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는 요동치고 시절은 수상한데, 무희는 춤을 추고 남자들은 그 앞에 스러지더라. “<영웅>이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주제로 했다면 <연인>은 사랑을 위해 대의(大義)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라는 장이모 감독의 이야기처럼, 9월1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연인>은 강호의 소용돌이에서 금지된 사랑에 빠진 세 남녀의 운명을 그리는 애절한 무협영화다. 사실 <영웅>에 대해서는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프로파간다 서사시’라는 혹평들이 쏟아지는 화살과도 같아, 장이모에게는 장만옥과도 같은 기예가 필요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보여주었던 대륙적 무협영화, 그 기골장대한 허세의 미학이란 그저 지나쳐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장이모가 그 미학을 제대로 구축해놓는 데에는 당대의 대가인 무술감독 정소동 없이는 불가능했음이 당연지사. <연인>에서도 정소동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배우들의 애크러배틱 묘기들과 역동적으로 만들어진 액션장면에서 또 한번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장이모’라는 감독의 이름에만 방점을 찍는 것은 영화를 절반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실수가 된다. 그런 ‘무협의 대가’ 정소동 무술감독이 지난 8월11일 <연인>의 홍보를 위해 내한했다. 강남에 우뚝 솟은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스위트 룸, 거기서 정소동 무술감독을 만난 것은 영화감독 류승완(<아라한 장풍대작전>)과 무술감독 정두홍(<아라한 장풍대작전> <태극기 휘날리며> <무사>)이었다.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이 땅에서, 홍콩·중국영화의 장쾌한 허풍을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두명의 마술사가 선배 마술사를 만난 자리였다.
작품마다 새로운 동작 하나씩 집어넣기
류승완 | 한국의 경우 기술적인 직책에 있다가 감독으로 신분상승하게 되면, 또다시 기술자로 돌아가는 일들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당신은 <천녀유혼> 같은 뛰어난 작품을 만든 감독이면서 다시 <연인>이나 <소림축구>에서는 무술감독직을 흔쾌히 맡았다. 두 직함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소동 | 감독도 무술감독도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어차피 다 똑같다. 두개를 병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정두홍 | 그러나 무술감독은 일개 스탭이니까 감독과는 레벨 차이가 분명히 있지 않나.
정소동 | 일을 할 때 스탭과 감독의 차이를 따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일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독과 교류하기 위해서라는 게 전제되어 있으니까. 무술감독을 하면서 좋은 점도 많다. 완벽하게 내 생각을 통제하진 못해도 많은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다보니까 다양한 장르를 해볼 수 있고. 전세계 사람에게 더 많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
정두홍 | 예전에는 힘있고 스피디한 와이어 액션들이 많았는데 <영웅>과 <연인>은 액션에서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장이모 감독의 영향인가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고안해낸 컨셉인가.
정소동 | 장이모의 영향도 있었으나 극본을 보고 영화가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다. <영웅>과 <연인>은 다르다. <영웅>은 날아다니는 장면도 많고 아름답지만, <연인>은 한 동작 한 동작이 힘있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류승완 | <연인>을 보면 금성무가 장쯔이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강력한 발차기를 구사하는데, <생사결>의 왕호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그런 발차기가 나왔던 것 같다.
정소동 | (무뚝뚝하게) 같은 건 아니다.
류승완 | (그런 말이 아니라는 뜻의 웃음) 개인적으로 <생사결>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그 장면이 생각났다.
정소동 | (말을 잘못 알아들은 듯) 그 이후로 100편 정도의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발걸음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해서 똑같이 이용하겠나. 사람은 손 두개, 다리 두개를 가지고 있으므로 한계가 있다.
류승완 | (다시 그런 말이 아니라는 뜻의 웃음) 그저 <생사결>과 <연인>에서의 파워풀한 발차기가 너무 좋아서 물어본 거다. 당신은 원화평과 무술감독계의 쌍두마차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소동 감독의 작품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정 감독의 무술지도는 작품마다 스타일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우삼과 작업할 때는 누아르영화에 맞는 동작들, 서극이나 장이모와 작업할 때는 무협영화에 맞는 동작들을 게다가 주성치 영화에서 보여지는 동작들까지. 작품마다 새로운 동작들을 보여준다. 정두홍과 나는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나, 영화마다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