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3] - 박경원 역 장진영 인터뷰
2004-06-08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울었지만… 끝까지…혼자… 넘는다"

박경원 역 장진영 인터뷰

-오늘 촬영현장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무엇 때문에 울었나.

=촬영 초반인데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장면부터 찍어야 하니까 감정을 끌어올리기가 힘들다. 오늘 찍은 장면 같은 경우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찍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랑 달랐다.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강인함을 많이 보여주면서 슬픈 감정이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 힘들다. 일본어 대사도 만만치않다. 내가 말하는 건 어떻게든 되는데 상대방이 일본어를 하면 그걸 받아서 리액션을 하는 게 어렵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 알아도 귀로 들었을 때 느낌이 잘 안 살기 때문에 반응이 제때 안 나온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오늘처럼 힘들어서 울 때 윤종찬 감독은 어떻게 하나? 워낙 현장에선 독한 사람이라는 말이 많던데.

=다독이기도 하고 채근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장면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소름>을 찍을 때도 그랬고. <소름>에 이어서 <청연>에서도 짧은 커트머리를 했는데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같은 이미지로 나오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찍힌 장면을 보니까 전혀 다르다. 워낙 믿음이 가니까 큰 걱정은 안 한다.

-오늘 10번의 테이크가 진행되는 걸 보니까 현장의 수십명 스탭이 모두 장진영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주연으로 혼자 극을 끌어간다는 느낌, 모두가 나만 바라본다는 부담감, 그런 게 힘들어 보였다.

=<국화꽃 향기>나 <싱글즈> 같은 영화에서도 그런 부담은 똑같다. 하지만 다른 영화에선 상대인 남자배우에게 의지하는 면도 있었는데 <청연>은 거꾸로 내가 남들한테 힘이 돼야 한다는 느낌이다.

-<청연>의 박경원은 여자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역할이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이 영화 잘하면 여우주연상 하나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이 영화로 상 받아야지, 그런 건 아니었다. (웃음) 워낙 여자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다 보니까 정말 잘해야 될 영화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내가 못하면 앞으론 이런 영화가 기획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

-<청연>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본 것은 언제였나?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

=<싱글즈> 끝나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CF 촬영을 하다가 읽었다. 시나리오를 다 읽으니까 해가 지고 있었는데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아주 오래전 살았던 여자지만 지금 여성들이 꿈꾸는 그런 여자라는 느낌, 그게 좋았던 거 같다. 박경원이 살았던 시대를 배제하고 생각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 여성이었다. 오직 자기 목표 하나만 놓고 산 건데, 요즘 여자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잖나?

-박경원에게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끼나.

=박경원의 그릇과 내 그릇은 크기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솔직히 그렇게 한 가지 꿈을 위해 산다는 거, 나로선 잘 이해가 안 간다.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배우 장진영은 <소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느낌이다. <소름>의 경험이 배우로서 한 단계 비약을 가능하게 했다는 느낌이 든다.

=<소름> 이전엔 어떤 연기를 끝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다. <소름>을 찍으면서 처음 그런 경험을 했다. 끝까지 요구하고 끊임없이 확인하는 그런 작업. 여관방에서 목졸려 죽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계속 술을 마시면서 리허설을 했는데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랐다. 그러면서 계속 다시 찍는데 나중에야 왜 이렇게 찍었는지 알겠더라.

-<청연>은 <소름>과 매우 다른 영화다. 다소 의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나? 정말 비관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를 찍은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게.

=시나리오만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막상 찍는 거 보니까, 아니다. (웃음) 시나리오 느낌과 많이 다르다. 절대로 상투적으로 안 찍는다. 결국 이 영화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식으로 간다.

-<소름>이 그랬던 것처럼 <청연>은 배우 장진영의 연기생활에 중대한 한 고비가 될 거 같다.

=매번 새로 맡는 캐릭터는 다 도전이었다. 이번엔 찍는 순서도 후반부터 찍는데다 일본어 대사를 하니까 더 힘들다. 초반이 제일 힘든데 지금도 그런 시점인 거 같다.

-수차례 NG가 나고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 다시 힘을 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차피 연기는 외로운 거다. 혼자 할 수밖에 없다. 누구한테 의지한다고 해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혼자 해나갈 일이라고 생각하면 다시 힘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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