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2]
2004-06-09
글 : 오정연
사진 : 오계옥

<당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찾아낼 것”

오기처럼 시작하게 된 〈11세>의 촬영 첫날, “미리 준비했던 시나리오는 현장에서 방해만 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주변의 스탭들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건 처음이니까 연습하는 셈 쳐라’라고 말했지만, 최선을 다하려던 영화를 연습으로 찍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오전 내내 헤매고 버벅대던 그가 오후부터 전열을 가다듬었다. 현장에서, 배우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영화만의 흐름과 리듬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이야기는 버리고, 정서만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천천히 영화를 완성하면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갔다. 그리고 〈11세>는 아무런 대사도 없이 음향과 실험적인 음악만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재현하는 영화, 이야기는 모호하지만 영화적 의미로 꽉 차 있는 영화가 되었다.

두 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장편인 <당시>는 여기서 더욱 나아간다. 그 누구도 찍지 않았던 방식으로 인물을 배치하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유일한 배경이 되는 주인공의 집 구조는 도저히 파악되지 않고, 인물들은 언제나 뒤늦게 등장하여 뒷모습이나 깜깜한 옆모습을 보이며,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움직일 뿐이다. 영화교육을 받은 바도 없고, 그 어떤 작가영화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그는 온전히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기준으로 영화를 찍고 있었다. 장률 감독은 뒤늦게 시작한 영화가 너무나 즐겁고 신기하다. 찍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아서 겨울배경인 영화를 한시라도 빨리 찍기 위해 여름을 배경으로 고쳐서 촬영에 들어갈 정도. “내맘에 맞지 않는 것이면, 아무리 남들이 좋은 것이라 해도 가장 힘든 일”이라고 느끼는 그에게는 내로라 하는 거장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고, 그들이 영화를 찍는 방법에도 관심이 없다. 그의 영화에 그 흔한 시점숏도, 리버스숏도, 인서트도 존재하지 않게 된 것, 영원처럼 컷이 길어진 것은 감독의 마음속에서 그 인물이 그처럼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영화는 그렇게 감독의 진심을 담고 있다.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키네코 지원작으로 <당시>가 선정될 무렵, 이 영화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허우샤오시엔의 아류 같아 흥미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나 아트과(科)라며 일단 판단을 보류했다. 어떤 이는 그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찍어낸 감독의 용기를 칭찬했고, 다른 사람은 한편의 시처럼 풍부한 행간을 만들어낸 영화의 형식에 매료됐다. 한편 부산영화제프로그래머 김지석씨가 6월2일 베이징을 방문하여 <망종>을 촬영 중인 장률 감독을 만날 예정이다. <당시>의 완성이 늦어져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그는, “<당시>는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들이 눈독을 들일 만한 놀라운 영화였지만, 대중과의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찍고 있는 <망종>은 그러한 부분을 최대한 보강하여 대중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장률 감독의 영화적 재능을 알기에 그것이 전혀 거짓이 아닐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한다. <망종>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지의 여부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이번 베이징행에서 판가름날 예정.

장률 감독은 이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스타일이나 일관성을 부여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영화마다 만드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매번 찾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장률 감독도 꺼릴 만한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신만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고, 손쉬운 길을 선택해 우리를 실망시키지도 않는다.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와 그것을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장률 감독.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현명한 감독의 필수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워도 한번 누군가를 믿으면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가 나와 전속으로 작업을 하면서, 중국에서 가질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국과의 작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최두영씨의 말이다.

<당시>는 어떤 영화

간결한 문체, 풍부한 감정

〈11세>(2000): 한 사내와 한 소년이 터널 밖으로 걸어나온다. 사내는 공사가 중단된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끝없는 졸음에 몸을 맡기고, 소년은 또래아이들의 공놀이를 멍하니 바라볼 뿐, 그들 속에 감히 섞이지 못한다. 해는 저물고, 모두가 떠난 공터에서 혼자서 공을 차는 소년. 그러나 불도저로 자신의 공을 덮어버리는 사내의 또 다른 폭력 앞에 소년은 또다시 무기력해진다. 영화를 보고나면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년은 왜 따돌림을 받는 것이며, 계속해서 졸고 있는 이 남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공사는 왜 중단돼 있는지. 정답은 없다. 소년은 소수민족일 수도 있고, 그저 가난한 건지도 모른다. 남자는 소년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선생일 수도 있고, 관료일 수도 있으며, 그냥 일자리를 잃고 동네에 머물게 된 중년 사내인지도 모른다. 대답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당시>(唐詩, 2003): 손을 다쳐 소매치기를 할 수 없게 된 한 남자의 집에 제자인 듯한 여자가 불쑥불쑥 찾아온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한탕을 성공시켜 이곳을 뜨자고 부추기지만 남자는 결국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 나가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당시(唐詩)는 중국 문학사 내에서, 엄격한 형식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의 산물이다. 5언 절구, 혹은 7언 절구의 시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지만, 그 안에는 천지(天地)가 있고 산수(山水)가 있다. 그리고 희로애락의 변화무쌍한 감정들은 자연에 빗대어 무심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형식은 ‘당시’처럼 엄격하기 그지없다. 언제나 프레임 내 프레임 속에 배치된 인물들, 절제된 대사만으로 고독을 표현하는 전개방식, 무표정하게 극심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배우의 움직임…. ‘당시’의 간결한 문체가 풍부한 감성을 돋보이게 만들듯이, 영화 <당시>의 무표정함은 주인공의 처절한 감정을 섬세하게 극대화시킨다. 감독은 이어, <송사>(宋詞) <원곡>(元曲)으로 이어지는 중국 문학 3부작을 계획 중이다.

최두영 인터뷰

-장률은 참 큰 사람이다

=〈11세>의 촬영 이후 장률 감독의 모든 영화적 행보는 최두영(42)씨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색보정기사로 잘 나가던 와중에, <화석의 언덕> 등 독립영화를 촬영하고, 장편영화 <오구>의 촬영감독과 프로듀서였던 그는 현재 장률 감독의 평생 제작자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이며, 장률 감독에게는 영화에 대한 결심을 지탱하는 쐐기와도 같은 존재다. 〈11세>의 후반작업을 총괄했고, <당시>의 제작과 배급을 맡았으며, <망종>의 제작과 영화 후반작업을 책임질 예정이다. 감독과 제작자이기 이전에 10년지기 친구 못지않은 그들 사이의 신뢰를 보고 있으면, 백아와 종자기의 만남이 이처럼 애틋했을까 싶다.

-장률 감독과 만나게 된 계기는.

=2000년 겨울. 이전부터 장률 감독과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감독 한 사람이, 중국동포가 만든 단편의 후반작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11세>의 비디오 편집본을 처음 봤다. 너무 느낌이 좋아서 꼭 완성을 돕고 싶었고, 그 이후 영화의 편집, 믹싱, 텔레시테, 색보정 등을 한국에서 할 수 있게 해줬다.

-장률 감독의 첫인상이 어땠나.

=(장)률이는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편했다. 대륙적인 기질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는 참 큰 사람이다. 같이 있으면 나의 순수했던 70년대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그 친구의 작업의 제작을 맡게 되면서, 일 때문에 우정이 깨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두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장률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만든 회사다. 요즘에는 사무실 유지비라도 벌어야 된다는 생각에 배우 매니지먼트도 겸하고 있다. <효자동 이발사> <발레교습소> <남극일기> 등에 출연하는 조연들이 이 회사 출신들이다.

-프로듀서로서, 감독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가 나에게 전적으로 제작쪽을 위임하면서 나름대로 손해를 감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결국 그에 대한 믿음과 그리움이 아닐까. 어떤 영화를 만들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 있다.

-전작인 <당시>로 미뤄볼 때, 다음 영화 <망종>의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남들은 웃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둘은 이 영화로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개인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계속 제작을 할 생각인가.

=내가 제작을 하게 된 것은 내 친구를 돕기 위해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촬영감독으로 알려지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목표다. 올해 <중원> 촬영을 마치면 촬영을 한편쯤 하고 싶고, 나중에 장률 감독이 한국에서 영화를 혹시 찍게 되면, 내가 촬영을 해주기로 약속도 했다. 그것 때문에 아주 관계가 파탄나는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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