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선택>의 선택 [1] - 홍기선 vs 이은 ①
2003-10-17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선택>의 홍기선 감독을 ’주류 영화인’ 이은이 만나다

<선택>이 문익환 목사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줄 것 같지는 않다. 45년의 두터운 세월을 홀로 버틴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의 신념을 온전히 보여준다는 건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욕심이 아닐까. <선택>은 그의 신념 혹은 이념을 ‘선동’하거나 ‘선전’하고자 하지 않는다. 자신의 끔찍한 운명을 끝내 사랑한 한 인간을 차분히 응시할 뿐이다. 그 삶의 방식은 0.75평 감옥 안이나 밖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는 생의 조건을 견디는 가르침일지 모른다. <선택>을 보다보면 또 다른 김선명이라 할 홍기선 감독이 궁금해진다. ‘비린내나는 리얼리즘’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만들고 <선택>을 내놓기까지 10년. 그는 왜 그 먼 길을 그토록 힘겹게 걸어왔을까? 80년대 영화운동을 주도했던 장산곶매에서 홍 감독과 함께했던 이은 감독이 그 질문을 대신 해주었다. 홍기선 감독과 이은 감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거쳐 ‘비운의 공산주의자’ 김산의 삶을 그리는 <아리랑>과 한국전쟁 당시 도처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의 한 현장을 다루는 <노근리>를 준비 중인 명필름의 이은 감독은 주류 영화계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현실을 고민하는 영화인이다. 뿌리는 같으나 확연히 다른 처지가 된 두 감독에게 대담을 청했다.

장기수로부터 감동과 슬픔을 얻다

이은 | 시나리오를 예전에 봐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관계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배우들도, 촬영감독도 모두들 과거의 동지들이라. 옛날로 돌아간 듯도 하고. 후배로서 보필을 못했다는 게 가장 많이 맘에 걸렸어요. 여러 감회가 떠오르는 상황이라 지금도 계속 기분이 이상한데요.

홍기선 | 그거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이은 | 더 나은 현실을 위해 영화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를 보게 돼서, 그것도 내가 아는 분들이 만든 영화를 보니 약간 혼란스럽다고 할까요. 이라크전을 보면서 지식인들이 느끼는 가엾은 신세와 송두율 교수 사건이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와중에 겪는 느낌이 비슷한 상황이라서 더욱 그래요

홍기선 | <아리랑>과 <노근리> 등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선택>은 어떤가요?

이은 | 골치가 아프죠. <노근리> 준비하면서 현실과 영화가 잘 구분되지 않는데, <선택>이 세상에 나와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요. 장산곶매 시절 <완전한 만남>(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그린 김하기 소설)의 영화화를 준비하려 하기도 했는데, 사실 저는 지금도 장기수 분들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정리가 안 돼요. 송두율 교수 문제도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데, 정리 좀 해주세요.

홍기선 | 정리가 안 된다는 게 어떤 점인지….

이은 | 영화에서 “감옥 안에 내 자유가 있었다”고 정리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동시대인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달까.

홍기선 | 80년대 말 빨치산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면서 관심을 가졌죠. 특별사동에 있는 장기수가 처음 알려진 시점이었으니까. 특별사동이 분단의 한 전형이므로 그 상황을 압축해서 잘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했지. 취재를 하면서도 제작을 하겠다고 감히 엄두는 내지 못했고 나이 많은 분들이어서 일단 취재부터 해놓고 보자였어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도 멍텅구리 배를 취재하다보니까 선주, 목포 상인들, 선장, 선원들, 소개소 등이 우리 사회의 축약을 먹이사슬처럼 보여주더라고. 사실 상업적 판단에서 출발한 건 아니지. 80년대 사고에서 선택한 거고 그래서 오랫동안 고생한 거고.

이은 | <선택>은 장르로 치면 드라마고, 대중적인 메리트라면 감동적이고, 인간적 요소가 있어요. 한 인간이 소박한 자유를 위해서 너무나 긴 시간 동안 타협하지 않고 사는 데서 감동을 느끼지 않을까요?

홍기선 | 부산영화제의 뉴커런츠 부문에서 이 영화가 유일한 한국영화였는데, 영화제쪽에서 일부러 1천석 넘는 곳에서 상영하는 배려를 해줬어요. 놀랍게도 꽉 찼고,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영화제 게시판에 무거운 영화인 줄 알았는데 감동도 있고 슬펐다는 의견이 많이 올랐어요.

이은 |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어요?

홍기선 | 영진위에서 4억원을 지원했고, 나머지는 신씨네 등에서.

이은 | 나머지는? 자세한 건 보안? (웃음)

홍기선 | 흥행 잘되면 그때 가서. (웃음) 이 영화 가지고 북한 반응에 대해서 묻는 등 이상한 반응이 툭툭 나오는데 오히려 젊은 층들은 그런 것에 굉장히 냉소적이에요. 전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핵문제도 그렇고 신문, 방송이 쓸고 지나가서 그렇지 젊은 층은 냉정하게 보거든.

김선명과 송두율, 혼돈은 지속된다

이은 | 영화와 지금 시국이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이 사회의 이상한 갈등을 어떻게 보세요?

홍기선 | 그게 분단상황에서 오는 거지. 이 영화도 그 상황에서 오는 거고. 냉전시대의 산물이 유독 우리 사회에서만 나오는데, 이 영화가 그 원인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지만 어떤 방식이든 분단은 극복해야 한다, 과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실 뉴스를 보긴 하지만 송 교수 사건에는 무관심한 쪽이 아닌가 싶어요. 혼자서 영화 준비하고 사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도 정치에 무관심한 축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노근리>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려고 해요?

이은 | 시나리오를 써가고 있는 중이라서 아직 말하기는 어려운데…. 아까 잘 정리 안 된다고 했던 게 김산의 <아리랑>도 <선택>처럼 있었던 일과 실존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데 어려워요. 저한테도 이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김선명 선생도 그렇고 이인모 노인도 그렇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김일성주의자라는 거죠. 내가 그 인물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노근리>라면 선량한 주민이 평화롭게 살다가 갑자기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 죽더라, 가슴이 아프더라. 또 <김산> 같으면 미국 여기자가 본, 일제에 저항하며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지식인이었다, 라고 멋있고 쉽게 보여요. 근데 어려워요. 난 남한에 사는 지식인인데 북한에 가서 사는 걸 아주 긍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있거든요.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할까. 홍 감독님은 그런 것 없이 한 인간을 자연스레 그렸어요.

홍기선 | 그 생각에는 저도 공감해요. 장기수 분들 만나서 얘기 듣다보면 말 안 하는 것도 있거든요. 김선명 선생을 히어로로 그리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그렸어요. 자신없는 부분은 말하지 않는 거죠. 감옥 안에서의 꿈과 신념, 특이하다기보다 보편적인 걸 지켜내는 것, 그걸 강압하는 오태식이라는 인물 등 전형적인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전형화하려고 했어요. 인물들의 배치나 중심이 이쪽으로 와 있는 게 내가 모르는 거, 특히 북쪽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거거든요.

이은 | 세계적인 필름메이커로 영국의 켄 로치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이번 달에 방한도 하지요. 홍 감독님이 켄 로치와 비슷해요.

홍기선 | 괜히들 하는 이야기지.

이은 | 홍 감독님 같은 분이 저 같은 사람에게 가장 콤플렉스를 많이 느끼게 하는 분인거 같아요. 그 전까지는 김동원 감독님, 외국인으로는 켄 로치였는데. 저는 영화사를 경영하는 이른바 자본가이고, 프로듀서로 비즈니스도 하고, 또 때로는 영화라는 콘텐츠만 놓고보면 진보적인 것도 하니 혼란스럽죠. 일단 현실에서 살아남아 이겨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는 저로서는 <선택>을 보면 고민이 돼요. 저한테 불만까지는 아니지만 섭섭하다거나 기분 안 좋은 게 있으시죠?

현실과 본질적 가치의 경계에서

홍기선 | 2년 전인가 펀딩이 잘 안 될 때 <공동경비구역 JSA>가 잘돼서 주변에서 한번 말해보라고들 해서 이 감독에게 말을 꺼냈었죠…. 그때는 약간 섭섭한 생각도 나지만, 어떤 면에서 규모가 커질수록 고민이 더 많아진다는 걸 나도 아니까. 나 같은 상황이 오히려 편하지.

이은 | 옛날 동지들이 영화에 등장하고 스탭으로 참여하고 그랬는데 촬영하면서 어떤 이야기들 하고 그랬을까 궁금하던데요.

홍기선 | 촬영이 너무 빡빡해서 이야기 나눌 틈도 없었어요. 내가 술 좋아하잖아. 그런데 술 마실 틈도 없이 빡빡하게 갔으니까. 그렇다고 막 찍을 수는 없고, 다행스럽게 스탭들이 공감하고 들어온 것이라서 쉽게쉽게 가지는 않았어요. 밤샘을 계속 강행했지만 문제는 하나도 안 생겼어요. 난 저예산이란 단어 싫어해요. 충무로 경험이 일천하지만 50억원대 블록버스터보다 이런 영화 만드는 게 더 힘들어요. 저예산을 아래로 내려보는 게 싫어요. 뭐 좋은 단어가 없을까.

이은 | 그냥 영화죠.

홍기선 | 언론에서 자꾸 저예산이라고 하니까. (조용히 앉아 있던 정성훈 프로듀서가 극중 김선명과 감독님이 유사하다는 느낌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진행과정이나 인생이 닮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처럼은 아니지만 나도 포기를 했죠. 예전에는 악착같은 게 있었지만. 초기 영화운동을 하면서 명예 같은 게 있기도 했고. 어느 순간 그게 포기가 되니까 그 다음 득도가 되고. 아니 득도까지는 아니겠고.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냐 하는 생각도 들고.

이은 | <가슴에…> 이후 리얼리즘영화를 빨리 또 하나 만들어야지 하는 조바심 같은 게 사라진 거겠죠.

홍기선 | 미련을 버린다, 가 맞는 것 같네. 노인의 모습이 그런 거 아닌가요.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린 것. 농민들의 표정이 그래요. 땅과 함께 땀흘리면서 시간을 보면서 갖게 된 얼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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