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런 첫 대면
2004년 베를린, 북한영화 <푸른 주단 위에서> 특별상영
전형적인 선전영화, 관객은 당황
조선노동당 창당 50주년을 앞두고 집단체조 창작단은 아리랑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동장(어린이 집단체조)을 지도하는 은규는 자신의 상사로 부임해온 어린 시절 짝패 윤희와 재회한다. 은규의 지각으로 공연에 참가하지 못했던 일로 원망이 컸던 윤희는 아이들에 대한 은규의 애정과 투철한 사명감에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은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8명이 함께 두발 모아 집체 허리잡고 앞으로 돌기”를 고집하나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하는 윤희는 결사반대다. 그러나 은규의 고집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행사장에서 애들이 비 맞아 감기 걸릴라 부러 자리를 떠 체조를 중단시켰다는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감동 또 감동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되자 마음을 바꿔 적극 지원해준다. 심지어 금동이라는 꼬마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맹장염으로 짐작되는 배의 통증까지 불사하며 연습에 열중한다. 규율은 첫째 생명. 모두가 일심단결. 이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모토다. 드디어 아리랑 축제가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화려한 아동장을 선보인다. 집체 허리잡고 앞으로 돌기는 대성공, 장군님도 대단히 감동하셨단다. 모두가 해피, 모두가 눈물바람. 이제 윤희와 은규는 인생의 짝패로 더욱 몸바쳐 집단체조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 틀 속에 오빠를 장가보내려는 은규 누이의 극성, 그로 인한 윤희와 은규 사이의 오해와 갈등, 화해라는 양념이 간간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양념이 제 맛을 발휘하기에는 대규모 카드섹션이 펼치는 “백전백승 조선 노동당”, “위대한 영도자님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우리 당의 역사는 수령님의 역사” 등등의 구호들이 너무도 선정적이고, 1만명이 하나로 움직이는 집단체조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군인들의 쇼가 너무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하여 극장에 불이 켜지고 한참이 지나도 관객이 충격으로 정신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한 독일문화원장 우베 슈멜터 박사가 진행하는 Q&A가 시작되었다. 분노한 한 독일 관객의 첫 질문은 거의 성토에 가까웠으니, “도대체 베를린영화제와 독일문화원이 무슨 상관인가?”
이 성토의 배경은 북한영화를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램에 끼워넣기 위한 고육지책에 있다. 영화제의 여러 섹션들 중 가장 대비되는 두 부문이 경쟁부문과 포럼으로, 신진감독들과 제3세계 작품 소개에 주력하는 포럼은 그 정치적 성향을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 도로테 베너 포럼 집행위원 말에 따르면 북한영화 상영 또한 디이터 코슬릭 위원장과 슈멜터 독일문화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원래는 포럼이 주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보내온 후보작품은 총 10편으로, 여기에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영화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사 뒤 위원들간에 의견차가 심했다. “인민 대중을 사상적으로 무장하여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자주적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조직 동원하는 계급혁명의 사상적 무기”로 영화를 규정하는 북한을 위해 베를리날레의 붉은 주단을 깔아줄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상영작은 포럼이 선정하되 주관은 주한 독일문화원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베를린영화제의 공식섹션이 아닌 특별상영작으로 붉은 주단 위에 “푸른 주단”이 깔린 것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문화프로 진행자인 만프레트 아이헬은 영화 속의 집단체조가 나치시대를 연상시킨다는 발언을 했다가 작품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장 부총사장의 질책을 받았다. 나치는 강제로 학생들을 동원했지만, 북한에서는 모두가 자진해서 집단체조에 참가한다는 설명도 따랐다. 북한은 지식, 도덕, 체력의 함양을 국가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학생들이 방과후 “딴 짓”을 못하도록 체조면 체조, 예술이면 예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긴 딴 짓도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 부총사장은 북한영화 수출전망에 대해 “우리는 영화로 돈벌자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통한 교육이 목적”이라면서도, 지금까지 국제합작영화를 7편이나 만들었고 애니메이션의 대국인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고 강조했다. 독일과는 고종시대 궁정 고문관을 지낸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전기영화 공동제작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영화를 통해 교류의 첫 걸음을 떼다
권력자 찬양과 체제선전으로 도배를 한 영화가 어떻게 베를린영화제에 오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한 관객을 위한 슈멜터 박사의 설명도 있었다. 2001년 평양에서 영화를 통한 문화교류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얘기가 처음 오간 뒤, 2002년 평양영화축제에 독일영화 몇편을 상영했는데 무척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뒤 북한의 요청으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 회고전이 열렸으며, 현재는 한국을 포함하는 ‘한독영화제’를 계획하고 있단다. 중장기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에 VIP석 손님들과 몇몇 교민들의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화제 Q&A라고 해서 늘 영화얘기만 오가란 법은 없다. 그러나 주독 북한대사를 비롯한 북한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인 만큼 민감한 사항을 건드리는 질문은 극장 관계자까지 나서서 차단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하필 상영 전날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비참한 식량난을 보고한 참이라 용감한 한 관객이 결국 살얼음을 깨고 말았다. 600만명이 굶고 있는 마당에 큰돈 들여 체제선전용 영화를 만들 일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작품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충고성 질문이었다. 장 부총사장은 “실제로 굶는 사람들을 당신 눈으로 직접 보았냐”는 대꾸로 이 질문을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영화를 통해 북한이라는 나라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실감한 자리였다고 하겠다. 우문에 현답인지, 현문에 우답인지가 헷갈리는 상황도 어쩌면 그간의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게다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그들만의 개념이 다른 이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북한이 철저한 고립상태에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이는 슈멜터 원장도 동감하는 바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북한이 한 걸음이라도 밖으로 떼어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개방으로 나가야 함은 분명하다. 자신들도 인정하는 바다. 이전보다는 개방적이 되었다지만, 국제적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밖을 향해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북한의 영화미학은 독특하고 영화적 언어도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선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관객에게는 북한영화가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 사람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직성 때문에 문화교류를 통한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화해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 포럼 집행위원 도로테 베너 인터뷰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초석이다
-베를린영화제에 북한영화를 초대한 경위는.=주한 독일문화원장인 우베 슈멜터 박사의 노력이 컸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독일과 한국인만큼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남북교류에 기여하고 싶다는 희망을 교분이 두터운 디이터 코슬릭 위원장에게 피력했고, 영화제쪽도 이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사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표현한 것은 충격이었다. 시계를 냉전체제 상황으로 돌려놓겠다는 발언 아닌가. 한 나라를 마녀사냥하듯 몰아대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접근을 시도해야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베를린영화제는 북한영화 상영으로 이런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자그마한 초석이라도 놓고 싶었다.
-관객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는데.
=유럽 관객이 북한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충분히 예상한 바다. 북한이 영화를 효과적인 선전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양식이나 영화미학도 완전 다르다. 현실을 왜곡하는 프로파간다와 북한체제의 타락성에 분노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끔찍하다는 느낌도 가질 것이고, 완전히 생소한 영화적 경험이기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에게 완전 미지의 나라다. 핵분쟁, 식량난 외에는 북한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를 통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상영작 선정기준은.
=일단 최근작을 선호했다. 관객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스토리여야 했고. 제작된 지 한참 됐거나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뻔한 내용은 가급적 피했다. 다른 영화제나 독일 극장에서 소개된 작품도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푸른 주단 위에서>가 남더라. 포럼 내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북한체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컸다.
-지난해 참가작인 한국영화 <경계도시>를 재상영한 이유는.
=송두율 교수 구명운동이라기보다는 그가 처한 상황을 알린다는 차원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송 교수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문화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통일관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통일을 위해 정직하게 노력해온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귀국을 위한 준비가 소홀했다는 생각도 들고, 변호사 없이 심문을 받는 등 기술적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의 시도가 너무 시기상조였는지도 모르겠다. 2번에 앞서 3번의 시도를 해버린 것처럼. 아무튼 하루속히 진실이 규명되어 비극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