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살인마
다케다 다이준의 단편을 각색한 작품으로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남자 에이스케를 중심에 놓고 스토리가 펼쳐진다. 영화는 그와 관련된 두 여자, 즉 죽음 직전에 에이스케로부터 구출된 다음 그에게 강간당한 시노와 에이스케의 부인인 교사 마츠코가 그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통해 그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을 풀어낸다. <백주의 살인마>는 우선 범죄적 성향, 시체를 둘러싼 섹슈얼리티, 죽음의 에로티시즘 등을 탐구하는 부조리극으로 비치지만 그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시도의 붕괴와 폭력의 문제를 연계시키는 영화로도 읽힐 수 있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전부 2천개가 넘는 숏들을 가지고 격한 몽타주를 구사했다는 점이다. 노엘 버치는 <백주의 살인마>를 가리켜 에이젠슈테인의 이래 가장 창조적인 몽타주영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
교사형
1958년 9월 한 재일한국인 소년이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몇년 뒤 감옥에서 사형된 실제 사건에 기초하고 만들어진 영화. 그러나 영화는 이처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진행된다. 처음에 다큐멘터리적 양식으로 시작한 영화는 리얼리즘적 픽션을 거쳐 환상의 영역으로까지 발을 들이민다. 두 여고생을 강간하고 살해한 죄목으로 재일한국인 R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의 몸은 죽음을 거부한다. 게다가 다시 살아난 그는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상태. 사형집행인들은 사형을 다시 행하기 위해 R의 범죄사실을 들춰내야만 한다. 그렇게 R의 범죄 행적을 밝혀가는 와중에 결국 드러나는 것은 이 모든 범죄의 책임은 국가 자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브레히트적 소외효과의 창의적인 이용이 돋보이는 이 영화를 두고 프랑스의 비평가 막스 테시에는 “오시마가 모든 범죄와 불평등의 토대라고 생각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한 가장 완벽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소년
실제 일어난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범죄에 대한 오시마의 또 한편의 연구. 주인공 소년은 부모의 요구에 따라 일종의 자해공갈에 가담해야 한다. 우선 그가 지나가는 차 앞에 뛰어들어 다친 체한다. 그러면 소년의 부모가 나타나 당황스러워하는 운전사에게 보상금을 타내는 것이다. 영화는 소년이 어떻게든 이 비참한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게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일종의 비판적인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69년에 오시마는 <소년> 외에 <신주쿠 도둑일기>라는 영화도 만들었는데, 다분히 자유분방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후자에 비해 <소년>은 비교적 관습적인 영화적 테크닉을 이용하면서도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다.
도쿄전쟁전후비화
제목에 쓰인 도쿄전쟁이란 총리의 미국 방문을 막고자 69년 가을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를 말한다. 영화는 바로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젊은이들이 겪는 좌절과 절망에 대한 고려를 영화매체에 대한 성찰과 결합한다. 주인공은 영화를 통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모임의 일원이다. 어느 날 카메라를 가지고 도망치던 한 남자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본 그는 이후로 정치현실에 혼란을 느끼고 자신도 투신자살한다. 노엘 버치는 <도쿄전쟁전후비화>가 다소 과소평가되고 있는 영화라고 하면서 이것이 “정치적 영화 만들기의 모순들과 관련하여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내러티브 형식을 발전시키려는 야심찬 시도”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