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 [5] - 상영작 12편 가이드 ③
2003-01-16
글 : 홍성남 (평론가)
나는 고발한다,일본사회를

의식

<의식>은 오시마의 이름을 서구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영화다. 영화는 사쿠라다가(家) 지역의 한 부유한 가족의 전쟁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를 주인공 마스오가 회상하는 형식을 통해 들려준다. 마스오의 회상은 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식’이 벌어지는 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럼으로써 영화는 사쿠라다가의 가족 성원들을 불러모아 그들 내부의 붕괴되는 모습을 그려간다. 또 다른 한편으로 눈여겨볼 것은 마스오의 회상이 시작되는 지점들이 하나같이 일본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지점들이라는 것. 여기서 오시마가 한 가족의 연대기를 일본의 역사와 맞물리게 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감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각의 제국

오시마의 영화세계에서 한 정점을 차지하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오시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군국주의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30년대 중반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외부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오로지 채워지지 않은 성적 욕망에만 집착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감각의 제국>은 워낙 표현의 강도가 센 포르노그라피인 탓에 세계 곳곳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많이 남겼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성기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해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일본인 여행객들이 앞다투어 파리로 몰려갔다고 하며 이 영화가 뉴욕필름페스티벌에 초대되었을 때에는 미국 관세국이 필름을 음란물로 규정해 압류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한편으로 오시마 자신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이 영화와 관련한 책을 출판함으로써 음란물 제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사실 일본의 검열당국과 직접 싸운다는 것은 아마도 오시마의 주요 의도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열정의 제국

zz<감각의 제국>에 이어 만들어진 <열정의 제국>은 전편과 일종의 대구를 이루는 작품이다. 그러나 전편만큼 강도 높은 성적 표현도 나오지 않고 전편과 스토리가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번에 오시마는 1890년대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 안에 끌고와 사회적 압력과 욕망의 관계를 다룬 기묘하게 슬픈 괴담을 만들어냈다. 늙은 인력거꾼 가시부로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세키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젊은 청년 도요지와 열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 세키와 도요지는 자신들의 열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가시부로를 살해한다. <열정의 제국>은 오시마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쥐어줬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일례로 막스 테시에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세심하고 거의 이론적인 방식, 지나치게 연구된 미학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함으로써 타격을 입었다고 적었다.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데이비드 린이 만든 태평양 전쟁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에 대한 오시마의 응답으로 볼 수 있는 영화. 영화는 1942년 자바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시선을 가져간다.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있는 영국군 소령 세일러스와 로렌스 대위, 자부심을 가진 일본 포로수용소장 요노이와 괴팍한 하라 상사, 이 네명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영화는 다른 문화 사이의 갈등과 매혹, 지배자와 희생자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타노 다케시와 톰 콘티가 특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일본의 유명 음악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출연하며 또한 멋진 음악도 들려주는 이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가지고서 오시마는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내심 은근히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기대는 <나라야마 부시코>를 가지고 칸에 온 같은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에게 영광을 뺏기며 실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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