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윤인호 감독
말만 하지 말고 먼저 돌아봐
위기철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아홉살 인생>은 어른들이 보는 동화다. 가난한 집안에서 컸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 여민의 눈에 비친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이 오랜 추억이 담긴 앨범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약속> <보리울의 여름> <와일드카드> 등의 시나리오를 쓴 이만희 작가가 각본을 썼으며 <바리케이드>와 <마요네즈>를 연출한 윤인호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가족에 관한 다른 영화를 준비하다가 황기성사단의 제안을 받고 원작소설을 읽게 됐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내가 9살 때 겪은 이야기라고 느꼈다. 70년대 중반 나도 9살이었고 그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가슴에 와닿았다.
-오늘날 가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가족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돌아보자는 것이다. 돌아보기만 하면 해소될 문제도 돌아볼 틈이 없어서 심각해지곤 한다. 돌아본다는 것이 추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돌아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그 사람도 내게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우, <바리케이드>와 <마요네즈>에 이어 <아홉살 인생>까지 모두 가족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과 많이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 같다. <바리케이드>를 보고 아버지가 나한테 “말로 하지, 영화로 만들어서 돌려 말하냐”고 했고 <마요네즈>를 보고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못된 엄마였냐”고 되물으셨다. 두 영화가 나와 내 가족에 관한 영화였다면 이번엔 나와 다른 모든 가족의 얘기가 될 거 같다.
-가족에 관한 기존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9살 소년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점이다. 내가 했던 영화 가운데 등장인물의 범위가 가장 넓고 시각도 좀더 객관적이다. 어렸을 때 시각을 통해 어떤 정서와 공감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가족에 관한 영화로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굳이 가족에 관한 영화로 꼽긴 힘들고 <일 포스티노>나 <시네마천국> 같은 영화를 꿈꾸고 그런 정서를 담고 싶다. <일 포스티노>를 보면서도 주인공의 외로움이 가족과 떨어져 있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봤다. <시네마천국>의 영사기사도 또 다른 가족이다. 그가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걸 돌아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족> 이정철 감독
위한답시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럼 안 돼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는 남매의 이야기. 주인공은 절도 4범의 전과자 정은으로 교도소에서 나와 2년 만에 아버지와 해후하지만 잠시 뒤 아버지가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상처를 줬던 가족이 죽음과 싸우면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패자부활전>과 <비천무> 연출부를 거친 이정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작품으로 올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월드컵 때 홍명보가 페널티 킥을 차넣었을 때 축구를 잘 모르는 아내가 우는 걸 봤다. 며칠 뒤에 장례식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상주가 되어 장례 치르는 것을 봤는데 이 두 가지 사건이 <가족> 시나리오를 쓰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가 자식을 남겨두고 죽는 이야기를 희망적으로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가는 아버지는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 아들에게 상주의 역할이 축구팀 주장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장이나 상주나 팔에 완장을 차는 것이 똑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 장면을 가장 먼저 썼다.
-오늘날 가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가족끼리 서로 위한답시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그래야 서로 편하고 쉬운 관계가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가족에 관한 기존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이 영화에서는 병에 걸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일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 대체로 건너뛰고 묘사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아버지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는가도 중요한데 <가족>의 아버지를 보면서 부모세대가 갖고 있는 희생정신을 돌아봤으면 싶다.
-가족에 관한 영화로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인의 향기>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마빈스 룸>과 비슷한 거 같고. <여인의 향기>는 눈이 멀어가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캐릭터를 풍성하게 표현하는데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맹부삼천지교> 김지영 감독
부모와 자식, 각자의 인생이 있다
한국의 비정상적 교육열을 풍자한 코미디. 동태장수 맹만수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를 하며 강남 대치동 아파트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곳에서 예상치 않은 문제에 직면하는데 바로 앞집에 조폭이 살고 있는 것이다. 맹만수는 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조폭을 쫓아낼 궁리를 시작하고 이로 인해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영어완전정복> 원안을 쓰고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각색한 김지영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사는 삶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요즘 애들, 중고등학생만 되면 가치관이 분명해지는데 부모가 자기 기준에 맞춰 스스로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맹모삼천지교는 옛날얘기일 뿐이다. 2004년에 어울리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소재는 신문을 보다가 찾았다. 강남 집값이 왜 그렇게 높은가, 따져보니까 교육열 때문이다. 자식 교육을 위해 목숨 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얘기다. 그걸 코미디로 풀면 재미있겠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가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저녁시간 TV드라마를 보면 대개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이야기다.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하길 강요하는 부모가 있고 그걸 극복하는 남녀가 있는. 그런 가족드라마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이 나름대로 가치관을 인정하고 그걸 존중해줘야 한다.
-가족에 관한 기존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기존 영화들이 갈등을 부각해서 화해로 끝맺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갈등이 풀리면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아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소되는 영화다.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서로 타협하는 모습을 그리려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아버지의 눈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영화다. 대부분 영화가 자식의 관점에서 구성되지만 <맹부삼천지교>는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거꾸로 어린 친구들이 아버지 세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장르는 코미디인데 조폭이 등장하지만 조폭코미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얘기다.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인 영화가 될 것이다.
-가족에 관한 영화로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수오 마사유키의 <쉘 위 댄스>를 좋아한다. <쉘 위 댄스>도 어떻게 보면 가족이 화해하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개성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천국의 아이들> <키즈 리턴> <인생은 아름다워> 등도 내게 영감을 준 영화들이다.
<우리 형> 안권태 감독
늘 옆에 있다는 것, 그 소중함을 아니?
연년생 형제가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감춰져 있던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모범생인 형과 반항아인 동생의 갈등이 영화의 기본축이며 원빈이 동생 역에 캐스팅된 상태. 3월에 크랭크인 해서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친구> 연출부를 했던 안권태 감독의 데뷔작으로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과 <똥개>를 만든 진인사필름에서 제작한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오랫동안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다 문제가 많은 형제의 이야기를 쓰게 됐다. 실제로 동생이 하나 있는데 동생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안에선 늘 심각한 갈등이 있는 가족, 그걸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오늘날 가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세상이다. 함께 살면서 애정은 있지만 표현하기 어렵고 무관심하기 쉽다. 늘 옆에 있어서 소중하다는 걸 모른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런 소중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족에 관한 기존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 영화와 차별성을 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주안점을 뒀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게 차별성이 될 수 있다. 코미디나 다른 장르적 요소가 아니라 정직하게 드라마에 충실한 영화라는 사실도 다르다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형제애를 다룬 <오! 브라더스>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우리 형>은 코미디 요소가 별로 없다.
-가족에 관한 영화로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길버트 그레이프>를 가장 좋아하는데 내가 닮고 싶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이고 씁쓸한 이야기인데 담담하게 풀어가는 화법이 좋다. 보고나면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