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두개의 정체성 두겹의 눈, 아시아의 한인감독들 [3]
2004-06-09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두번째 조우_ 재일동포 3세 리상일 감독

소통과 자극의 문을 두드리다

어떤 이에게 ‘재일’이란 단어는 삶의 굴레였다. 오직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일본사회 밑바닥에서, 때론 불법의 일도 가리지 않아야 했던 재일동포 1세들. 그들은 ‘고난’의 상징이었고 차별의 대상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보통 재일동포 2세, 대부분 3세인 영화감독들에게 ‘재일’은 굴레가 아니다. 아마도 영상에서 그 상징적인 모습은 최양일 감독의 블랙코미디 터치 가득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일 것이다. 재일동포는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지만, 거기에 절망하거나 또는 정치적인 대항을 하는 의미는 엷어졌다. 흠, 그래, 나 재일동포다. 그래서? 자신을 재일동포라고 ‘커밍아웃’하는 단계를 넘어서, 재일동포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편적인 ‘마이너리티’가 보는 일본사회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일’이란 창을 통해, 나아가 ‘마이너리티’라는 창을 통해 일본사회에 간절히 말걸고 싶어한다.

최양일 이후의 포스트세대들은 더더욱 분화를 보이고 있고 보일 게 틀림없다. 재일동포 감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정말 각개약진 중이다. <윤의 거리>(각본)에서 재일동포의 초상을 그렸던 <지구>(감독)의 김수길(43) 감독은 올 여름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모은 <천의 바람이 되어-천국에의 편지>를 개봉할 예정이다. 텔레비전에서 SMAP의 연예프로를 오랜 기간 연출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텔레비전 시리즈, <학교괴담>의 비디오특별판 연출을 담당했던 리토시오(40)도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을 찍고 있는 중이다. 원작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만한 <아버지의 백드롭>으로 악역 프로레슬러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아들의 이야기다. 그 최전선에 서 있는 리상일 감독과 구수연 감독을 만났다.

리상일(30) 감독의 이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의 중편 <청>과 첫 장편 데뷔작 <보더라인>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됐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고교생들을 그린 <청>은 2000년 일본 피아영화제에서 그랑프리 등 4개상을 석권했고 부산을 비롯해 로테르담, 뉴욕영화제 등에도 초대됐다.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보더라인>을 ‘올해의 베스트 10’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오는 7월10일 일본에선 그의 신작 〈69>이 개봉한다. 이를테면 독립영화 형태였던 이전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은 면면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메이저영화’다. 도에이가 배급하는 이 작품의 두 주연으로 요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고 주목받는 젊은 스타 츠마부키 사토시(<워터보이즈>)와 안도 마사노부(<키즈리턴> <사토라레>)를 앞세웠고, 무엇보다 원작이 1987년 출간된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인 동명의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니가타현에서 재일동포 3세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까지 10년을 요코하마의 조선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른스런 소년이었던 편”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들에게 화제는 파친코 아니면 담배였다. 둘 다 관심이 없었으니 쉬는 시간에도 혼자 소설만 읽고 있었다.” 〈69>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엔 그 시절, 리 감독이 곁눈질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묻어 있다. 대학 졸업을 앞뒀던 청년은 무조건 시네콰논의 이봉우 사장을 찾아갔다.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이 사장의 소개로 현장경험을 쌓던 그는 역시 이 사장의 권유대로 일본영화학교에 진학한다. 3년의 수업을 마치고 만든 졸업작품이 바로 <청>이었다.

<당시>

<청>의 제목은 일본어로도 ‘아오이’가 아니라 ‘청’이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경멸하며 얘기할 때 “바보나 청이나 (똑같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 속담 중에 ‘냄새 나는 곳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말이 있다. 악취가 나는데 뚜껑을 덮으면 덮을수록 냄새는 더 지독해지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뚜껑을 열어 악취가 바람에 날아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리 감독에겐 ‘청’이란 비분강개해야 할 차별의 상징어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불리는 걸, 거꾸로 스스로 이름 붙이는 것이다.

대성은 조선학교의 야구부원이다. 누나가 결혼상대라며 일본인 남자를 데려오자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릴 때부터 친했던 여자동급생은 일본 학생과 교제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이지메당한다. 리 감독은 모교로부터 촬영협조를 기대했지만 “학교를 나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영화에 나오는 학교는 교실 따로, 운동장 따로,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다. 출연진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다. <청>은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통해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찾는 청춘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3 학생이 청년으로, 성인으로 자기를 발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소엔 별로 재일동포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일단 생김새부터 별 차이가 없으니…. 아마 느낀다면, 지금처럼 이런 인터뷰를 하는 때가 아닐까.” 그는 재일동포들에게 ‘정체성’을 묻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편이다. “정체성이란 점점 사라져가는 단어 아닌가. 정체성은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구별되는 게 아니다.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경계에 서서 응시하다

<보더라인>

<보더라인>에서 리 감독은 일본사회의 경계(보더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엇갈리며 그려낸다. 아버지를 살해한 고교생과 그가 만나는 택시 운전사, 딸을 집에 두고 가출한 중년의 야쿠자와 딸의 입원비를 위해 수금비를 들고 달아난 아버지, 이지메당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의 해고를 눈앞에 둔 주부,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자포자기해 원조교제를 하다가 퇴학당한 여자 중학생의 이야기가 서로 스쳐 지나간다. 〈69>까지 세 작품 모두 분위기가 다르지만, 리 감독 작품의 인물들은 “큰 틀의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과 같은 마이너리티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을 “객관성”이라고 한마디로 얘기했다.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과 전혀 다른 공간에서 컸기 때문에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보기에 쉬운 포지션이다. 메인스트림에 속하기보다는 거기에서 떨어져나와 어딘가에서 응시하는 게 나의 영화다.”

〈69> 또한 그에겐 단지 60년대를 그리는 복고풍의 청춘영화가 아니라 2004년 일본사회에 대해 말을 거는 과정이다. 리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에겐 정열,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신념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시기는 다양한, 각자의 가치관이 있던 시대였다”며 “그걸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공투 등을 비롯한 학생운동이 정말 무데뽀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대항하는 에너지가 있었기에 저항받는 그 대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결국 입증할 수 있었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절대적’이란 말이 있었다. 절대로 아버지가 옳고, 절대적으로 선생님이 옳고. 권위주의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아래 세대에게 전할 룰이 있었다는 얘기다. 룰이라는 게 있어야 젊은 세대는 존경하기도 하고 거꾸로 그걸 부수거나 부정하기도 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간다. 그에 비해 지금은 이상하게 평등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마 그 최소단위일 텐데, 그들에게 ‘대립’도 없다. 그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거다.”

이제까지 자신이 각본을 쓰고, 스탭과 배우들을 끌어모았던 전작들과 달리 〈69>은 프로듀서의 제의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현장에서 10년 넘게 경험을 쌓아 40살이 다 되어 데뷔하는 감독이 수두룩하고 작품 하나 내놓는 데 몇년씩 걸리는 일본에서 그는 예외적 존재로 보인다. 〈69>이 개봉도 하기 전, 그는 여름 크랭크인을 예정으로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엔 “20대처럼 여러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중도한파 같은 30살 전후, 내 또래의 인물의 이야기”라고 했다. 분위기는 〈69>의 밝은 분위기에서 <보더라인>쪽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그는 하드보일드나 필름누아르를 좋아한다. <쎄븐> 이래 가장 충격을 받은 영화로 <살인의 추억>을 꼽았다.

그에게 일본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에 비치는 영상만을 보고 그에 따를 뿐이다. 지난번 이라크에서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자기책임론’ 등의 반응이 그 단적인 예라며 “상상력이 부족한 나라”라고 웃는다. 북한에 대해 비난을 퍼붓던 시기 총련계 여학생들을 이지메하는 것도 결국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 그에겐 “이 나라가 모자란 게 많은 게 희망”이며 영화로 그릴 가치가 있다. “편의점에 가면 모두 갖춰져 있는 듯 보이지만” 희망이란 건 자기가 찾지 않으면 안 되듯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기에. 태어나고 자란 일본사회에 대해 그는 ‘애증’을 감추지 않았다.

〈69>는 어떤 영화

일본 젊은이들에게 정열과 신념을

1969년 파리를 비롯한 전세계에 혁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던 그해, 일본에선 도쿄대학 학생들의 야스다 강당 봉쇄가 경찰에 의해 강제해제되며 전공투가 중심이 되었던 전투적인 학생운동이 상징적인 막을 내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가사키 사세보엔 68년 미국 해군의 원자력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입항해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인가. 그 시기 젊은이들에겐 ‘여자-패션-요리’가 주요화제였고, 야시꾸리한 프로그램 〈11PM>이 인기를 누리며 주간지 <헤이본 판치>는 바이블이었다. 〈69>에서 고교생들은 가치관이 혼재하던 그 시대를 좌충우돌 질주한다.

겐(쓰마부키 도시오)은 언제나 교실청소는 내팽겨친 채 친구들을 모아놓고 여자 얘기로 허풍을 떠는 고3 악동 학생. 어느 날 바지를 입고 매스게임을 연습하던 같은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보고, 결심한다. “그렇다! 여자의 탄력있는 몸은 바닷가를 달리기 위해 있는 법. 저들을 해방시켜주자!” 록음악과 영화를 상영하는 축제를 계획하고 내친 김에 한눈에 반한 여학생 ‘레이디 제인’을 주연으로 영화를 찍으려던 겐. 촬영카메라를 빌리러 간 당시 학생운동 본부에서 장난처럼 시작된 일은, 급기야 학교 옥상을 바리케이드로 봉쇄하는 작전에까지 치닫는다. 야스다 강당 봉쇄사건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던 69년 여름, 학생들의 장난은 온 매스컴을 타게 된다.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옮긴 편이지만, 영상이 갖는 힘은 이 밝은 분위기의 청춘영화를 어느 순간 가슴 뭉클하게 만들어버린다.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쓰인 플래카드 사이로, 밤에 잠입한 학교 건물에 폭력적인 교사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장난처럼 페인트로 휘갈길 때, 시대의 커다란 목소리에 파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개인들의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이처럼 개인과 시대의 엇갈림이야말로 영화가 바치는 1969년 당시에 대한 헌사다. 어찌보면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은 청춘들과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시대처럼 보이던 당시상황이 빚어내는 충돌은 시대와 개인을 모두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명랑한 분위기의 이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그 유머엔 품격이 있다. 크림(Cream)의 노래 등 영화 전편에 흐르는 록음악과 오프닝 타이틀의 그래픽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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