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류승완·정두홍, 홍콩 무협의 장인 정소동을 만나다 [4]
2004-09-08
글 : 김도훈

한국영화의 상상력 속에서 만들어라

류승완 | 그런 부분에서 사실 많이 부럽다. 한국영화에서 무협/액션 장르를 발전시키려 해도 토대가 되는 한국적인 액션영화가 전혀 없다.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홍콩영화들을 보면서 자라왔다. ‘좀더 성장하면 저런 사람처럼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야지’라는 꿈을 홍콩영화를 보면서 키워온 세대다.

정두홍 | 개싸움 영화를 만들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언제나 ‘정소동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했다. 당신은 그런 내 꿈속에 각인되어 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나는 지금 만나고 있는 거다.

정소동 | 세상에는 수많은 초석과 참고자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다. 남의 것을 보고 배운다! 그러나 만들 때는 그것과 다르게 만든다!

류승완 | 현실적으로 우리가 와이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딱 2작품밖에 없다. 그러다보니까 개인적으로 홍콩의 와이어 액션을 완벽하게 배우고 받아들이고 마스터한 뒤 그것을 어떻게 색다르게 보여주느냐가 고민인 것 같다. <아라한…>에서도 홍콩식 와이어 액션을 다 받아들였다. 하지만 ‘과연 홍콩처럼 과장되게 날아다니기만 할 것이냐 아니면 여기에 리얼리즘 전통의 장점을 어떻게 집어넣을 것이냐’ 하는 고민을 했다. 나도 사실은 리얼한 액션에 자신이 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섞기로 마음먹었었다. 어차피 정소동 감독을 따라갈 수 없는 이상 한국적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색깔, 그게 뭐냐. 홍콩보다는 투박하지만 한국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만든 것이 <아라한…>이다.

정소동 | 필요한 거 있을 때 도움을 청하라. 도와주겠다.

정두홍 | 스탭으로 써달라. 나는 와이어도 잘 당기고 민다. (좌중 웃음)

정소동 | (통역이 조금 잘못된 듯 동문서답) 와이어 액션은 정말 쉬운 거다. 가장 쉬운 것은 창조력이다. 와이어를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어떻게 찍을지에 대한 생각이 끝나면, 와이어는 정말 정말 쉽다.

류승완 | 그런데 사실은, 그 창조력인 생각을 화면에 담아야 하는데 와이어 테크닉이 없어서 못 찍는 경우가 있다.

정소동 | (계속해서 동어반복) 와이어는 정말 쉽다.

정두홍 | (약간 당황) 당신 작업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소동 | (웃으며) 뒤에 함께할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다.

류승완 | <천녀유혼>을 보면서 정소동 감독 같은 사람이 되면 왕조현 같은 배우랑 작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 세대가 왕조현과 가까이 할 수 없어서 탈선한 친구들이 많았던 세대다. (좌중 폭소, 정소동 그저 미소). 음, 어쨌든 <동방불패>에서 이연걸이 검무를 하는데 손끝에 칼을 막 돌리는 장면이 놀랍다. 어떻게 찍었나!

정소동 | 낚싯줄을 써서 했다. 그냥 묶어서…. (류승완, 정두홍 ‘그런 간단한 비밀이!’라는 표정)

정두홍 | <연인>에서 보면 금성무가 장쯔이를 탈출시킬 때 혹시 필름을 거꾸로 돌린 와이어 장면이 있는지.

정소동 | 없다. 그냥 네줄의 와이어선으로 했다.

정두홍 | 네줄이라고? 그것 봐라. 감독님! 절대 쉬운 게 아니잖은가!!!!!(네줄의 와이어선 액션은 매우 복잡한 고난이도의 기술- 편집자)

정소동 | (웃음) 방법만 알면 쉽다. 나도 두세번에 걸쳐 찍었다.

감독 데뷔작, <생사결>은 어떤 영화? 비장한 액션+유머+기막힌 아이디어

10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중국과 일본의 무술대회. 일본 대표로 참가한 하시모토가 결투를 위해 대륙에 발을 내디딘다. 중국 대표는 소림사 출신의 정완이었고, 두 사람을 위시한 수많은 무사들이 결투를 위해 속속 모여든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으니…. 무술대회에 참가하려는 고수들이 모여든 저택의 주인은 일본인의 앞잡이로, 그는 중국의 고수들을 모두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 하지만 무사의 도를 중시하는 사무라이 하시모토도 자국의 더러운 음모에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럼에도 결투에 참가한 하시모토는 중국의 고수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가고, 이를 바라보는 정완은 복수를 다짐하는데….

<생사결>(生死決, 1982)은 정소동의 기념비적인 감독 데뷔작으로 혹자에 따라서는 그의 커리어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작품이다. 관습적인 쇼브러더스 영화의 형식(고수들의 무술대결 컨벤션)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생사결>은 지금에 와서 보아도 대담할 정도로 독특한 향취를 지닌 요소들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숨결마저 과감하게 중국 무협영화 안에 끌어안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커다란 연을 타고 기습을 감행하는 등 ‘닌자’(忍者)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이전의 홍콩 무협영화들에서 보기 드물었던 액션 시퀀스들이 다채롭게 등장하기도 한다(사진 왼쪽).

<생사결>은 한국의 동아수출공사와 홍콩의 골든하베스트가 만든 합작영화인데, 이는 간간이 등장하는 한국 배우들과 로케이션 장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넘치는 비장미로 무협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마지막 결투장면은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에서 촬영되었다(사진 오른쪽).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킬 빌>에 영감을 준 수많은 홍콩·일본영화 리스트에 <생사결>을 올려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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