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 화성이라는 공간의 넘실거리는 보리바닷물결과 햇빛 그리고 여기에 쓰인 잔잔한 음악이 형성한 무드는 후반에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엔딩신에서 굉장히 화려한 이미지로 사용된다.
봉준호 | 후반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등화관제 모티브다. 누가 나에게 “8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등화관제의 시대요”라고 말할 거다. 그건 인위적인 어둠을 만드는 행위다. 그런 상황에서 살인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들더라. 아까 말했던 직설적 감정 표출이 우려되는 클라이맥스의 살인장면은 “거기 쌀집 불 꺼!”라는 방송과 함께 셔터가 내려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견 노스탤직한 장면으로 시작했고 관객을 그렇게 유도했지만, 내 진심을 폭발시키는 교차편집과정에서 그 노스탤지어와 완전히 분리됐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인물과의 거리감도 허물어졌다.
김소희 | 한 시대를 추상적으로 컨셉화해서 필요할 때마다 인물이나 사건에 와서 붙는다면 인물이나 사건의 구체적인 질감을 잃게 된다. ‘작가’ 봉준호에게는 경계해야 할 지점 아닐까.
봉준호 | 나도 그 점을 고민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관객에게 필이 꽂히는 장면들을 초반에 설정해서 개인적인 기억을 환기시키면, 시대적인 공기를 끌어들여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시나리오 쓸 때 철저히 계산한 건 아니다. (웃음)
남동철 | 80년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어차피 어떤 문제에 대해 정면대결을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뒤통수를 쳤을 때 발생하는 파급력은 분명히 있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노스탤직한 시각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것을 벗어나 사건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결국은 아까도 말했던, 장르를 차용하면서도 비껴나서 문제의 핵심에 궁극적으로 도달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 이젠 다른 방식으로 80년대를 말할 수 있는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소희 | 이 영화를 보면서 김기영 감독이 언뜻 떠올랐었다. 1961년작 <하녀>라는 작품도 신문에 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사건이 인물 안으로 정확하고 완전하게 들어간다. 시대적인 배경은 알레고리화되지만 공간과 인물을 통해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그 시대를 조망한다. 이건 <하녀>와 <살인의 추억>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화성이라는 공간을 좀더 모순적이고 다층적인 공간으로 구성할 수는 없었는가. 그럴 여지가 없지 않던데.
Q4. 왜 코미디인가?
봉준호 | 장소는 이 소재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포커스를 두겠다는 건 아까도 말했듯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결정됐고, 처음엔 화성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닌 개별성에 접근했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면, 농촌이라는 공동체 사회에 도시 인구가 유입되고 공장이 들어서고 하는 점들은 당시 한국의 모든 농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지 화성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화성 사람들은 어쩌다 그 불운한 사건에 휘말린 거고 시대적 공기가 그 사건을 확장시킨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헌팅에 신경을 썼더라도 공간은 다소 하위로 밀렸다고 생각한다.
남동철 | 그래도 방점을 찍고자 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있다. 빨래 걷던 여자가 살해되기 직전, 길에 서서 우산을 확 돌리는데 범인이 안 보이고 시멘트 공장이 떡하니 보인다. 옆의 논과 대조적으로.
김소희 | 나도 그게 핵심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졌다. 황금 논에 우뚝 서 있는 시멘트 공장, 이렇듯 그 공간에 접합이 잘 안 되는 사회적 변화들이 쿵쿵 가로놓여서 그 틈새 속으로 인물과 사건이 미끄러져 내리는 거다. 범인조차도 어쩌면 그 틈새에서 솟아오른 예고된 위험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능성들이 충분히 암시가 되면서도 결국 다른 기교들로 흩어져버린 것 같다.
봉준호 | 지금 오프닝신으로 등장한 장소 이전에 오프닝으로 택했던 곳이 있긴 했다. 타 잡지에는 그 사진이 나가기도 했는데, 넓은 황금벌판에 공장이 하나 버티고 서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그 장소에 문제가 생겨서 100% 농촌 풍경으로 대체했다. 그 두 장소의 느낌 차이가 방금 지적한 것과 맞아떨어진 듯하다.
남동철 | 김소희씨가 지적하는 문제는, 시대적 코멘터리에 관한 부분과 장르적 문제 해결에 관한 부분에서 부족분을 서로 빌려주고 받고 하는 점인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영화가 말을 거는 방식에 관한 부분인 듯하다. 예를 들면 이 영화의 전반부는 굉장히 코믹한데 그런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 반칙인가 하는 질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고, 난 그렇지 않다, 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박하사탕>이 멜로드라마를 차용하는 게 반칙인가? 오히려 그런 장치를 통해 영화는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본다.
김소희 |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는 감독이냐, 개성적인 시선을 보여주느냐, 아니면 양자를 노련하게 꿰매는 감독이냐, 이건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