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6] - 손원평 작품 비평
2001-05-11
글 : 손원평 (소설가)
<존 말코비치 되기> 손원평 작품 비평 전문

가면놀이의 한계

손오공의 머리카락에서 나온 300명의 분신 중 어느 것이 진짜 손오공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요괴의 고민처럼, 수많은 사람이 존 말코비치의 가면을 들고 서 있는 이 영화의 섬뜩하면서도 기발한 포스터는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우리를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늑대인간>이나 <슈퍼맨> 혹은 <마스크> 등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다중적인 캐릭터에 관해 언급하는 영화들은 많았다. 그러나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말코비치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정체, 즉 ‘누가?’의 문제이다.

‘과연 누가 존 말코비치가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위의 영화들과는 매우 다른 각도를 취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동일인물이며 디에고와 조로도 같은 사람이다. 다만 이들은 지킬이면서 하이드일 수 없고 멍청한 디에고인 동시에 날렵한 조로일 수가 없다. 지킬과 하이드, 슈퍼맨과 클락은 한쪽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이 사라져야 하는 모순관계에 놓여 있다. 즉 각각은 동일인물의 다른 버전일 뿐이며, 바로 이런 배타적인 모순관계에 의해 이들은 별다른 충돌없이 하나의 개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 말코비치가 되는 많은 사람들이 황홀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존 말코비치가 되는 사람’과 ‘되어진 존 말코비치’ 그리고 원래의 ‘존 말코비치’는 분명히 처음부터, 그리고 끝까지도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존 말코비치가 되는 사람들은 말코비치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캐릭터를 벗지 못한다. 말코비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말코비치가 느끼는 감각을 느끼지만, 결국 판단이나 생각 따위는 본래의 자기자신에 의거한다.

영화 안의 말코비치는 매우 다중적인 캐릭터이다. 그것은 실제로도 배우인 그가 영화 안에서도 배우이며, 다른 등장인물들보다도 더 자신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듯한 교묘한 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로를 통해 말코비치가 되고자 하는 그 모든 사람들보다도 영화 안에서 더 말코비치가 ‘되는’ 사람은 바로 영화 밖의 말코비치 자신이다. 마주보는 두개의 거울 사이에 놓인 사람처럼 끝없는 굴절 끝에 말코비치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말코비치라는 바다 안으로 끝없이 다이빙을 한 결과 생기는 온통 말코비치뿐인 세상이다. 카메라렌즈 바깥에서 영화를 지켜보는 진짜 존 말코비치가 진짜 존 말코비치인지에 대한 관객의 의구심과 함께.

통로로 육체를 옮겨다니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레스터 박사의 말이 시사하는 바대로라면 이 영화는 정체성에 관한 뭉뚱그려진 대부분의 불명확한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것의 실체는 영혼에 달려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했던 플라톤의 생각을 알았건 몰랐건 간에 이 영화는 ‘영혼은 영원불멸하는 정체성의 본질’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말코비치의 정신을 통제해버림으로써 그의 육체를 지배하게 된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을 지닌 ‘크레이그’이다. 그러나 그와 맥신을 제외한 모두는 그를 ‘말코비치’로 받아들인다. 진실이 어쨌건,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의 실체가 무엇이건 간에 사람들은 각자를 외모로 판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이 정신이라는 전제 뒤에, 그러나 ‘남이 받아들이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영혼의 껍데기인 육체의 보증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남이 받아들이는 나와, 내가 나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내가, 평범한 우리에게는 별다른 충돌없이 동일인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남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짜릿한 통로 따위는 없거나 혹은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불안정한 영혼은 안전하게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서 기껏해야 여러 가지 상상으로 자유를 꿈꿔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쯤해서 우리는 이러한 가면놀이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우리가 결코 존 말코비치, 혹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 어떤 다른 사람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된다.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종종 탄식하곤 하는 우리는 내 속에 숨어 있는 여러 ‘나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쪽에 가깝고, 그런 여러 ‘나들’을 매순간 기억하고 간직한다는 점에서는 존 말코비치가 되는 사람들쪽에 가깝다. 가장 무거운 동시에 가장 가벼운 가면무도회는 우리의 일상적인 고민 안에 녹아 있다. 많은 경우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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