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1]
2004-01-29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엔터테인먼트의 신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자토이치>

<자토이치>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추게 된 것도 자신의 기획이 아닌 외부의 기획이라고 하는 '거리감'이 기타노 자신과 상승작용을 낳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토이치>에서는 배우로서의 비트 다케시를 포함해, 기타노 다케시에게서 일종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여유가 <자토이치>를 훌륭한 오락영화로 만들어 낸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비트 다케시의 이치는 피차별자가 아닌, 자유인에 가깝다. 이는 가쓰 신타로와 기타노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면서, 본질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타노 다케시판 <자토이치>와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시리즈의 차이점이 생기며, 동시에 기타노의 <자토이치>와 <요짐보> 사이의 공통점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주로도, 자토이치도 방랑하는 자유인인 것이다.

영화광이 아닌, 평범한 일본인이 알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이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는, 아니 정상이라는 말조차 이젠 의미가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신’. 한때는 일주일에 10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사회를 봤고, 지금도 거의 매일 하나 정도에는 나오고 있다. 2년 전 일본에 가서 인터뷰를 한 뒤, 가타노 다케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잠깐 방청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능청스럽게, 아까 한국의 기자들을 만났는데 그때는 진지하고 어려운 이야기만 했다, 지금은 이렇게 바보짓만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등의 농담을 늘어놓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타고,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아도 기타노 다케시가 최고의 코미디언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일본인이 알고 있는 다케시는 여전히 코미디언이다.

자신의 위상에 ‘복수’하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인생은 그런 선입견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했다. 1983년 오시마 나기사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 출연한 다케시는, 개봉한 뒤 혼자 극장으로 갔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불이 꺼진 뒤 들어간 기타노는 자리에 앉아 관객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화면에 기타노가 나올 때마다 관객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심각한 영화였고, 진지한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타노는 일본인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언이었을 뿐이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얼굴이 벌개진 기타노는 ‘복수’를 다짐했다. 감독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다>는 원래 후카사쿠 긴지가 연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기타노 다케시가 대신 감독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영화를 찍는지 몰랐던 기타노는 스탭의 도움으로 촬영을 시작했지만, 다툼의 연속이었다. 촬영감독이 이렇게 찍어야 한다고 말하면, 기타노는 완강하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기타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었고, 그것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기타노는 초기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기존의 일본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해왔고, 지금도 자신은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라고 자처한다.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거의 웃지 않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고 비정한 세계를 그리는 것은 자신의 ‘위상’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스크린 속의 자신을 보고 웃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복수’. 영화감독으로서 기타노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고, 결국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여전히 일본의 대중은 기타노를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만, 해외에서는 위대한 거장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모든 것을 얻었다. 직업으로서 코미디언이 돈과 사회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면, 영화감독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복수나 목표가 더이상 필요없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기타노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막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비> 이후의 기타노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기타노 다케시가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그뒤 <브라더> <기쿠지로의 여름> <돌스> 그리고 <자토이치>를 만들었다. <브라더>는 기타노 스타일의 영화에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작품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담은 소품이다. 이후 기타노는 아버지 이름인 기쿠지로를 제목으로 한 드라마 <기쿠지로>를 만들기도 했다. <돌스>는 형식주의에 빠진,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인형극의 장면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보겠다는 발상은 독특하지만 거기에는 기타노 다케시의 서명이 없다. <소나티네>와 <하나비>의 실존적인 방황과는 달리 <돌스>의 방황은 이유없는 도피이고 방황이다. 그리고 <자토이치>. 일본의 한 영화평론가는 <자토이치>를 ‘웰 메이드 오락영화’라고 말했다. TV에서는 오락을, 영화에서는 예술을 지향했던 기타노가 변한 것일까. 그러나 잘 살펴보면 <하나비> 이후 기타노의 영화는 점점 다양해지고 느슨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 추억, 형식주의, 엔터테인먼트 등 기타노는 자신의 영화에 여러 가지를 접목시키고 있다. 그건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일까? 영화감독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사라지고, 그저 만들고 싶어지는 것들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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