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임권택 감독의 신작 <하류인생> [3] - 촬영현장 ③
2003-11-28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주연배우 조승우, 김민선

“<춘향뎐> 때부터 조승우에게 깡패 역할 시키고 싶었다”

<하류인생>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대개의 반응은 의외라는 쪽이었다. 최태웅 역의 조승우는 <춘향뎐>에서 임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지만, 깡패로 출연하기에는 다소 유약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박혜옥 역의 김민선은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를 살아온 여인이라고 하기엔 신세대 이미지가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두 주인공을 확신을 갖고 선발했다고 말한다. 특히 조승우의 경우, <춘향뎐> 공개 오디션 때부터 깡패 역할로 기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응모서류에 벽에 기대고 찍은 전신사진을 같이 보내왔더라. 아니, 무슨 생각으로 그 따위 사진을 보내왔는지….

하여튼 그걸 보는데 언젠가 깡패를 내세워서 영화를 찍으면 이놈을 쓰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올해 초부터 캐스팅을 통보받은 조승우는 2개월 동안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초단을 따는 등 기본적인 무술을 익혔고, 그 이후 무술팀에 합류해 매일같이 영화에 필요한 액션을 연습했다. 상당수 ‘다찌마와리’ 장면에서 직접 연기를 소화했을 정도로 그의 몸의 감각은 타고났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춘향뎐> 때는 멋도 모르고 감독님 시키는 대로 따라 했는데, 두 번째 하니까 더 어렵다”는 그는 “에너지가 강한 캐릭터인데, 눈에 힘만 주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져가야 한다는 게 어렵다. 또 영화 속에서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가는데, 그 인물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김민선은 “찍기에 따라서 대단한 매력을 뽑을 수 있다”는 임 감독의 확신에 의해 발탁됐다. 그가 맡을 박혜옥이란 캐릭터는 최태웅보다 2살 연상답게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갖춘 여성이다. 때문에, 김민선이 기왕에 갖고 있던 신세대 이미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김민선에게 <하류인생>이 각별한 것은 한국영화 최고의 대가들과 작업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크랭크인 전날, 그는 모친상을 당했다. “영화 속 시대가 어머니의 유년기라서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어머니가 걸었던 곳을 걸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아련하고 마음이 좀 그렇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그로서는 촬영이 한겨울에 이뤄진다는 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존경하는 감독으로부터 “혼나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있어 즐겁다고 그는 말한다.

신중현 음악감독 인터뷰

“예인(藝人)의 혈기가 수그러드는 시기를 음악으로”

이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영화를 준비하던 어느 날 이태원 사장이 노래방에서 내가 만든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를 부르다가 갑자기 내가 떠올랐다고 한다. 바로 그날, 이 사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마침 임권택 감독도 내가 만든 <님은 먼 곳에>를 틀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두분 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현재 작업은 어느 정도 했나. 아직 곡은 못 만들었다. 임 감독이 그동안 촬영한 내용을 주기로 했으니 화면에서 분위기를 감지해 테마를 잡으려 한다. 한때 예인(藝人)들이 혈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정치변화 과정을 통해 예인들이 무력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갖고 있는지. 나 역시 그 시대를 몸으로 접했던 세대다. 임 감독과 이 사장으로부터 얘기를 듣는데 금방 감지하겠더라. 기본적인 테마를 만들어야 할 텐데, 요즘 그러듯 외래음악을 잘라붙이고 해서는 완전한 영화음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기회에 표현하고 싶다.

임 감독 영화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그게…. 하도 오래돼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이 작품의 제목은 임 감독도 기억 못한다) 그때 이것저것 바쁘던 시절이라 기억이 뒤죽박죽돼 있다.

예전에는 영화음악을 많이 했었나. 그렇다. 꽤 했고, <푸른사과>나 <김선생과 어머니>라는 뮤지컬영화에도 참여했다. <미인>이라는 영화에는 음악뿐 아니라 출연도 했다. 그런데 안 좋은 일(대마초 파동)이 터지면서 음악도 금지되고 영화도 금지됐다. 그 이후로 영화음악은 한 적이 없다.

그렇게 오랜만에 영화음악을 맡게 되니 포부가 클 것 같다. 예전부터 대범한 음악을 좋아해 큰 영화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계속 무산되고 그러면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달 전인가 이태원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의욕이 확 되살아났다.

<하류인생>은 어떤 영화?

시대의 어둠이 낳은 사나이들

50년대 후반, 껄렁하게 살아가던 최태웅(조승우)은 친구의 앙갚음을 위해 홍익고교의 주먹을 두들겨팬다. 그 광경을 본 홍익고교 학생 박승문은 분개해 태웅의 허벅지에 칼을 꽂는다. 분노한 태웅은 칼이 꽂힌 채로 승문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승문의 누나 혜옥(김민선)과 눈을 마주하게 된다. 혜옥은 남의 집에 와서 “네가 칼을 뽑아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태웅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웅은 명동파에 가입하면서 건달 생활을 시작하고, 혜옥은 교사가 된다. 하지만 명동파는 재룡이파의 습격과 자유당의 음모로 와해되고, 태웅은 영화계로 들어간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결혼을 하게 된다. 순수했던 태웅의 모습을 알고 있는 혜옥은 태웅이 깡패 생활만 청산하면 건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4·19, 5·16이 잇따라 터지며 태웅의 삶도 걷잡을 수 없이 시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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