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4]
2004-01-29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자토이치>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 서면 인터뷰

구로사와가 말했다.“다케시, 난 자네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계속 그렇게 만들어!”

-<자토이치>는 원작, 그것도 대단히 유명한 원작이 있는 영화다. 왜 <자토이치>를 영화화하게 되었는가.

=이 프로젝트는 기대하지도 않게 사이토 치에코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분은 20년도 더 전에 내가 아직 코미디언으로 초창기였을 무렵, 아사쿠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나의 조언자였다. 그녀는 또한 <자토이치>의 가쓰 신타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몇년 전, 그녀는 나에게 <자토이치> 후속편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 제안은 꽤 흥미롭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항상 원했지만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시대극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내가 직접 주연을 맡기 원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가 가쓰 신타로를 대신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이토 치에코는 거절의 응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들어 수락했다. 내가 영화를 만들되, 검술에 달인이고 주사위 노름의 천재인 맹인 안마사 자토이치라는 주요 캐릭터만 남기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겠다고…. 모든 다른 것들은 온전히 나 자신의 창조력에 맡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한국인에게 자토이치는 낯선 인물이다. 원래의 자토이치와 당신이 만들어낸 자토이치가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다른지 말해달라.

=자토이치는 일본 시대극의 영웅들 중에서 진정으로 가장 대중적이다. 나는 일본에서 서른을 넘긴 모든 사람들이 자토이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자토이치는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은 마지막 영화 속의 그다. 그리고 현재 일본 젊은이들은 자토이치란 인물과 더이상 친숙하지 않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 영화를 전적으로 내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나의 시나리오는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영화들의 스토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배우로서, 나는 가쓰신(가쓰 신타로) 버전의 자토이치를 흉내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버전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다. 가쓰신의 자토이치는 검은 머리에 단색의 기모노를 입고 갈색 지팡이검을 든 사람이다. 그의 시대에 이러한 설정이 잘 먹혔다 하더라도, 나는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다른 나만의 자토이치를 만들고자 했다. 나의 자토이치는 실제로 매우 별난 사람이다. 그는 금발머리에 부드러운 다크블루 기모노에 핏빛처럼 붉은 지팡이검을 지녔다. 또한 정신적인 면에서도, 나의 자토이치는 다른 어떤 캐릭터들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분리되어 있다. 가쓰신의 자토이치는 대개 선하고 순수한 마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나의 자토이치는 완전히 착한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다. 단지 그는 나쁜 놈들을 처단할 뿐이다.

-전작인 <돌스>는 형식의 틀을 파고들었다는 느낌이다. 반면 <자토이치>는 완전히 통상의 형식을 벗어나버렸다. 단적으로 자토이치의 금발처럼. <자토이치>는 전작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누구는 기타노 최고의 오락영화라고도 하던데.

=명백히, 이번 작품은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내 전작들과 완벽하게 다른 영역 안에 있다. 사람들은 시대극은 현대물보다 의상이나 로케이션 등에서 그 시대적 사실성에 충실하기 위해 훨씬 더 엄격함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부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시대극에서 훨씬 더 창조적인 자유를 느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시대극에서는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모든 세부적인 것들은 실제 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로는 현대물보다 더 허구적이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옛날 옛적이라는 것을 암시해줄 수 있는 그 시대 스타일을 복제해 만든 가발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자토이치의 기본 전제- 맹인 안마사인 자토이치는 동시에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비밀스런 지팡이검을 뽑을 수 있는 검술의 달인이다- 를 그것 자체로 충분히 완전한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뽑아낼 수 있을 만한, 앞뒤가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얘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과거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은, 일상에 지쳐 마침내 폭발해버리는 타입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토이치>는 전혀 다르다. <자토이치>에서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자토이치는 실제 무적의 사나이다. 어느 누구든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그는 맹인이다. 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강한 캐릭터가 되어선 안 된다. 나는 결국 자토이치가 가진 ‘무적’, ‘강함’의 비밀을 “이건 영화다, 뭐!”에 두기로 결심했다. 나는 심지어 영화의 결말에 가서는 “자토이치가 결국 장님이 아닐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 자토이치가 당신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것이 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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