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3부작은 21세기 홍콩 영화계의 첫 사건이 됐다. 마치 지난해 봄 <살인의 추억>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조폭코미디의 유행을 확실하게 마감짓자 충무로 제작자들이 “잘 만든 영화가 흥행도 된다”는 걸 모처럼 보여준 사실에 안도감을 내쉰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홍콩에 감돌고 있다. 유위강 감독은 “영화를 보지 않던 홍콩섬의 중산층 화이트칼라가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함으로써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70년대 중·후반 뉴웨이브가 일어나기 직전 다양하게 존재했던 영화클럽들이 이 영화는 왜 이런가 하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었으나 차츰 그게 사라졌다. 요즘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면 좋겠다”며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의 각 대학에서 특강 요청이 오고 있는데 그때마다 영화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고 문학적 요소가 생각보다 많고 좀더 주의깊게 봐야 할 점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연구주임이자 영화평론가인 웡 아인링은 “40대 초반의 내 세대들이 꽤 오랜 시간 영화를 도통 보지 않다가 <무간도> 시리즈로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을 봐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무간도> 3부작이 암시해준 홍콩 영화계의 변화의 현장은 다음호에 좀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번에는 그에 앞서 <무간도3 종극무간>의 국내 개봉(3월19일)을 앞두고 시나리오, 촬영, 공동연출을 해온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더불어 ‘무간도 총정리’를 해본다. <무간도> 3부작을 만든 유위강 감독의 제작사 베이직픽처스와 베이스필름 사무실에서 두 감독과 인터뷰를 가진 뒤에 1, 2편의 촬영지를 함께 둘러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간도> 3부작은 홍콩 정서의 3부작
유위강 감독은 넘쳐나는 활력만큼이나 야심찬 인물이었다. “장래에는 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다.” 그 출발점이라 할 베이직픽처스와 베이스필름 사무실은 미로처럼 여러 구획으로 나뉜 미니 종합스튜디오였다. <무간도> 시리즈의 시작과 더불어 마련한 공장 건물은 2년여에 걸쳐 유위강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꾸며 일할 의욕이 절로 나는 영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페인트칠도 직접 했고, 100년이나 된 옛날 영사기 등 온갖 소품으로 치장된 그곳은 2개의 시사실, 소품실, 편집실, 실내 세트장, 그래픽 디자인실, 시나리오 작업실 등이 알뜰하게 마련돼 있었다. <무간도> 시리즈의 경찰서 내부장면은 이곳의 실내 세트에서 촬영했고 그때의 소품이 지금껏 남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공동작업을 하겠다는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가진 뒤 로케이션 투어에 나섰다. 인터뷰는 주로 유위강 감독이 답을 해주었고, 맥조휘 감독이 보충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로케이션 투어 1 (Location Tour 1) - 노천식당
권력 이동, 그 상징적 사건의 현장
<무간도2 혼돈의 시대>는 97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1편의 전사다. 이야기는 어린 유건명이 삼합회의 오랜 보스 곤숙을 암살하면서 시작한다. 학구적 풍모를 지닌 곤숙의 둘째아들 예영효(오진우)는 패밀리의 권위에 도전한 4개파 보스들을 ‘진압’한 뒤 아버지가 즐겨 찾던 허름한 노천식당에서 복수를 다짐한다. 황지성(황추생) 국장과 첫 갈등을 빚기도 하는 그 노천식당 풍경은 홍콩 누아르에 딱 어울리는 근사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노천식당이 영화에서 갖는 비중은 크다. 권력이 누군가의 손으로 이동할 때, 그 상징적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다. 근사한 카리스마를 풍기던 오진우가 최후를 맞는 장소도 이곳이다. 그런데 그곳은 뜻밖에도 유위강 감독의 사무실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2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면 영화 속처럼 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감독과의 투어는 그곳에서 시작됐다.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실제로는 탁자 수가 훨씬 적다는 것 정도였다.
“전통적인 중국 식당이다. 일 끝나고 돌아가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밥먹기에 좋은 장소. 가까워서 세팅하기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이곳을 골랐다. 주인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협조받기도 좋고. 그런데 요즘 이런 느낌의 로케이션 장소를 홍콩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유위강)
아닌 게 아니라 두 감독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야기는 이곳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진우에게 집중됐다.
“그와는 95년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내가 평소 잘 아는 그의 면모들이 연기지도를 하는 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그가 어떻게 연기를 할지 예상하며 시나리오를 써갔다. 심지어 쓰다가도 이 대목을 어떻게 연기할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효의 캐릭터를 흔한 깡패보다 CEO의 느낌으로 해보자는 건 그의 아이디어였다. 매우 지적이지만 실은 잔학한 보스의 이미지로 가자는 것이었다.”(맥조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