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관객 천만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3]
2004-02-27
사진 : 오계옥
정리 : 이영진

#토픽2. 날뛰는 시장 논리의 그늘

이승재 |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조폭코미디가 한국영화 흥행을 주도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보이> 등 웰메이드 영화들이 나왔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영화의 주된 경향이 1년 단위로 빠르게 바뀌는 것 같다.

김미희 |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성공을 거슬러올라가면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다.

최용배 | 어떤 주기가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면서 프로듀서들이 많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조폭코미디가 장악하면서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러다 다시 지난해 용기를 내서 제작됐던 영화들이 걸맞은 성과를 얻었고.

김혜준 | “2003년 영화관람 경험률은 전해에 8% 가까이 늘어난 73%를 기록했다. 분명 잃을 수밖에 없는 관객이 있지만 또 그런 관객을 개발해내는 효과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가 돌아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 지점에서 동시에 투자자 혹은 배급사의 역할론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장에서의 역학구조에 의해 원치 않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승재 | 연초에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서 지난해부터 계속된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이 만들어지고 평가받는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했다. 그런데 연초에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태풍이 몰아쳐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듯하다. 소재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규모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순제작비 20억원에서 25억원 들여 만드는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허리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최대관객 200만명 정도의 관객을 보고서 만드는 영화들이 주류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은 토대가 좀더 다져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절대 관객이 1억명을 조금 넘는 상황에서 소수의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크기도 하고. 가능성만으로 무모하게 제작비를 투여하는 영화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들고.

김혜준 | 산업적으로 수익성 관리가 과연 잘되고 있느냐 물을 필요가 있다. 편당 1천만명 시대가 개막했지만 전체 한국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놓고 보면 굉장히 불안하다. 지난해의 경우 2002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프로젝트 개발비 부담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상태다. 큰 영화들의 실패를 메우기는 쉽지 않다. 큰 영화로 왕창 깨먹으면 그걸 메우기가 쉽지 않다.

최용배 | 한국영화의 발전은 저임금 구조에 기반한 것이다. 손익분기점을 맞춰도 본전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게 그래서다. 평균 수익률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야지만 떳떳하게 본전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미희 | 코미디의 경우 아무리 쌈마이를 갖다대도 투자배급사들이 좋아한다. 적어도 몇 프로의 고정 관객이 있는데다 제작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블록버스터에 대한 투자 유치가 전보다 쉬워질 것이다. 웰메이드가 전제된다면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탕주의에 대한 고민은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2002년에 큰 영화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나서 지난해 다들 투자 위축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큰 영화는 무조건 쏜다는 식이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영화산업은 주류 혹은 트렌드가 형성되면 나머지 영화는 다 죽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 경우에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감독의 색깔이 들어간 영화들은 특히 그렇다. 이걸 방치했다가는 언제 홍콩영화처럼 될지 모른다. 한 작품이 흔들리면 전체 영화계가 흔들릴 수 있다.

김혜준 | 그 점은 큰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 2∼3년 동안 한 차례 경험해봤으니까. 제작 일선에 있는 이들도 이제 되는 영화와 안 되는 영화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대충 외형에만 신경 쓰는 무모한 실험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거칠게 분류하면 <나비> <튜브> <청풍명월> <원더풀 데이즈> <내츄럴시티> <천년호> 등이 지난해 시장에서 재앙과에 속하는 영화들이 아닌가 싶은데. 이제 실패 확률을 줄이는 단계까지는 왔다. 관건은 얼마만큼 효과적인 자본을 투여해서 성공적인 영화들이 나오느냐, 그래서 어떻게 신규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 같다.

이승재 | 제작현장에 선 입장에서 다르다. 심리적인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거다. 투자자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 작은 영화의 경우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전엔 시나리오 보고 괜찮으면 하자고 했던 배우들도 이제는 좀더 큰 영화 없나, 그래서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주저할지 모른다. 1천만이라는 태풍의 회오리 속에서 빠져나오면 좀 진정이 될 거라고 보지만 나 역시 시나리오를 취사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경우 그러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다들 웰메이드 상업영화에 머물렀던 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하지 않겠나. 또한 새로운 자본이 들어올 경우 이 돈들은 영화현장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 규모의 힘으로 간다고 했을 때 기존 자본이라면 여러 가지 크로스체크가 가능한데 이 자본은 우려를 낳는 결과를 빚을 위험이 크다.

# 토픽 3. 건전한 산업 시스템을 향하여

김혜준 | 자본구조가 안정화되지 않은 가운데 생기는 여러 역효과들이 있긴 하다. 시장의 속성상 예측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치명상을 입히는 수준은 아닐 거라고 본다. 메인 스트림이 어느 정도 컨트롤한다면 전염되는 건 아닐 것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 1차 백서가 나왔는데 그거 보면 개발과정에서 촬영 진행까지 시행착오들이 있다. 내 것이지만 공개하고 남의 것도 받을 수 있다는 공유의 차원인데. 이 기록에서 일정한 수익성 관리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김미희 | 이러한 호재를 악용하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그래도 남는다. 그러려면 제작사나 투자사, 그리고 배우들까지 서로 상호보조 관계를 지속적으로 취해야 한다. 배우들이 욕할지 모르겠는데 한국영화 시장에 걸맞은 개런티가 필요하다.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 시장에 적합한 수준의 개런티를 요구했으면 한다. 누구보다 더 받아야 한다, 는 감정적인 계산법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승재 | 올해 제작되는 블록버스터영화, 그러니까 제작비가 50억원을 넘는 영화를 세어보니까 7∼8편쯤 된다. <역도산> <남극일기> <청연> <태풍> <천군> 등. 이러한 규모있는 영화들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전체 시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정도에는 한국영화의 맥시멈이 대략 500만명인지 아니면 700만, 800만명 수준으로 올라간 건지 드러날 것이다.

김미희 | “큰 영화면 무조건 쏜다는 식이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이 경우에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감독의 색깔이 들어간 영화들 말이다. 한국 영화산업이라는 게 주류가 형성되면 나머지는 다 죽는 기형적인 구조인데 이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점이다. 언제 홍콩영화처럼 될지 모르지 않나. 한 작품이 흔들리면 전체 영화계가 흔들릴 수 있다.”

김미희 | 꿈의 기록이라고 하는 1천만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수익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이승재 | 한국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 프로듀서, 스탭들 개별 능력은 뛰어나다. 경쟁력 있다. 하지만 개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제작사, 메이저 제작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부문별로, 또 층위별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는 제작부터 상영까지 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는 툴조차 없다.

김혜준 | 현재로선 방송이나 여타 부가 판권들의 시장이 커질 확률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해외마켓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그래야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가능하다. 현재는 해외에서 거둬들인 수익이 전체 수익의 10% 안팎이다. 외국 자본의 유입, 교류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나중에 우리 영화 잘 만들었으니 이거 배급해달라는 사후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처음부터 같이 자본을 묻고 가는 거다.

이승재 | 무모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앞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선구적인 영화가 있겠지만. 300억원 들여서 도전하겠다는 건 문제다. 80% 이상은 국내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김미희 | 한국영화 자체로 경쟁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중 대부분은 배우에 쏠려 있다.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좀더 국내시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흥행하면 해외에서의 주목도와 판권가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라고 본다.

이승재 | 극장 매출에 목숨걸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영상산업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바라봐야 한다. 음반이니 게임이니 하는 다른 분야에까지 콘텐츠가 파생되고 여기서 수익의 1/2은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문화산업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해답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김미희 | 부가판권이라고 하면 극장, 비디오, TV말고는 다 소소하다. <아라한-장풍대작전>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게임쪽에 제의를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위험부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화는 영화, 게임은 게임이라는 시각이 문화산업 종사자 전반에 퍼져 있는 듯하다. 호환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최용배 | 국내 영화점유율을 이야기하면서 유의할 게 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으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다. 영화인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자고 말하는 외부의 시선을 객관적인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서이기 때문인데, 한국영화 점유율에 상한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사실 메이저의 수직계열화가 빨리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 업체들의 주력 사업은 극장이다. 생각해보라. 극장이냐 투자제작이냐, 라고 했을 때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하면 지원하겠다는 건 젖 떼지 못한 애에게 엄마 대신 뭘 줄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김혜준 | 영화계 이외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쿼터문제의 경우, 이러한 견해와 이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좀더 많은 대응책들이 필요하다.

이승재 | 예술영화, 저예산영화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 이런 영화에 투자하는 것은 모든 예산을 소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게 문제다. 수익 회수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지 까먹는 게 아니다. 이건 시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김혜준 | 예술영화, 작가영화, 작은 영화들을 배급하는 방식으로 3개 주요 방송사 외에 제4채널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화부의 계획이다. 수익나면 다시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식이다. 영국의 채널4를 연상하면 된다. 기존 채널에도 끊임없이 요구해야겠지만 방송사의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인력은 10분의 1 수준에 대부분을 외주제작에 맡기는 형태의 대안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방송쪽과의 연계문제 등 영화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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