어떤 날은 대사까지 만들어온다니까요. 승범이란 배우의 장점은 만날 노는 것 같고 현장 와서도 장난만 치는 것 같지만 촬영 전날엔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이란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밤새 공부하고 하나도 안 한 척하고 시험 잘 치는 애처럼. 원래 나는 졸면서 해도 다 맞았네 하는 애처럼. 설사 숙제를 안 하더라도 방에 누워서 아… 숙제 해야 돼 하고 계속 괴로워하는 그런 스타일이지.
류승범 | 사실 감독님도 그렇지 않나 개인적인 개똥철학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거든요. 진짜 릴렉스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라고. 어설프게 빠져 있으면 연기를 하는 거지. 뭔가 자꾸 만들어내려고 하고. 재밌게 보이려고 만들려고 하고. 늘 방구석에 처박혀서 하는 건 대본 보면서 연구하고 대사연습하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저같이 아이큐 두 자리인 사람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현장의 무게를 덜게 하려면 전날은 많이 긴장을 하는 편이에요. 첫 주연이란 거, 그냥 주연급이란 게 아니라. 극의 중심에 있다는 것. 중심에 서는 인물이 돼봤고 그 산을 넘어봤고 연기하는 것 외에 주인공으로서의 다른 배우들의 모습들에 대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봐도 아 저 연기가 어떻게 하기 위한 장치로구나, 영화에 어떻게 작용하는구나 하는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운 것 같아요. 현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전엔 몰랐던 영화현장의 매력들도 맛보았고. 이제는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요. 다른 사람들과 또 이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그런 설렘요.
조근식 | 그나저나 너무 오랫동안 이 영화가 내 안에 들어 있어서 이제 빼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거의 2, 3년 동안 내 삶의 90% 이상을 차지했고 나를 너무너무 괴롭혔고 귀찮게 했고 이제는 떠나려고 빼내려고 그러는데 자꾸 인터뷰하고 그러니까 이게 잘 안 되는 거야.
류승범 | 사람들이 가끔 나의 모습을 다르게 보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데 중필이는 나같애, 참 나예요. 물론 이면의 모습도 있겠지만 이렇게 나에 가까운 캐릭터는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도 중필이의 여운이 많이 남아 있어요. 빨리 버려야 할 것 같아요. 편안해지고 나를 완전히 버리고 제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아… 사실 우리 수다떨면 끝이 없어요. 여기다 봉까지 가세하면 여자들의 수다, 저리 가라거든요.
조근식 | 야! 근데 승범아, 내가 어제 어떤 대학에서 시사회를 끝내고 화장실에 갔는데 애들이 막 떠들고 있더라. 그래서 뭐라고 하나 듣고 있는데 이러는 거야. “역쒸! 강북양아치는 류승범이 최고야!” “그럼 강남은” “강남은 싸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