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청연> 촬영현장, 일본 우에다를 가다 [4] - 윤종찬 감독 인터뷰
2004-06-08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시대극 속에서 모던한 여성을 보게 될 것이다”

윤종찬 감독 인터뷰

<청연>은 <소름>과 굉장히 다른 영화다. 의외라는 느낌이 든 가장 큰 이유는 <소름>이 극단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이야기인 반면 <청연>은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소름>을 할 때도 저 사람이 왜 공포영화를 하지,

=그런 말을 듣긴 했다. (웃음) 아무튼 <소름>을 찍고 나서 느낌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드러냈을 때 그 후유증이 나에게도 있었다. 영화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감독이 굉장히 짓눌려서 찍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청연>은 그런 면에서 내게 유연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어둠과 밝음을 잘 분배해서 다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기조가 다른 만큼 스타일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거 같다. 예를 들어 영화의 색조나 조명, 컷의 길이 같은 것.

=조명을 예로 들면 이번엔 <소름>보다 광량이 상당히 많다. 밝은 화면에도 질감이 있는 거니까 밝지만 다른 영화와 좀 다른 화면을 만들고 싶다. 컷 수도 전체가 1천컷을 넘을 것 같다. 비행장면이 있으니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쪼개서 찍는 장면이 많은 편이다. <소름>의 롱테이크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혹시 내게 롱테이크에 대한 중압감이 있지 않았나, 싶은 면도 있다. 좋은 영화가 되려면 롱테이크를 써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 말이다. 그런 걸 털어버리고 싶다.

-데뷔작 한편으로 작가 대접을 받은 걸 털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건가.

=작가 대접을 한 건 <씨네21>밖에 없는데. (웃음) 과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오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사자 만나보고 실망한 사람도 많다. (웃음) 그런 평가가 도움도 됐지만 영화 하나로 너무 많은 걸 규정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봄날은 간다> 개봉 때 허진호 감독과 대담을 했는데 그때 밝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연>을 택한 이유 중엔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나.

=정통 멜로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누구나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하는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하지만 모티브는 박경원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당시 조선인을 대변하는 인물도 아닌, 그냥 비행사가 안 됐으면 소시민으로 살았을 인물이다. 그런데 거기에 거스를 수 없는 역사가 개입한다. 남자 주인공 지혁도 다소 어이없는 인물로 보일 것 같다. 두 사람 다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좋았다.

-<소름>의 선영이나 <청연>의 박경원은 굉장히 강인한 여자다. 강한 여자에 끌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경원은 복엽기 조종사라는 점,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이라는 점에 끌려 영화로 만들게 됐는데 장진영까지 캐스팅해놓고 보니까 오해할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 특별히 페미니즘을 강조하려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 쪽으로 초점이 맞춰질까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청연>은 어쨌든 시대극이다. 시대극을 연출하는 데는 의상, 소품은 물론이고 연기에서도 특별한 준비가 필요할 텐데.

=어투나 대사는 모던하게 간다. 사극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당시 자료를 보면 1920∼30년대 도쿄는 굉장히 모던한 도시였다. 그중에서도 첨단인 비행기 조종사라면 아주 현대적인 말투를 쓴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미술, 소품, 의상 등은 철저히 고증해서 간다. 연기는 현대적인 톤이지만 다른 부분은 고증을 철저히 해서 당시 분위기를 살린다는 방침이다.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모두 4개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되는 프로젝트다.

=한신을 2개국에서 찍는 경우도 있다. (웃음) 1920∼30년대를 미술적으로 재현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다다미방만 해도 중국이나 한국에서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일본 미술감독이 보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 일방적으로 만들 순 없는 거니까 일본 로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순서대로 찍을 수도 없다. 일정상 미국 항공촬영부터 해야 했고 극의 후반부지만 일본에서 먼저 찍을 수밖에 없다. 배우들에게 힘든 일이다.

-첫 영화를 다소 힘들게 찍어서 두 번째 영화는 여유있게 찍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휴, 정말 그렇다. 초반에 <청연>을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감독이라면 누구나 큰 영화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다. 평생 언제 이런 영화를 해보겠냐 싶더라. 그러다보니 여유는 무슨 여유…. 하지만 영화 만드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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