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임권택 감독의 신작 <하류인생> [1] - 촬영현장 ①
2003-11-28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하류인생> 촬영현장 3일간의 동행기

임권택, 혼탁한 시대로 되돌아가다


영화 촬영장을 엿보는 건 신기한 일이다. 몇초짜리 한 장면을 얻어내기 위해 수 시간, 수십 시간 아니 며칠 동안 노력하는 감독과 스탭, 그리고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스크린 이면에 자리한 뜨거운 진실을 알게 되는 듯해 흐뭇해진다. 일반적인 영화현장이 그럴진대 시대의 거장이 지휘하는 촬영장은 어떻겠는가. 그건 분명 살아 움직이는 영화사의 주요한 순간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99번째 작품 <하류인생>을 만들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촬영장을, 그것도 3일 동안이나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과분한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 손동작 하나, 갸우뚱거리는 고갯짓 하나에도 영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었던 거장과의 황홀한 만남.

11월16일 서울시 중구 저동 중부경찰서 앞

“그는 아무리 잊고 싶어해도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 한국적 시간이라는 영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타임머신으로서의 영화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임권택의 영화는 더도 덜도 아닌 영겁회귀다.”(정성일,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현문서가 펴냄) 12쪽)

임권택 감독에게 한국 현대사의 질곡은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그 자신이 이 주름많은 세월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4.19 당시, 이기붕 집 앞에서 집기를 마구 들어내는 현장에 있었으나 '빨치산의 아들' 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차마 동참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일요일의 도심은 을씨년스럽다. 11월16일 <하류인생>을 촬영하는 서울의 뒷골목도 마찬가지였다. 급작스레 수은주가 영상 2도로 떨어진 탓에 도심의 속살은 더욱 쌀쌀하게 보였다. 평소 같으면 발걸음이 뜸했을 이곳이 북적거린 건 이날의 촬영 때문이었다. 오전 9시쯤인데 촬영장 입구에는 벌써 150여명의 보조출연자가 웅성거리며 입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서울 영상위원회의 협조로 길을 완전히 통제한 이곳에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은 새벽 5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배경이 4월이다 보니 은행나무의 노란 이파리를 하나하나 뜯어내는 일이며, 촬영 예정지에 신도들이 불법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 포스터 부착 등을 마쳐야 예정대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촬영분은 주인공인 태웅(조승우)이 건달 패거리의 상관 상필(김학준), 부하 춘식과 함께 전직 국회의원의 빚을 받으러 가는 도중 4·19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장면. 이 과정에서 태웅은 시위에 참가한 서울대학생 승문을 만나게 된다. 그는 훗날 태웅과 결혼하게 되는 혜옥(김민선)의 동생. 아무 생각없이 거리에 나왔다가 시위대를 향해 욕을 뱉는 춘식이와 시비가 붙어 길바닥에서 뒹굴게 된다.

사실, 4·19라는 사건은 이들 건달에게 하등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임 감독에 따르면 이들은 “세상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하류인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하찮은 인생들의 발걸음을 4·19 시위대와 맞닥뜨리게 한 이유는 뭘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태원 태흥영화 사장이 힌트를 준다. “그때는 건달 아니라 사회의 하층민들도 저런 놈들이 데모하는 것을 보면 배알 꼴려했다고. 나는 배가 고파서 하루하루를 허덕이는데,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갔는데 잘난 놈들이 저러고 있으니 그럴 것 아니냐고.” 4·19 장면은 건달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다. 이들이 아무리 하류인생일지라도 결코 역사의 격랑을 피해 지나칠 수 없다는, 일종의 운명을 예감케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전 촬영은 좁은 골목길 안에서만 진행됐다. 사람들이 경찰에 쫓겨들어오는 장면을 찍는데, 얼핏 보기에 별다른 미술효과를 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앵글 안 풍경은 영락없는 60년대다. 김승호, 허장강이 나오는 <저 언덕을 넘어서> 포스터나 표어 같은 소품도 큰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도심의 뒷골목 자체가 묘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이다. 좁은 골목과 계단, 낡은 벽, 그리고 그림자 등이 당대로 돌아가게 한다. 사실, <하류인생>은 9월7일 크랭크인 이후 그동안 광화문, 삼청동 등 서울 도심의 뒷골목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해왔다. “다른 이들은 옛 서울 모습을 찍기 위해 지방 소도시에 가는 모양인데, 그런 곳일수록 더 찍을 데가 없어요. 부산에만 그런 풍경이 좀 남아 있죠. 결국 서울 도심의 뒷골목에서 찍어야 한다는 거요.” 일찍부터 서울에서 찍을 계획을 세웠던 임권택 감독은 연출부와 함께 서울 도심 곳곳을 돌며 철저하게 헌팅을 했던 것이다.

오후가 되자,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4·19 시위장면 촬영이 시작된다. 시위대가 길가에 늘어서서 구호를 외치고 있으면, 낚싯대에 매달린 특수화약이 펑펑 소리를 내며 최루탄처럼 터진다. 거리에 퍼지는 하얀 분말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보조 연기자들의 모습이 너무 실감나 마치 ‘가투’ 현장에 나온 양 착각이 들 정도다. 일부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돌을 던진다. 바람이 조금 부는 날이라 스티로폼 안에 진짜 돌을 집어넣었더니 그 또한 실감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큰 촬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임 감독은 평온한 모습이다. 정일성 감독, 김영빈 감독, 조감독 등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모니터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혹시 그는 잠시 도도한 세월의 흐름을 되새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일제시대에 태어나 10대 시절 해방공간의 피비린내를 살았고, ‘빨치산의 아들’이란 ‘주홍글씨’를 새긴 채 4·19, 5·16, 유신, 광주항쟁 등 세월의 비극을 넘어왔던 그 자신의 삶이 이 ‘복원’된 공간과 시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임 감독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11월17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안 <하류인생> 오픈세트

“항상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아주 피가 끓습니다… 말씀은 황송하오나 도승지 민 어른 댁 ‘노안도’는 제 십년 전 그림이옵고, 그걸 어찌 다시 그릴 수 있겠습니까. 환쟁이한테 반복은 곧 죽음이옵니다.”(<취화선> 중 장승업의 대사)

조승우가 골목을 누비며 격투를 벌이는 롱테이크신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호쾌한 액션장면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60년대 내 액션영화와 비교해보려 했던 <장군의 아들>처럼, 이번에도 <장군의 아들> 이후 내 액션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싶다"는 임감독의 포부는 이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왼쪽 사진). 혜옥이 태웅을 찾아다니는 장면도 똑같이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앞선 장면이 좀더 사실감 있고 다이내믹한 액션을 담으려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태웅에게 끌리는 혜옥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촬영장면을 보던 임감독은 여경보 스테디캠 기사에게 "이게 너무 부드러워서 안 아파" 라고 말했다.(오른쪽 사진)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안에 차려진 <하류인생> 오픈세트에 들어서니 정말 시간을 거슬러온 듯 어안이 벙벙해진다. 1600여평의 대지 위에 건설된 이 세트는 60년대의 명동 골목을 꼼꼼히 재현하고 있었다. <취화선> 오픈세트를 만들었던 주병도 미술감독의 정교한 솜씨는 단지 그 시대의 공간을 재현한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체취까지 맡게 해준다. “화려하면서도 슬프게 만들어달라”는 임권택 감독의 주문을 받은 그는 밤에는 화려하지만 낮에는 쓸쓸한 느낌이 배어나도록 세트를 꾸몄다.

이날의 배경은 전날에서 2년을 거슬러온 1958년.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촬영분은 태웅이 혈혈단신으로 동대문파에 맞서 싸우다 얻어맞는 장면이었다. 임 감독은 골목으로 도망치던 태웅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상대 무리와 격투를 벌이는 모습을, 스테디캠을 이용해 한컷 안에 담으려 했다. 이동거리로는 150m 정도 되며, 시간으로 따지면 40초가 넘는 장면을, 그것도 실감나는 액션을 하는 가운데 딱 한 호흡으로 찍어내겠다니. 스탭들은 이 장면을 이날 밤 안에 끝낼 거라고 생각지 않는 눈치다. 하긴, 임 감독조차 “이게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찍힐지 잘 모르겠단 말이요”라며 초조한 모습을 보이니.

임권택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116명의 신인배우를 선발했다. 극단 학전 소속 배우들을 비롯해 연극배우들이 대다수지만, 연기학원 등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예비 연기자들도 여럿 발굴됐다. <지하철 1호선>등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했던 김학준(흰 양복 차림의 연기자)은 주요 배역 중 하나인 김학준 역을 맡았는데, 잠깐이나마 이런 배우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포커스를 캊춰주려 애쓰기도 했다.

저녁 9시 무렵 리허설이 시작됐다. 임 감독이 나서 이곳저곳을 신경 쓴다. 무술팀의 호흡이 맞지 않자 목소리가 갑자기 격앙되기도 한다. 유난히 씩씩한 목소리의 무술감독은 임 감독의 주문에 따라 새로운 합을 짜서 보여줬고, 임 감독은 자신의 의견을 붙였다. 리허설 결과에 따라 그는 배우들의 동선, 액션의 모양새를 조금씩 바꿔갔다. 30여명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조절하던 임 감독이 마침내 “하이, 슛”을 외친다.

첫 테이크는 배우들 사이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두 번째 테이크에선 무술연기자의 “핫!” 하는 기합을 “컷!”으로 착각한 조승우가 잠시 연기를 멈추는 바람에 NG가 났다. 모두 지친 탓에 잠시 쉰 뒤 세 번째 테이크가 이어졌다. 40여초의 촬영이 끝난 뒤 모든 스탭이 잘됐다는 표정을 짓는데, 임 감독이 고개를 젓는다. “여기서 가슴을 정확하게 쳐야 돼요, 여기서도 잘 안 맞았어. 좀 시원시원하게…”라며 주문한다. 결국 네 번째 테이크에서 임 감독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케이”를 외친다. 긴장하며 임 감독의 입을 보던 스탭들이 일제히 우렁찬 박수를 친다. 이때가 밤 11시30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모두들 시계를 보며 의외란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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