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2]
2003-05-02
정리 : 박혜명
정리 :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

Q2. 왜 농촌 스릴러인가?

김소희 | 이 영화 안에서 드라마적인 장치와 시대적인 코멘터리가 얼마나 잘 작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라설 수 있을 것 같다.

봉준호 | 그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양분된다. “전경들 다 시위 진압하러 갔댄다!”라는 대사나 등화관제 훈련과 여학생 살해장면의 노골적인 교차편집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직설적이다.

남동철 | <플란다스의 개>는 인물과 사건을 떨어져서 보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살인의 추억>엔 감독이 느낀 울분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전달돼서 좋았지만, 그걸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블랙 호크 다운>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벌어지는 상황은 전혀 다른 종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뭔가 느낌은 있지만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그런 분위기가 이 영화에 있다고 느꼈다.

봉준호 | 형사들의 심정에 내가 동화돼간 거다. 원래 난 이런 공권력 싫어하는데. (웃음)

김소희 | 형사에 대한 연민을 관객에게 호소한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중요한 요소다. 이런 문제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어떤 성취를 하고 있는가를 평가할 때 접점이 되는 것 같다. 장르적 구축과 시대에 대한 조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정쩡하게 쫓고 있는데 양자를 메워주는 이런 장치 때문에 마치 아무런 거리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봉준호 | 난 장르의 컨벤션에 의지하면서 그걸 목표점으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가진 않는다. 그런 잣대를 들이대면 오히려 이 영화가 이상해보일 거다. 나는 이 영화를 ‘농촌 스릴러’라고 부른다. 스릴러 장르의 컨벤션은 있지만 장르적인 기반에 의존했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러기엔 사건 자체가 다르다. 그런 이질적인 느낌을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김소희 | 이 영화에서 긴장감을 크게 느낀 순간들은 사운드와 편집이 결합된 전형적인 스릴러적인 기교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남동철 | 난 반대로 생각한다. 상당히 많은 영화들은 그런 장치들을 사용하면서 그 장치가 이끄는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른 목적, 말하자면 시대의 공기를 포착한다는 목적을 위해 그 기능을 사용하면서도 그 기능이 원하는 결론에 빠지지 않고 자기 목적을 달성한다고 본다.

김소희 | 사건과 시대를 결부하는 방식에서는 물론 새롭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박하사탕>의 특징도 벗어나서, 봉 감독만의 포지션이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과연 차용된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 진실하느냐의 문제는 별개인 것 같다. 의지적 진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이 사건에 속해 있는 시간에 대해 그런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의 진실을 묻고 싶다. 말하자면 두 가지 요소가 서로에게 편의를 제공한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내적인 드라마의 치밀함은 시대가 와서 메워주고, 시대에 대해 정면으로 부딪치기 어려운 건 사건과 장면이 메워주는데, 그 솜씨가 너무 매끄러운 나머지 우리가 속는 게 아닌가 싶다. (웃음)

봉준호 | 솜씨가 매끄럽다니 기분이 좋다. (웃음) 아무튼 그건 나도 되짚어볼 만한 점인 것 같다.

Q3. 왜 ‘등화관제’는 강조되는가?

남동철 | 90년대에 등장한 ‘생각하는 영화’들은 대체로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후 등장한 일련의 영화들은 80년대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는 복고풍이 짙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그런 낭만조도 아니면서 그 시대가 가진 정치적으로 핵심적인 이슈를 바로 받아버리지도 않는, 다른 방식을 취한 듯하다. 일견 그 방식이 장르영화 안에 포섭됐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봉준호 | 내 영화는 그 중간일 것 같다. 여고생들이 한복 입고 전두환 대통령 맞이한다고 죽 늘어선 거리장면을 좋아하는데, 당시에 전두환만 온다 그러면 무조건 수업 빼먹고 애들이 한복 입고 우르르 몰려나가서 태극기 흔들고 그랬다. 우리는 수업 안 하고 노니까 좋아했었다. 그 상황에서 전두환에 포커스를 두면 <박하사탕>이 되는 거고, 노는 게 좋았다는 느낌만 기억하자면 아기자기한 복고풍 영화로 가는 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순간 비가 내리고 아이들은 길 옆 구멍가게로 우르르 몰려든다. 그러면서 시대의 엿같음과 개인적인 추억이 동시에 뒤얽힌다. 그래서 그 장면이 정말 좋다.

김소희 | 방식이나 소재는 다르지만, 이 영화는 그 시대를 노스탤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풍경을 사용하는 방식, 그것에 걸맞은 음악, 엔딩신에서 모든 것을 하나의 톤으로 품어버리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도 노스탤직한 분위기를 깔아두고 시대적 코멘터리를 한다는 건 자기도취나 환상이 아닐까.

봉준호 | 영화의 초반부에는 노스탤직한 무드가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이것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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