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2]
2004-06-08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 자원해서 <청연> 엑스트라로 출연한 우에다 주민들과 장진영, 김주혁이 기념촬영을 했다.

우에다 표 세트, 우에다 표 엑스트라

드라마의 정점에 해당하는 촬영이 끝난 다음날인 5월24일 아침, 파란 하늘은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제작진은 야외촬영을 위해 우에다시 외곽에 위치한 운노주쿠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옛날 가옥이 길 양쪽으로 빽빽이 늘어선 이곳은 세트로 지은 게 아닌가 의심할 만큼 영화촬영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시대극을 찍으면 항상 걸림돌이 되는 전봇대나 전선이 없기 때문이다. 2km 정도 옛날 거리를 그대로 보존한 운노주쿠는 우에다가 자랑하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지만 영화촬영을 위해 개방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옛날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집집마다 촬영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몇 십억원을 들여도 이렇게 훌륭한 세트를 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오전 촬영은 박경원이 조종사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이정희(한지민)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다. 수십명의 엑스트라가 필요한 장면인데 자원한 우에다 주민들이 무상으로 나섰다. 옛날 옷을 입고 인력거와 손수레를 끌면서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순박해 보인다. 촬영이 진행되는 사이 길 반대편에선 일본 미술팀이 눈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20여일 일본 촬영 기간 안에 겨울장면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인공으로 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처마 위에 솜을 붙이고 땅에는 특수약품으로 만든 눈을 쌓는다. 단 하나뿐인 야외 겨울장면을 찍기 위해 미술팀은 몇 시간째 부지런히 움직인다. 눈이 쌓인 거리에 겨울 옷을 입은 장진영이 나타나자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든다. 모니터로 보는 장면은 영락없는 겨울 풍경이다.

△ 기상장교인 한지혁(김주혁)이 손을 들어 풍속 재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박경원(장진영)이 따라해본다. 두 사람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정작 이날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밤장면이었다. 대형 조명 크레인 2대가 동원되고 카메라도 크레인에 올라 장진영, 김주혁 두 남녀 주인공의 키스장면을 지켜볼 예정이다. 극중 박경원과 한지혁인 두 사람은 택시기사와 손님으로 만나 서로에게 끌린다. 한지혁은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해 일본 사관학교에 들어가 기상장교가 된 뒤 돌아와 박경원을 다시 만난다. 밤에 박경원을 집에 바래다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키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조명 설치를 기다리는 시간, 김주혁은 키스신을 위해 칫솔을 갖고 왔다며 익살을 부린다. 어둠이 내리자 운노주쿠는 갑자기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해진다. 드디어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도 자리를 잡은 순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스탭들이 장비에 비닐을 씌우지만 빗방울은 점점 굵어진다. 이대로라면 촬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다음날 일찍 서울로 가야 하는 기자는 이때 먼저 현장을 빠져나갔다. 다행히 기자가 나온 뒤 비는 그쳤고 이날 촬영이 원활히 진행됐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키스신을 목격하는 행운은 놓치고 말았다.

<청연>의 일본 촬영은 6월 초까지 진행되고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창춘에 위치한 어느 폐기된 비행장에서 촬영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런 다음 <하류인생>을 찍은 부천의 세트장에서 나머지 분량을 찍는데 지금 일정대로면 9월에 촬영이 종료된다. 1월 말 개봉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항공촬영분엔 컴퓨터그래픽(CG)이 들어가기 때문에 후반작업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윤종찬 감독은 CG 분량이 이미 <태극기 휘날리며> 분량을 넘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청연>의 제작발표회 때 <청연>이 그간 나왔던 대작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화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규모 이전에 드라마와 영화적 완성도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청연>의 시나리오엔 분명 그 가능성이 보인다. 미국에서 찍은 항공촬영 장면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된다. 과연 <소름>의 감독이 만드는 스펙터클 대작은 어떤 결과물로 나올 것인가? 우에다의 <청연> 촬영현장에서 엿본 풍경은 이런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 다다미방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마당에 트랙을 깔고 있다(왼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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