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4]
2003-05-02
정리 : 박혜명
정리 :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

봉준호 |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웃음)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결국 어떤 기대치를 갖고 극장에 오느냐에 따라 다를 거다.

남동철 | 송강호의 코미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지 않을까. (웃음)

봉준호 | 그 사람 정말 괴물 배우지.

김소희 | 어떤 자료에서, 현실의 공포로부터 웃음이 비롯된다는 봉 감독의 멘트를 읽었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웃음은 상당 부분 관객을 의식하면서 배우의 기량에 기댄 즉발적인 것들이라고 본다. 봉 감독이 그걸 노련하게 절충했던 거 아닐까.

봉준호 | 내가 원래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이지, 웃기자고 기를 쓴 건 아니었다.

김소희 | 박두만이 무모증 얘기를 꺼내는 장면을 보면, 바퀴 달린 회전의자를 타고 프레임 아웃 됐다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웃음을 끌어내는데 그 톤은 영화의 내적 맥락과 무관한 것이고, 그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아니라 <넘버3>의 송강호다.

봉준호 | 맞다. 그 부분은 정말 코미디영화 같다. 잠시 이 사건의 끔찍함을 잊게 할 만큼 코미디적이다.

김소희 | 한국 관객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능란하게 활용했다고 높이 살 수 있지만, 불균질한 요소들이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들락날락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봉준호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렬한 타악기가 나오는 추격신도 그렇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강호 선배는 이질적 요소들을 보여주지만 그것들까지 다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존경한다.

남동철 |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본인이 가진 이미지를 잘 알면서 그걸 최대한 활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내러티브 안에서 박두만이 어떤 인물이다, 라는 것과 상관없이, 배우 자체가 그 안에 몰입된 거다. 이 영화도 송강호가 가진 그런 어떤 부분을 계속 가지고 갔기 때문에 지금의 자연스러운 톤이 만들어진 거 같다.

봉준호 | 맞다. 그 배우가 이 영화의 여러 성격을 규정하는 거 같다. 강호 선배와 박해일, 변희봉 선생은 내가 시나리오 쓸 때부터 정해놓은 사람들이다. 다른 배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강호 선배는 이 영화를 또는 이 시나리오를 풍성하게 해준 배우다. 그는 내가 알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만들었다. 시체 부검 장면에서 윗옷자락을 끌어올려 코를 틀어막는 건 그 사람의 설정이었다. “감독님, 두만이는 이거인 거 같애요”(웃음) 그래서 “오케이”했고, “그럼 상경이는 마스크 쓰고 송재호 선생은 손수건으로 막자”라는 설정도 생겨났다. 생동감, 예기치 않은 디테일들, 단순히 애드리브다 혹은 재치다라고 말하는 걸 넘어서서 이 영화의 공기를 형성한 사람이다.

Q5. 왜 인물들은 구르고 얻어맞으며 등장하나?

남동철 |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식이었다. 박두만은 경운기 타고 등장하고, 구희봉 반장은 논두렁에서 구르면서 등장한다. (모두 웃음) 서태윤은 안개 속에 멋있게 등장하다가 겁나게 터지고. (모두 웃음) 마치 그건, 이 영화의 인물들이 모두 어떻게 잘못 굴러떨어져 그런 상황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준다.

봉준호 | 형사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말이 “그때 우린 모두 불구였다. 절름발이 형사였다. 쪽팔린다. 우리도 불구였고, 조직도 불구였다”라는 거다. 조용구가 다리 잘리는 설정, 인물이 굴러떨어지는 설정도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소희 | 어떤 분이 이런 지적을 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가진 아이러니한 요소들이 좀더 확장되기를 기대했는데 그렇게 안 됐다고. 형사들의 경우 문귀동 사건을 보도하는 TV뉴스에서 보듯이 시대의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모순된 존재이고, 세 번째 용의자였던 박현규의 경우 가족도 없이 공장생활 하면서 책을 가까이 하는 건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의 이미지를 가졌다. 그것들이 캐릭터의 아이러니, 시대의 아이러니와도 맞닿을 수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충분히 확장시키지 않은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봉준호 | 박현규에 대한 그런 시선은 신선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웃음) 그런 아이러니라면 오히려 인물 내적인 데서 온다고 생각했다. 워커발로 상징되는 단순무식한 80년대적 인물 조용구는, 자기가 밟아댔던 백광호가 휘두른 몽둥이 하나 때문에 다리가 잘리고, 서류는 거짓말 안 한다고 부르짖은 서태윤은 결국 서류 때문에 뒤통수를 맞는다. 박두만은 항상, 딱 보면 알아, 이랬지만 박현규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겠다”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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