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하류인생> 혹은 임권택 [3]
2004-05-2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임권택 감독, <하류인생>을 묻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에게 답하다

정성일 | 이렇게 시작을 하겠습니다. <취화선>을 만들고나서 이미 그때 <하류인생>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하류인생>이 특별히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취화선 이후에 별 망설임 없이 바로 <하류인생>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이 이야기에 끌리신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아니면 <하류인생> 이전에 준비한 것이 있으셨는지요. 아니 따로 준비한 그런 거는 없었고, <하류인생>은 지금 영화로 드러난 그런 얘기가 아니어도 한번은 꼭 해야지 하던 건데, 가령 이태원 사장 얘기며, 정일성 감독 얘기며, 우리가 살아왔던 얘기들을 잡담 비슷하게 하면서, 쭉 생각해오던 끝이니까 바로 하게 된 거지. 영화를 해야지 하는 결정은 <취화선> 끝나면서 했고.

임권택 | 맨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을 감독님께서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 <탁류>라는 제목도 염두에 두셨었고, 그러다가 <하류인생>으로 결정하셨는데요, 사실 <하류인생>이라는 제목이 이 영화의 모든 걸 설명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이 제목으로 결정하신 데에는 특히 끌리신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류인생>이라는 말이 사전에 나오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상류라고 하면 경제적으로도 여유있고, 이런 걸 전제로 인식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으로 나눈 게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고요. 태웅이라는 인물이 엄청나게 좋은 집에서 살고 있더라도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하류라고 느끼면 하류인 거죠. 정신적 맑음을 지향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혼탁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하류로 놓고 지어진 제목이라고 봐야지.

정성일 | <취화선>이 감독님 영화 중 가장 격조있는 영화라면, <하류인생>은 감독님의 가장 솔직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님은 <족보> 이후에 60년대를 두번 다시 돌아보지 않으셨거든요. 돌아보지 않던 60년대를 처음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이제야 생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우선 들었고, 또 하나는 이 시기가 감독님께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때였기 때문에, 가장 힘들게 살았던 시대이기도 할 텐데 그 시대를 이제는 껴안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시게 된 어떤 힘, 용기 이런 것들이 <하류인생>이 갖고 있는 어떤 설득력이나 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임권택 | 칸영화제의 피에르 뤼시앙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말한 게 답이 될 것 같은데. 거칠고, 야성적이고, 또 폭력적인 영화인 것 같다, 그 시대를 혐오한달지, 그런 것이 드러난다 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아주 잘 봤다는 생각을 한단 말이야. 사실 내가 <증언> 같은 내 영화 간판을 걸 정도로 내 환멸스런 삶을 포함해서 그 시대에 대한 어떤 호의적일 수 없는 감정들이 상당히 솔직하게 드러난 영화인 거요. 아까 얘기한 <취화선> 같은 영화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서의 격조 같은 것들은 잘라내고, 정직한 감정의 토로, 심회를 찍어낸 영화라고 보면 되는 거죠.

정성일 | 다른 한편으로는 망가져가는 인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창>의 남자버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창>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점을 <하류인생>에서 다시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테마라는 점에서만 얘기하면, <하류인생>은 <창>과 공유하는 지점도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임권택 | 아니, 그것의 반복일 수도 있어요. 그때는 개인적, 정신적 황폐화로 가는 순서랄지, 그렇게 변질되어가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미흡했다면, 여기서는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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