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아카데미 20년 [5] - 영화광 정성일이 `질투심으로` 날리는 충고
2003-11-07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당신들이 그때 잘 했던 것을 지금도 보고 싶다

(매우 비통한 이야기지만) 나는 영화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했다. 영화아카데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개교했지만, 나는 그때 소년 가장이었다. 나는 취직을 했고, 정말 한없이 부러운 심정으로 내 친구들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난 그때 진정한 영화광이란 결국 영화를 만드는 마지막 계단에 올라야 한다는 트뤼포의 말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영화 스터디를 하던 김소영은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으로 입학을 했고, 황규덕은 속마음도 모르고 너 내년에 시험 볼 거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로 영화현장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걸 보면서 떠들어대는 것은 다 헛수작들이거나, 잡담이거나, 그도 아니면 질투이다. 영화평론가란 아무리 잘해봐야 이류 영화감독이다(그래도 삼류감독들보다는 낫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하여튼 영화아카데미 1기들과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 모두와 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부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으며, 나도 언젠가는 이 학교에 다니고 말 거라는 결심을 다지고 다시 다졌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일년 만에 졸업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차라리 빨리 현장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결심을 망설이는 동안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영화잡지 편집장이 되었고(<로드 쇼>), 나는 그때 막 29살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그 망설임을 후회한다.


그 사무치는 망설임을 안고서 나는 그들의 졸업작품을 기회가 닿는 대로, 그렇게 닥치는 대로 보았다. 그리고 낯선 사실을 발견했다. 정말, 정말로 내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카데미 졸업작품인) <공무도하가>를 만든 김소영이 왜 따분하게 아직도 아이들과 칠판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소망하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페스탈로치가 아니다. 혹은 <목소리>를 만든 유지나가 무엇 때문에 지지부진하게 온갖 잡다한 명함을 부여안고 시시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목소리>의 시각장애 주인공은 <선택>의 감독 홍기선이다!). 당신은 12년 전 내게 무엇이라고 말했던가? 만일 글쓰기로 뒤라스와 겨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친구들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화로 뒤라스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는 <창수의 취업시대>를 만든 김의석이 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버려두고 장르영화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정말 그의 졸업작품을 좋아한다. 또는 황규덕이 두편의 영화를 만든 다음에 왜 12년 동안 마냥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박광수 선배는 19년 전 황규덕이 방위 시절에 만든 영화를 보던 자리에서 그는 매우 좋은 감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사실 광수 형은 남의 영화를 여간해서 칭찬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계속해서 명단을 추가할 수도 있다. 그들은 정말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영화아카데미는 세상과 만나지 못했다. 혹은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그들의 후배들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변혁과 이재용의 <호모 비디오쿠스>에는 쇼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의 길을 각자 걸어간 다음의 행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기어이 임상수의 졸업작품을 찾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거부하려고 하는 충무로의 영화를 자꾸만 (나쁜 의미에서) 닮아간다. <바람난 가족>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진부한 영화이다. 그는 자신이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 가졌던 꿈을 어디선가 흘렸다. 혹은 허진호의 가장 솔직한 영화는 <고철을 위하여>이다. 그의 주제는 결국 어디선가 끈을 놓친 가족이다. 그러니 제발 멜로드라마로 위장한 채 본심을 빙빙 돌려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순정만화 같은 말투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좋은 상업적 전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사실 그는 그걸 잘하지도 못한다). 그렇게만 하면 그는 홍상수와도 맞장 뜰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실 허진호가 하려는 척하는 것은 이정향이 훨씬 잘한다. 그러나 이정향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놔두고 자꾸만 기획영화에 매달린다. 그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또는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고치지 못한 것은 졸업하고 나서도 나쁜 습관이 되어 악착같이 쫓아다닌다. 이를테면 봉준호는 아카데미 다니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약점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지리멸렬>(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잘못 편집된 추적장면이 <살인의 추억>에서도 고스란히 실패로 반복된다. 혹은 민규동과 김태용(과 박은경)의 <열일곱>은 통쾌무비한 십대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그해 나온 <나쁜 영화>보다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장편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이수연의 <라>는 귀기 서린 요염한 영화이다. 하지만 (그토록 야심적이었던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은 그 기분(aura)을 가져오지 못했다. 당신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원래의 자신의 것을 다시 가져와야만 한다.

물론 당신들은 알 것이다. 이 모든 말이 내가 영화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한 질투와 부러움에서 온 못된 심술이라는 것을. 그들은 영화아카데미에서 그렇게 전투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들 자신의 진심을 가지고 연출했으며,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들 자신의 평생의 테마를 안고 졸업하였다. 영화아카데미는 그런 학교이다. 그건 학교에서 누가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동료들을 설득하고, 다투고, 달래고, 속이고, 억지를 부리면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간신히 획득한 것이다. 그들 자신(을 대신해서 지금 영화아카데미의 원장을 하고 있는 박기용)의 말을 빌리면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가르쳐준 곳”이다. 아마도 그것이 영화아카데미의 정신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영화아카데미의 입학심사나 졸업작품 평가회에 불려가면 매우 악랄하고, 잔인하고, 끈질기게 질문한다(그래서 나 때문에 울고 나가는 졸업생이나 입학지원자들이 있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것이 영화아카데미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고백하건대) 내가 영화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한 데서 오는 심술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나를 가엾게 여겨야 한다. 불타는 질투심으로 당신들의 이십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천삼년 시월 마지막 목요일 정성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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