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위강, 맥조휘와 떠나는 무간도 투어 [1]
2004-02-13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정진환
21세기 홍콩영화계의 첫 사건이 된 <무간도> 3부작 현지 취재

<무간도> 3부작은 21세기 홍콩 영화계의 첫 사건이 됐다. 마치 지난해 봄 <살인의 추억>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조폭코미디의 유행을 확실하게 마감짓자 충무로 제작자들이 “잘 만든 영화가 흥행도 된다”는 걸 모처럼 보여준 사실에 안도감을 내쉰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홍콩에 감돌고 있다. 유위강 감독은 “영화를 보지 않던 홍콩섬의 중산층 화이트칼라가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함으로써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70년대 중·후반 뉴웨이브가 일어나기 직전 다양하게 존재했던 영화클럽들이 이 영화는 왜 이런가 하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었으나 차츰 그게 사라졌다. 요즘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면 좋겠다”며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의 각 대학에서 특강 요청이 오고 있는데 그때마다 영화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고 문학적 요소가 생각보다 많고 좀더 주의깊게 봐야 할 점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연구주임이자 영화평론가인 웡 아인링은 “40대 초반의 내 세대들이 꽤 오랜 시간 영화를 도통 보지 않다가 <무간도> 시리즈로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을 봐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무간도> 3부작이 암시해준 홍콩 영화계의 변화의 현장은 다음호에 좀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번에는 그에 앞서 <무간도3 종극무간>의 국내 개봉(3월19일)을 앞두고 시나리오, 촬영, 공동연출을 해온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더불어 ‘무간도 총정리’를 해본다. <무간도> 3부작을 만든 유위강 감독의 제작사 베이직픽처스와 베이스필름 사무실에서 두 감독과 인터뷰를 가진 뒤에 1, 2편의 촬영지를 함께 둘러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간도> 3부작은 홍콩 정서의 3부작

유위강 감독은 넘쳐나는 활력만큼이나 야심찬 인물이었다. “장래에는 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다.” 그 출발점이라 할 베이직픽처스와 베이스필름 사무실은 미로처럼 여러 구획으로 나뉜 미니 종합스튜디오였다. <무간도> 시리즈의 시작과 더불어 마련한 공장 건물은 2년여에 걸쳐 유위강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꾸며 일할 의욕이 절로 나는 영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페인트칠도 직접 했고, 100년이나 된 옛날 영사기 등 온갖 소품으로 치장된 그곳은 2개의 시사실, 소품실, 편집실, 실내 세트장, 그래픽 디자인실, 시나리오 작업실 등이 알뜰하게 마련돼 있었다. <무간도> 시리즈의 경찰서 내부장면은 이곳의 실내 세트에서 촬영했고 그때의 소품이 지금껏 남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공동작업을 하겠다는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가진 뒤 로케이션 투어에 나섰다. 인터뷰는 주로 유위강 감독이 답을 해주었고, 맥조휘 감독이 보충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세편의 스타일이 각기 다 다르다. 관객의 입장에선 다르게 느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한다. 1편 이야기부터 하자. 그때는 누구도 성공을 확신하지 못할 때였다. 산업적으로 매우 안 좋은 시기였기에 홍콩 영화계에 뭔가 보탬이 되는 새로운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면 그걸로 모든 게 끝난다는 심정으로 매우 신중하게 모든 장면을 구상했다. 단순한 액션보다 드라마의 긴장에 주력했다. 새로움의 추구는 위험을 동반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촬영의 경우에는 크리스토퍼 도일이 조언을 많이 해줬다. 1편이 성공한 뒤 2편은 싸게 빨리 찍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이니까 스타가 나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3편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투자자들은 제작 규모가 회수 불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퀄리티가 낮으면 수익도 없다는 논리로 투자자를 설득했고, 성공했다. 투자자와 갈등을 겪으면서 만든 2편은 1편과 시대 배경이 다르다는 게 우선적인 차이다. 2편의 배경인 90년대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홍콩의 황금시기였다. 97년 이후 변화가 찾아오면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게 사람들 사이에 생겨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반문하게 된다. 그때가 정말 좋았던 시기였는지. 이걸 고민하게 됐고, 2편 마지막 장면은 그런 뒤섞인 감회에서 나온 것이다. 시대적 배경의 차이가 정서의 차이를 낳은 건데 조국인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함께 오랜 친구인 영국을 떠나보낸다는 서글픔이 교차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까지 담으려 했다. 이런 것들이 2편을 지배하기 때문에 스타일이 다르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3편은 일종의 결론이다. 1, 2, 3편이 순환적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세편이 독립돼 있지만 어떤 순서로 감상해도 가능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3편을 통해 만들려고 했다(갑자기 유위강 감독이 벌떡 일어나서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다). 플래시백이 많이 쓰인 건 이때문이다. 또 두 주인공간의 교차하는 운명에 대한 복합적 심경을 담고자 했다. 유덕화가 이를 대표하는 복합적 캐릭터라면 여기에 아주 간명하고 분명한 캐릭터를 추가해서 그들 사이에 어떤 대립을 만들고자 했다. 이렇게 뒤섞인 이야기 전개, 교차하고 대립하는 인물들을 표현하려는 비주얼 때문에 3편은 다소 복잡하다. 특히 3편에선 관객 스스로 읽어낼 여지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 스스로 복합적 감정을 느끼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로케이션 투어 1 (Location Tour 1) - 노천식당

권력 이동, 그 상징적 사건의 현장

<무간도2 혼돈의 시대>는 97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1편의 전사다. 이야기는 어린 유건명이 삼합회의 오랜 보스 곤숙을 암살하면서 시작한다. 학구적 풍모를 지닌 곤숙의 둘째아들 예영효(오진우)는 패밀리의 권위에 도전한 4개파 보스들을 ‘진압’한 뒤 아버지가 즐겨 찾던 허름한 노천식당에서 복수를 다짐한다. 황지성(황추생) 국장과 첫 갈등을 빚기도 하는 그 노천식당 풍경은 홍콩 누아르에 딱 어울리는 근사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노천식당이 영화에서 갖는 비중은 크다. 권력이 누군가의 손으로 이동할 때, 그 상징적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다. 근사한 카리스마를 풍기던 오진우가 최후를 맞는 장소도 이곳이다. 그런데 그곳은 뜻밖에도 유위강 감독의 사무실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2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면 영화 속처럼 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감독과의 투어는 그곳에서 시작됐다.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실제로는 탁자 수가 훨씬 적다는 것 정도였다.

“전통적인 중국 식당이다. 일 끝나고 돌아가면서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밥먹기에 좋은 장소. 가까워서 세팅하기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이곳을 골랐다. 주인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협조받기도 좋고. 그런데 요즘 이런 느낌의 로케이션 장소를 홍콩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유위강)

아닌 게 아니라 두 감독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야기는 이곳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진우에게 집중됐다.

“그와는 95년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내가 평소 잘 아는 그의 면모들이 연기지도를 하는 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그가 어떻게 연기를 할지 예상하며 시나리오를 써갔다. 심지어 쓰다가도 이 대목을 어떻게 연기할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효의 캐릭터를 흔한 깡패보다 CEO의 느낌으로 해보자는 건 그의 아이디어였다. 매우 지적이지만 실은 잔학한 보스의 이미지로 가자는 것이었다.”(맥조휘)

애초 하루에 끝내려던 촬영이 3일간 이어졌다. 전체 촬영 기간이 30일이었으니 공이 꽤 많이 들어간 셈이다(1편의 촬영 기간은 불과 20일이었다. 두세달은 보통인 한국의 촬영 기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찍은 것이다. 3편 촬영도 30일에 끝냈다). 낮이라서 영화에서 받았던 누아르적 느낌은 가질 수 없었지만 맥주를 곁들여 식사하는 이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홍콩인들이었다. 취재팀이 이곳과 비슷한 노천 식당에서 우연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육류와 생선, 채소를 곁들여 맛나게 먹은 3명의 밥값이 8천원 정도에 불과했다.

통역 권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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