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4]
2003-01-24
글 : 김혜리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두근두근, 레드커튼이 올라간다

영화의 양식미를 엿볼 수 있는 ‘예술적인 정보’로서의 타이틀 시퀀스 BEST

좋은 전채 요리가 그렇듯, 좋은 타이틀 시퀀스는 그 자체로 향기로워야 하지만 향신료가 지나쳐서 메인 요리의 풍미를 해쳐도 불합격이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은 타이틀 시퀀스가 최선의 경우, ‘예술적인 정보’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프닝 크레딧의 톤과 무드가 다음에 이어질 영화를 가장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관객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정서를 고양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뮤지컬 <물랭루즈>는 영화의 양식미를 미리 맛보게 하는 유형의 타이틀 시퀀스 중 프리마돈나로 손색이 없다. MTV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수공업적 스펙터클의 파노라마를 세기말 파리의 카바레에서 거침없이 펼치는 <물랭루즈>의 타이틀 시퀀스는 프로시니엄 아치(연극무대 위쪽 테두리를 이루는 아치)에 늘어진 붉은 커튼을 걷으며 시작한다. 무대 앞에 조그맣게 보이는 지휘자의 과장스런 제스처에 맞춰 이십세기 폭스사의 팡파르가 울리고 예스런 크레딧이 흐른다. ‘레드 커튼 시네마’라고 불리는 루어만의 미학을 직설적으로 반영한 타이틀 시퀀스의 기습으로 졸지에 영화 관객이 아닌 카바레 청중이 돼버린 관객은 오프닝의 붉은 휘장을 젖히는 동안 자연히 <물랭루즈>의 시대착오적 세팅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무도회에의 권유에 화답하게 된다.

타이틀과 특수효과 디자이너 랜디 볼스마이어와 미미 에버렛 커플의 작품인 <패션쇼>의 오프닝 크레딧은, ‘그랜드호텔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로버트 알트먼 특유의 대형 앙상블을 맞이하는 관객을 적절히 준비시킨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카메라가 고속 회전목마처럼 유럽 도시들을 빠르게 도는 동안 오색의 옷감 견본 조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스크린 아래에서 위로 날아오른다. 가장자리가 올이 풀리고 핑킹가위로 잘린 천 조각들에는 줄리아 로버츠, 팀 로빈스, 소피아 로렌, 킴 베이싱저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지금부터 영화가 입장할 패션 디자인 세계의 언어를 끌어들이면서 배역들의 무게를 저울질하거나 특정 스타에 집중하는 일이 애당초 무의미한 영화의 성격을 예고하는 셈이다.

볼스마이어와 에버렛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단골 타이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수틀 같은 화폭을 경극 가면부터 기모노에 이르는 다채로운 동양풍 오브제로 꾸민 의 타이틀 시퀀스는 볼스마이어&에버렛사가 처음 컴퓨터로 제작한 작품. 수집가와 도서관의 도움으로 완성된 이 시퀀스는 대단히 아름답지만, 중국과 일본 문화의 도상들이 뒤섞여 있어 막연한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장식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부른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혼돈이 중국인 애인을 일본 여인 나비부인으로 부르며 매혹당하는 극중 프랑스 외교관의 의식을 투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디 아더스>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에게는 모든 영화를 암흑 속의 보이스 오버로 시작하는 기벽이 있다. “얘들아 편하게 앉았니” 역시 까만 어둠 속에서 첫마디를 던지는 <디 아더스>의 오프닝 크레딧은 창세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니콜 키드먼의 음성과 몇장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드로잉들은 처음에는 창세기의 삽화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디 아더스>의 슬픈 괴담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으로 판명된다. 아메나바르는 책장을 넘기는 대신, 희미한 촛불 빛으로 동굴 벽화를 구경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비극의 소묘들을 훑어나간다. <디 아더스>의 타이틀 시퀀스를 통해 관객은 영화 전반에 드리워질 반전과 어둠에 미리 눈을 익히게 된다.

타이틀 시퀀스 천태만상

“레이디 퍼스트 내 이름부터 넣어 줘!”

영화사의 각종 기록을 모은 책 <영화에 관한 사실들>(Film Facts)에 따르면 오프닝 크레딧의 세계에도 진귀한 기록은 풍성하다. 제작진 소개, 장면 전환 외에 크레딧이 가진 또 하나의 사회적 기능은 출연 연기자 사이의 위계질서 정리. 크레딧의 이름 표기(billing) 순서는 그래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계약서에 포함되는 중요한 조항이다. <아담의 갈비뼈>(1949)에서 단짝이자 라이벌인 캐서린 헵번과 공연한 스펜서 트레이시는 “레이디 퍼스트도 모르냐”는 제작자의 참견에 “이게 영화지, 구명보트냐”고 반박하며 자기 이름을 먼저 쓸 것을 고집했다고. 영화가 많다보니 크레딧을 쓰지 않고 읽는 영화도 나온다. 오슨 웰스는 <위대한 앰버슨가의 사람들> 제작진 명단을 낭랑히 낭독했고 로버트 알트먼의 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 마이크 스노의 <>에는 크레딧이 영화 중간에 튀어나오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스키조폴리스>는 어찌된 일인지 아예 크레딧이 없다.

한편 <버라이어티>는 어느 해 연말 일본영화 문화의 특색을 요약하면서 “관객 모두가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컬처 쇼크로 꼽기도 했다. 크레딧 시퀀스도 제작비가 문제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가난한 독립영화 제작자가 타이틀 시퀀스에 투자하는 비용은 대개 1만달러 미만. 하지만 인디영화라고 검은 바탕에 흰 글씨만 쓰라는 법은 없다. 크레딧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못해 카페에서 머리를 싸매던 감독이 카페마다 무늬가 다른 냅킨에 글씨를 써서 촬영하는 묘안을 낸 것도 좋은 예. 영화가 끝난 뒤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예가 드문 한국영화의 타이틀 시퀀스 개선에 필요한 자원도 돈만은 아닐 성싶다.

자료협찬 영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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