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2] -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2004-03-02
글 : 김도훈
글 :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

"서구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감독"이 몰고온 새로운 논란

<사마리아>는 수상작을 발표하는 베를린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 컨퍼런스 룸에 작은 소동을 불렀다.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알아들은 기자들은 수상 결과가 영어로 옮겨지기도 전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뒤이은 야유에 파묻혔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찬반의 논쟁을 부르는 김기덕 감독. 그는 평가에 관계없이 화제가 될 만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독일 언론 역시 <사마리아>에 이례적으로 큰 지면을 할애했다. 지난주에 간략하게 소개했던 외신들의 평가를 좀더 자세하게 싣는다.

2월11일 <도이체 차이퉁> 토비아스 크니베

폭력의 사마리아 여인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분류하고, 저속한 판단에 도달하곤 한다. 보는 즉시 검열의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대신 한동안 지켜보는 일이 필요한 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 등장하는 여고생 두명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얼굴도 예쁘다. 그런 만큼 한 소녀가 나이 많은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고, 다른 소녀는 매춘약속을 잡고 돈을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더욱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몸을 파는 소녀가 그로 인해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고, 그녀의 고객은 다 친구들이다. 그녀는 인도 종교의 사랑의 여신 바수밀다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위험한 영역이다. 게다가 목욕탕에서 서로의 몸을 씻겨주는 두 소녀의 알몸까지 보여준다면 이 감독은 즉시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중략) 두편의 매혹적인 영화 <사마리아>와 <몬스터>는 관객을 고통과 폭력, 피와 죽음, 절망으로 점철된 여행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한국 여고생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관 창문에서 죽음을 향해 뛰어내린다. 그녀의 친구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죄과를 속죄하는 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는 죽은 친구가 몸을 팔았던 모든 남자들과 다시 한번 잠자리를 갖기로 결심하고, 그 자리에서 이들에게 돈을 돌려준다. (중략) 만약 이 영화가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메시지는 강렬한 에세이를 접할 때 느끼는 생경함의 뒤편으로 밀려버린다.

2월11일 <타게스슈피겔> 크리스티나 틸만

딸 테레사

(전략)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빚어낸 화면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경우가 드물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도 많은 감독의 의도를 인식하게 된다. <사마리아>는 이중적인 과제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딸과 관계를 가진 남자들을 뒤쫓기 시작하고, 이들에게 말을 걸고 위협하다가 결국 폭력을 행사한다.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린치를 선택하는 인물이 하필이면 경찰관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감독은 이런 방식의 자기구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 사실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진 또한 하나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보상해야만 한다. 한때 명랑한 여고생이었던 두 친구는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재영은 몸을 팔고, 여진은 만날 약속을 잡고 망을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재영은 여관방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이제 여진은 재영의 남자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이들과 잠을 자고 돈을 다시 돌려준다. 이는 환불일지 몰라도 보상은 아니다.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아침마다 딸을 차로 등교시키며 기독교 영웅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려준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기적을 일으키는 십자가, 성모 마리아의 현신에 관한 이야기, 음울한 영웅들의 비전.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심성이 따스한 여인 마더 테레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버지는 딸을 이해하기 시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었다.

2월11일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한스-게오르그 로덱

쓰디쓴 파국까지

(전략) 한국 영화계의 분노하는 젊은 감독 김기덕은 마흔세살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분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여고생 매춘의 해악에 관한 드라마라기보다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들과 미래로 향하는 길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다. 보도블록 위에 재영이 쓰러져 있는 1/3 정도가 지나고 나면, 여진과 그의 아버지는 나머지 한 시간 동안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딸은 친구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더러운 돈을 돌려줌으로써 공모로 인해 생겨난 상처를 씻어내려고 한다. 의심을 품은 아버지는 딸의 등 뒤에서 남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자기 자신의 실패에 대한 벌로,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김기덕 감독은 왜곡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이를 가장 통렬한 파국으로 몰고 가는 연출력을 갖추고 있다. <사마리아>에서도 숙명적인 비운의 열차는 마치 운명이라는 철로 위를 질주하듯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도 이번만큼은 파멸 직전 잠시 질주를 멈춘다. 이는 한국의 어떤 감독들보다도 서구에 잘 알려진 김기덕 감독의 작품세계에서 새로운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은 니힐리즘에 천착했던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과 완전히 새로운 김기덕을 보여주게 될 2003년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독일에서 3월18일에 개봉할 예정이다)의 간극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2월10일 <버라이어티> 데릭 엘리

사마리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탈속의 문턱을 넘어선 김기덕 감독은 성숙하고 확신에 찬 열 번째 영화 <사마리아>를 내놓았다. 조금은 관념적인 이 영화는 십대 소녀인 딸이 매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복수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분노에 찬 그의 전작들, 특히 <나쁜 남자>와 비슷하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차분하고 초월적이 되었다. (중략) 지금까지 김기덕 감독의 극단적인 세계를 처음 접한 이들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기덕은 초기작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소재를 다듬었다. 그는 현명하게도 섹스신을 보여주지 않고, 부드러운 터치로 소녀들의 우정을- 함께 공원에서 놀거나 목욕탕에서 몸을 씻어주는 모습을 통해- 묘사한다. (중략) 김기덕은 전작들을 통해 다져온 관객의 예상을 무너뜨린다. 이 영화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좀더 과격했던 전작의 스타일로 돌아가지는 않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번역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김기덕 감독 인터뷰

"유럽의 논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소감이 어떤가.

=상을 받으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 순간은 잠깐 반짝할 뿐 곧 사라진다. 나는 변함없이 계속 영화를 만들겠다. 이번 수상으로 유럽에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 듯하다. 한국 영화계는 대규모 메이저영화들에 잠식되고 있지만,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내 목표는 유럽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한 지금은 어떤가.

=상을 받은 뒤에 베를린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는 그건 감독상이 아니라 작품상을 말한 거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지금은 위선적인 발언이 되어버렸지만.

-<사마리아>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내 영화는 이미지가 뛰어났지만, 상을 받을 수 없는 한계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은 ‘상받는 영화’가 무엇인지 느낌이 생겼다. <사마리아>는 마지막에 화해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국영화제에서 유독 주목받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터뷰를 하면서 “당신 영화는 날카롭고 잔인하지만 정서가 깃들어 있어서 감동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유럽에서 생활했던 경험, 유럽인과 적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이 유럽에 받아들여지는 정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생경하고 날것인 요소는 엽기적이지만, 당신은 그것들로 정서를 요리해낸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듯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 영화인 <유리>는 어떤 영화인가.

=유럽으로 입양되어 양부로부터 폭행당하는 한국인 입양소녀 이야기다. 그 폭력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시골에 떨어진 한국 소녀의 절망감을 다루고 싶다. 한국 자본이 아니라 유럽 자본을 이용해 수익을 남기는 방식이 될 것이다. 유럽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재지만 논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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