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관객 천만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2]
2004-02-27
글 : 이영진
4인의 영화인이 말하는 ‘관객 1천만 시대’의 빛과 그림자

관객 수 1천만 시대를 맞이한 영화인들의 표정은 어떨까. 김미희(좋은영화 대표), 김혜준(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이승재(LJ필름 대표), 최용배(청어람 대표)씨 등이 함께 자리한 2월18일(수) 좌담회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관한 축하의 말로 시작했지만 한국영화의 병폐와 숙제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토로가 터져나왔다. 쉬지 않고 3시간을 꼬박 채운 좌담 중 일부를 여기 싣는다.

#토픽1. ‘특박’영화가 탄생하는 이유

최용배 | “한국영화는 저급 문화다라고 여겨졌던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가격 대비 만족도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관람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 문화 소비 행위라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면서 간접체험을 했던 것을 이제 영화가 대체하는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요즘 관객은 지식을 얻고 정보를 얻는다."

최용배 | 대단한 첫 경험을 하는 것 같다. 강우석, 강제규 하면 한국 영화계 대표선수들 아닌가. 그들이 만든 영화가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앞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기대치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웰컴이다.

김미희 | 개봉 때 강우석 감독한테 술자리에서 ‘얼마 들 것 같냐’고 물었는데 본인이 1100만명이라고 해서 그냥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지방에 있을 때 <친구> 기록을 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정말 1천만명이 되는 것 아냐, 우리 시장이 그렇게 커진 건가, 그러면 나도 꿈을 꿔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랬다.

이승재 | 음… 난 좀 두렵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기록을 넘어선 영화들이 나왔을 때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흥분했었다.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성장하고 있구나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1천만명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워낙 실감이 안 된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한국영화 사이클이 이렇게 빠른데 앞으로를 알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든다.

김혜준 | 한국영화의 흥행은 영화 외적인 요소가 꽤 중요한 듯하다. <실미도>를 보면서 그걸 처음부터 노렸다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최용배 | 실미도 사건이 아이템으로 충무로에 돌았던 게 10년은 되는 듯하다. 그때 영화화가 가능할까에 앞서 사건 자체에 충격을 먹었다. 관객도 영화를 통해서 아, 그때 그랬었구나 했을 것이다. 그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 것 같다. 한동안 이런 식의 역사적 사실이 다뤄지지 않아 반응은 더 폭발적이었을 테고. 이에 비해 영화인들은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완충이 된 것 아닐까. 시사회 끝나고 나서 반응들이 썩 좋지 않았던 것도 영화적인 새로움을 기대했는데 나쁘게 말하면 올드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대신 아줌마 아저씨들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너무 편안하고 친절하다. 단순한 구성은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강우석 감독이 일부러 선택한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승재 | 그걸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강우석 감독이 제작, 배급, 연출하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가능했을까 싶다. (웃음) 강우석 감독이 갖고 있는 힘과 권력이 아니었다면.

김미희 | 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실미도>를 보여달라고 해서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자기 반에 모르는 애들이 없다고 해서 놀랐다. 사실 <살인의 추억>도 의외였다. 기획실 후배들한테 스무살 애들이 보겠어, 했었는데 정작 관객들은 그러한 소재를 호기심있게 바라봤다. 강우석 감독이 이번 영화 만들면서 비주얼로 2시간 내내 가면 관객들이 못 본다고 한 적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판타지영화들이 안 되잖나. 저건 거짓말이야, 하고 본다고. <반지의 제왕>이 박스오피스 1위를 못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그에 비해 초대형 한국영화들, 그러니까 ‘특박’영화들은 이슈를 분명하게 잡아내는 뭔가가 있다. 강우석 감독은 파워맨이기에 앞서 실제 좋은 마케터나 기획자로서의 능력이 있다. 요즘은 역사 속에서 은닉됐던 사실을 갖고서 만드는 영화들이 많은데 명필름의 <노근리 사건>(가제)이 그런 점에서 기대가 된다.

김혜준 | <실미도>의 경우 일간지에서 북파 관련 기사를 전면 할애해서 썼다. 피해를 당했던 이들도 영화를 계기로 해원을 호소한다. 또 많은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도 그런 일 겪었다며 뻥을 친다. 이러한 파장은 한국 관객이 문화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정치든 드라마든 영화든 한 가지 사건이나 이슈가 있으면 다음날 뭔가 발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한국만큼 큰 곳은 없는 듯하다. 그게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이승재 | 국민정서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 분명 있다. 요즘 이승연씨가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종의 금기를 건드린 경우인데.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 외에는 어떤 의견도 허용되지 않는다. 역으로 공감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에 관한 매체들의 입장을 보면 다들 월드컵의 열기를 언급하고 맥락화하하고 결국 국민정서를 꺼낸다. 매체 또한 불가능한 마의 기록에 도전하는 마라톤 경기를 중계하는 것 같다. 관객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매체들까지 같이 안 달려가면 큰일날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최용배 | 멀티플렉스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스크린 수가 비약적으로 늘었고, 이 과정에서 박스오피스 사이즈가 커졌다. 다른 윈도에 비해 영화의 극장 매출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러한 분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본다.

김미희 | 1천만명 관객 동원만으로 시장이 넓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의 급변과 성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번 경우는 작품이 의도했던 목적에 정확하게 접근한 결과이고 사례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승재 | 극장 인프라의 확대가 절대 관객 수를 많게는 10배까지 확장시킨 것은 사실이다.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들이 연이어 나올 수 있었던 데는 그런 물적 조건의 확대가 기여한 바 크다. 그러나 1200여개 스크린 중 이 두편의 영화가 700여개를 장악하고 있는 건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승재 | “국민정서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 분명 있다. 요즘 이승연씨가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종의 금기를 건드린 경우인데.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 외에는 어떤 의견도 허용되지 않는다. 역으로 공감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에 관한 매체들의 입장을 보면 다들 월드컵의 열기를 언급하고 맥락화하하고 결국 국민정서를 꺼낸다. 매체 또한 불가능한 마의 기록에 도전하는 마라톤 경기를 중계하는 것 같다."

김혜준 | 영화의 힘 외에 플러스 알파의 요인으로 사회적인 분위기와 함께 산업구조적인 요인이 분명 작용한다. 현재 한국 영화계의 경우 CJ, 쇼박스, 롯데, 시네마서비스 등 4개 메이저 회사들의 수직계열화가 굉장히 빨리 이뤄지고 있는데 이 기업들이 갖고 있는 (극장 중심의) 수익구조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특정영화들이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크고 이는 미국과 비교해도 심하다.

김미희 | 첫날 스코어가 롱런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러다보니 스크린 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배급사의 파워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김혜준 | 그런 점에서 일정한 그늘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깝지만 이 영화 떨어뜨리자, 라고 하는 냉정한 결정들이 현장에서 내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승재 | 시장의 원리를 인정하지만 다른 사업분야의 경우 과도한 독점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문제삼듯이 영화산업 또한 공정 경쟁선을 넘는 힘의 논리에 의한 결정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김혜준 | 영진위는 매년 14살에서 49살까지 일정 관객을 표본으로 관객조사를 한다. 2003년 영화관람 경험률은 전해에 8% 가까이 늘어난 73%를 기록했다. 분명 잃을 수밖에 없는 관객이 있지만 또 그런 관객을 개발해내는 효과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가 돌아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 지점에서 동시에 투자자 혹은 배급사의 역할론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장에서의 역학구조에 의해 원치 않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승재 | 영화가 문화산업의 권력이 됐다고들 한다. 얼마 전에 50대 공무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평생 영화를 안 봤다는 그분은 요즘 술자리에서 문화적 체험의 기준이 그 영화 봤냐, 안 봤냐라더라. 안 봤다고 하면 너, 아직도 그렇게 사냐고 힐난당한다고 하더라.

최용배 | 한국영화는 저급 문화다라고 여겨졌던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가격 대비 만족도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관람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 문화 소비 행위라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면서 간접체험을 했던 것을 이제 영화가 대체하는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요즘 관객은 지식을 얻고 정보를 얻는다. 지난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나 <황산벌>이 그러했고, <말죽거리 잔혹사>도 20∼30년 전 고등학교는 이러했다는 간접체험을 하게 해준다. 장년층에게는 추억일지 모르지만 젊은 관객에게는 오락거리 이상의 뭔가로 여겨지는 것 같다.

김미희 | 대중의 욕구를, 뭔가를 얻기보다는 더 철저하게 즐기려고 하는 오락 개념으로 접근해서 봐야 하지 않을까.

김혜준 | 영화라는 게 여러 장르로부터 흡수한 자양분을 또다시 배분해주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지점에서 하는 고민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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