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위강, 맥조휘와 떠나는 무간도 투어 [2]
2004-02-13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정진환

-3편은 누아르라기보다 사이코드라마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3편은 주인공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지옥 그 자체가 드라마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 구현에 주력했다.

-3편에서 유덕화가 겪는 정신적 불안정의 이유를 무엇으로 보면 되나? 죄책감과 좋은 경찰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서 어디에 더 비중을 뒀나.

=물론 죄책감이다. 1편에선 진영인(양조위)을, 2편에선 메리(유가령)를 죽게 하면서 어둠과 밝음 사이에 몸이 반씩 걸치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완벽히 고립된 인물이다. 주위 사람들은 거의 다 죽어버렸고, 경찰 내부에선 자신을 믿지 않아 쫓기는 심정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두 가지 운명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압박감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실제로 장소에 따라 다른 사람인 양 살아가는 정신질환자의 사례를 조사했다.

-유덕화가 닥터 리(진혜림, 1편에서 양조위와 사랑에 빠졌고 양조위의 비밀을 알게 된 정신과 전문의)를 사랑하는 듯 보이는데.

=진짜로 사랑했다고 설정했다. 유덕화가 양조위에 대해 알게 되고, 마치 자기가 그 사람인 것처럼 느끼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3편에 정치적 함의가 가장 많이 담긴 것 같다. 외형상 홍콩과 중국이 합심해 악을 응징한다는.

=글쎄, 만약 정치적이라면 2편이 훨씬 그렇지 않을까. 사실 3편에 나오는 내용은 홍콩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70년대부터 중국 경찰은 홍콩에서 일해왔다. 이런 식이다. 홍콩 경찰서에 ‘나 중국 경찰이다. 이런 사람 조사 좀 해달라’고 하면 순순히 해주곤 했다. 맥조휘의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에 우린 그런 사실을 잘 안다.

-맥조휘 감독의 아버지가 경찰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러면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나.

=물론이다. 난 경찰 가족들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동료들이 어떤 압박감에 시달리는 걸 쭉 봐왔다. 8살 때인가 9살 때, 어느 날 한밤중에 총성이 들렸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보니 우리 아파트 동 입구에 앰뷸런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사체를 치우고 있었다. 나중에 같은 동에 사는 경찰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지.

로케이션 투어 2 (Location Tour 2) - 오디오 상점

캐릭터 사이의 공감이 오고가는 곳

<무간도> 세편을 통틀어 일관되게 등장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어떤 정서적 느낌을 전달하는 게 오디오에 대한 이야기다. 1편에선 진영인(양조위)이 잠시 봐주던 오디오 상점에서 오디오를 구입하러온 유건명(유덕화)과 처음으로 조우한다. 오디오에 대한 상냥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보이지 않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대척점에 서게 된다. 2편에서 메리(유가령)가 어린 유건명에게 곤숙의 암살을 지시하고 뒤를 봐주는 곳도 1편과 비슷한 오디오 룸이다. 3편의 마지막신은 1편의 오디오 상점이다. 스피커 안에 마약을 감춰놓았던 양조위가 손님으로 찾아온 유덕화와 마주치는 것으로 끝난다. 3편의 끝이 1편의 시작인 셈이다. 시리즈를 순환구조로 잇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 오디오 상점 안에는 고급스런 진공관 앰프가 뿜어내는 진중한 사운드로 가득 차 있었다. 남대문 시장과 용산전자상가를 합쳐놓은 듯한 상점 바깥의 소란스럽고 복잡한 풍경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아쉽게도 1편에서 인상적으로 흘러나왔던 옛날 가수 차이지(蔡琴)의 <被遺充的時光>은 들을 수 없었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마주치는 곳이 왜 하필 이곳일까?

“사실 초고에선 그들이 한번인가밖에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유위강 감독이 한두번 더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래야 관객이 공감할 여지가 생기지 않겠느냐면서. 그런데 어디서 만나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친구 중에 오디오 마니아가 있는데 그 친구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노래에는 이 앰프가 좋아’라고 늘 말하곤 했다. 그게 떠올랐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느낌이 좋겠다고 말이다.”(맥조휘)

1편의 시나리오는 속전속결의 홍콩에서 보기 드물게 7개월에 걸쳐 6번을 고쳐썼다고 했다. 2편에서 유가령이 “요즘 이렇게 비싼 오디오를 누가 사겠느냐”며 불평하는 장면이 나온다. 암살 뒤처리를 하는 마당에 그런 대사는 왜 넣었을까?

“진짜 그러니까. 부자는 많지만 오디오를 제대로 즐기는 안목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자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다. 장식용으로 놓기 위해 비싼 오디오만 사는 부자를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나도 오디오에 취미가 있지만 비싼 것보다는 좋은 것에 관심이 있다. 이곳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좋은 물건을 파는 곳이어서 촬영 장소로 택했다.”(유위강)

그의 사무실 곳곳에 진공관 앰프가 놓여 있던 게 떠올랐다. <무간도>의 성공 이후 이곳은 일종의 명소가 됐다. 유덕화가 이곳에서 광고까지 찍었고, 일본 팬들이 몰려와 물건을 사가는 통에 적잖은 매상을 올리고 있었다.

통역 권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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