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하라 데쓰오 감독 프로필
1962년 도쿄 출생
메이지대학 법학부 졸업
1984년 단편 <거북이 얼굴의 소년>
1989년 단편 <러닝 하이>
1993년 16mm로 찍은 <초원 위의 일>로 장편 데뷔
국내에서 시노하라 데쓰오 감독은 2002년 5월 개봉한 다나카 레나 주연의 멜로영화 <첫사랑>(일본 개봉 2000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그는 ‘멜로영화 전문감독’으로 통한다. 광대하고 눈부신 자연, 서정적인 음악, 젊은 남녀의 절절한 순애보가 그의 멜로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번 부천에서 상영된 <쇼와 가요 대전집>은 그런데 잔혹하고 건조하다. 1994년 <플레이보이>에 연재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논란의 초점이 됐던 일본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피해가지도, 선정적으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별 하는 일 없이 몰려다니는 20대의 젊은이들과 언제나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는 30대의 이혼녀들. 젊은이들은 가끔씩 야외로 나가 괴상한 차림을 한 채 쇼와 시대의 가요를 부르는 게 즐거움이고, 아줌마들은 유복한 싱글의 삶을 즐기면서도 공허한 대화 속에 무언가를 채워넣지 못한다. 이 폐쇄적인 두 집단이 연결되는 계기는 우발적인 살인이다. 20대 젊은이가 실수로 죽인 30대 이혼녀. 이제 남은 20대 젊은이들과 남은 30대 이혼녀들은 죽고 죽이면서 ‘연쇄 복수’에 집착하고, 그들의 무기는 단칼에서 장대에 묶은 칼로, 권총에서 바주카포로, 그리고 원자폭탄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원작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소름끼치도록 직접적으로 일본의 현대사를 긁고 지나간다.
주제를 담으려는 강박적인 태도가 다소 껄끄럽긴 해도 <쇼와 가요 대전집>은 일본에서 상업성 짙은 멜로영화의 아이콘처럼 받아들여졌던 감독의 색다른 욕심을 읽을 수 있는 영화다. 후덕한 인상의 시노하라 감독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위해” 만들기 싫은 영화들도 만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만든 18편의 장편 중 본인이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는 단 3편이라는 시노하라. 그는 법과대학을 다니다 시나리오 강좌를 들은 것이 계기가 돼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어떤 반응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무라카미 류의 원작도 잡지에 연재됐을 당시에는 굉장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관객의 호불호가 아주 극명하고 극단적으로 갈렸다. 원작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 영화가 원작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처음부터 영화화가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 싫어했던 것 같다.
영화화하자는 게 제작자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이 소설이 어떤 점에서 영화화될 수 있겠는지 제작자의 의견을 들었나.
영화를 시작할 때 이미 제작자와 각본가가 완성된 시나리오를 나에게 가져왔다.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영화를 만들 때 머릿속에 떠올린 특정한 이미지들이 있나.
영화를 찍는 동안엔 따로 염두에 둔 게 없었지만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태양을 훔친 남자> 등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연상시킨다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스탠리 큐브릭을 좋아하지만 그는 워낙 거장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감히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유려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멜로영화 전문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영상미라는 건 매 영화에 따라 관심이 달라지는 부분이고, 내가 만든 러브스토리들이 일본에서 평가가 높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주로 여성 관객이 내 영화를 보는데, 받아들이기 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쇼와 가요 대전집>은 그런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줬던 영화다. (웃음) 한 카피라이터는 “좋은 시노하라와 나쁜 시노하라가 있는데, 좋은 시노하라는 <첫사랑>의 시노하라이고, 나쁜 시노하라는 <쇼와 가요 대전집>의 시노하라다”라고 글을 썼더라.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인가. 원작을 갖고 만든 영화가 많다.
일본에서는 영화의 원작이 있으면 기획안이 투자받기도 훨씬 좋다. 일본은 소설 문화가 발달돼 있다. 장르도 다양하고 작품성도 높다. 그런 수준 높은 문화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최근 몇년 동안 나에게 들어왔던 기획들이 공교롭게도 그런 종류들이었다는 점도 있다.
11년 동안 18편을 만들었다. 1년에 두편꼴로 만들었다는 얘긴데, 심지어 올해 <심호흡의 필요>와 <천국의 책방-연화>라는 두편의 멜로영화는 한달 간격을 두고 연이어 개봉했다.
그땐 촬영 중에도 정말 바빴다. 조감독 시절부터 치면 내 경력이 20년이 넘는다. 초기에 신세를 졌거나 이후에 알고 지낸 PD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기획서를 들고 와서 같이 만들자고 제안을 하면 거절할 수가 없다. 일단 거절하면 다음 일이 연결도 안 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사람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정말로 기획안이 맘에 안 들 때는 거절을 한다. 마침 최근에 막 통과된 기획안이 내가 하고 싶은 영화다.
어떤 내용인가.
소년의 의문사에서 시작한다. 아버지가 경찰에 호소하지만, 경찰은 듣지 않는다.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범인을 직접 찾아나선다. 그리고 결국엔 찾아내 죽인다. 내용은 무겁고, 조직에 대한 거부감과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한 폭로가 들어 있다. 이게 일본에서는 딱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통과됐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