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4] - 최우수상 당선자 유운성 인터뷰
2001-05-11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중·고교 시절 물리를 공부하면서 그는 “이걸 공부하면 죽음에 대해 다뤄볼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비밀을 캐는 소년의 호기심은, 철학으로 영화로 쑥쑥 발걸음을 옮겨갔다. 물리교육과 2학년 때 서울대 영화동아리 얄라셩에 가입한 유운성(29)씨는 영화보다 영화매체의 역사와 본성을 다룬 책들에 먼저 이끌렸고, 그 책들이 그린 지도를 좇아 영화와 연분을 맺었다. 졸업 뒤 광고회사에 잠시 몸담았다가 지난해 말 짧았던 회사원 생활을 접었다. 지금은 보습학원 물리 교사로 저녁시간을 보내며 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성실한 독서로 다듬어진 치밀한 사고 회로와 개별 영화와 감독을 향한 깊숙한 시선은 지루한 수고를 마다않는 정통파 평론가를 예감케 한다.

-좋아하는 글의 예는.

=이 정도의 비평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했던 글은 앙드레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였다. 그 책에서 예시한 영화 가운데에는 도저히 구해볼 수 없는 영화도 있었는데, 그의 글을 읽는 체험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난 듯한 느낌을 줬다. 소설 중에는 작가 이승우의 80년대 작품을 좋아한다.

-이론 비평에서 ‘악의 존재론’을 주제로 택한 이유는.

=폴 리쾨르의 <악의 상징>이란 책에서 자극을 얻었다. 그 제목 아래에서라면, 관심가졌던 작가인 브레송, 베리만, 히치콕, 브뉘엘 등 작가들의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묶어서 다뤄볼 수 있겠다 싶었다.

-기존 영화평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와 연결해 스스로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짜깁기’에 불과한 내용의 리뷰를 가끔 본다. 요즘은 영화 글에서도 철학에서 빌려온 용어를 많이 쓰는데 이따금 맥락을 헤아릴 수 없기도 하다. 논리가 치밀하면서도 결이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작가영화/상업영화식의 게으른 이분법에 의존한 비교는 싫다. 감독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고유의 패러다임이 있고 이상적인 평은 그 패러다임을 발견해 거기 의거해 혹은 자신이 선호하는 분석의 도구를 부분적으로 융합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목하는 감독이나 장르를 꼽는다면.

=특정 영화를 골라보기보다 정교한 영화를 좋아한다. 응모한 평에 언급한 브레송, 베리만 등 외에 요즘 영화로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케빈 스미스 영화에 흥미있다. 한국영화로는 박종원, 홍상수, 김기덕 감독에게 관심이 있다.

-이메일 아이디가 ‘아켈다마’(akeldama)다.

=대학 영화 동아리에서 디지털로 찍었던 중편영화의 제목이다. 아켈다마는 유다가 죽은 곳의 이름인데, 영화 내용은 연쇄 살인극이었다.

당선소감

내 글이 암흑은 아니었는지 어떤 영화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로 팽창하는 풍성한 공간을, 우리 말의 하잘것없는 부피로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말은 그 드넓은 우주에 떠 있는 한 조각 소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절망을 맛보게 하기보다는 한없는 충만함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로 비로소 말이 되어 공간에 흩뿌려진다. 흩뿌려진 이 말들은 우리 존재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어 때로는 이미지들의 빛을 차단하는 암흑이 되기도 한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공간에 퍼뜨리는 말들이 빛을 아름답게 반사해내고 스스로 빛을 발하기도 하는 붉은 장미성운이었으면 좋겠다(하지만, 당선된 내 글을 다시 읽으면서 혹 이것이 암흑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