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류승완·정두홍, 홍콩 무협의 장인 정소동을 만나다 [3]
2004-09-08
글 : 김도훈

중국영화처럼 찍으려 할 필요없다

류승완 | 한국은 기본적으로 리얼리즘 전통이 너무 강해서 상상력을 펼치는 게 쉽지 않다. 대륙의 상상력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김용의 소설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한 상상력. 한명 대 수백명의 대결…. 이런 것을 두고 한국 사람들은 그저 ‘말이 안 된다!’고 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게 어렵다.

정소동 | 중국 문화를 부러워할 필요없다. 한국영화의 상상력 속에서 합리적으로 만들면 된다.

류승완 | (약간 답답한 표정으로)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무협영화를 만드는 매력은, 가상의 세계인 듯하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빗대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쇼브러더스 시절의 영화들을 보면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면, 모든 것을 리얼리즘 전통 안에서 보기 때문에…. 사람이 조금만 높이 떠도 ‘저것은 거짓말’이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정소동 | 그렇다면 아무리 날아다니는 거 좋아해도 날아다니는 건 영화에서 빼라. (웃음) 홍콩영화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관객이 그런 상상력을 받아줄 만큼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나아갔던 거다. 잘 생각해보면 한국영화에도 그런 공간이 있을 거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열 사람에 대항해서 싸우면 말이 안 된다지만 두 사람과 싸우면 말이 된다고 받아들이니.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해나가는 거다. 한명이 열명을 상대하는 장면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장면은 그냥 빨리빨리 넘겨버리고 마지막의 일대일 대결을 멋지게 찍어라.

류승완 | (웃음) 나도 무협영화에서는 마지막 고수들의 대결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찍을 때 너무 힘든 게 한국 무술의 특징은 유려한 동작들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강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많아서 감정적인 부분에 더 많이 집중하는 편이다.

정소동 | 계속 ‘설계’를 해야 한다. 한 장면 한 장면 설계를 해야 한다. 사실 요즘은 영화 찍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한 영화에서 독특한 액션이 나오면 다른 영화들도 다 따라하고. (웃음) 그래서 자기만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정두홍 | 정 감독의 말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는 바로 써야 하나 한국에서는 그럴 만한 틈이 없다. 홍콩 무술은 곡선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나, 한국 무술은 직선적인 아름다움만 있다. 그래서 상체로 하는 액션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홍콩은 와이어를 할 수 있지만. 7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무술감독들에게 와이어를 전혀 못 쓰게 했다. 직선적이고 거친 발동작만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기량으로만 점프력을 키워야 하고, 하체로 하는 액션만을 개발했었다

정소동 | 중국영화처럼 찍으려 할 필요가 없다. 한국도 태권도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무술감독과 감독이 상의해 그런 것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찾아야 한다.

정두홍 | 하지만 홍콩에서 유연한 무협장르가 개척될 때 한국은 개싸움(깡패들의 싸움)이라는 장르만이 발전하고 있었다.

정소동 | 벌써부터 급한 성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처럼 창의력 있는 젊은 세대가 앞으로의 한국 액션영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전통적인 한국만의 느낌으로 포장시켜서 세계에 선보이면 된다. 한국영화가 지금 세계적으로 많이 뜨고 있지 않나. 두 사람의 어깨에 걸려 있다. <화산고> 같은 영화도 대단히 재밌었다.

류승완 | 나는 젊어서 상관없으나 이쪽(정두홍 무술감독을 가리키며)은 벌써 나이가 40이 넘어서…. (웃음)

정소동 | 걱정하지마라. 처음으로 이전 세대와 충돌하는 세대가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한국 액션의 정형성을 붕괴시킨 세대다.

류승완 | 그래도 딜레마는 있다. 문화적인 전통 자체가 그랬다. 한국의 전 세대 감독들은 와이어를 금기시했다. 그것이 사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학적이기보다는 폭력의 영화적 재현처럼 단순하게 발전했다. 우리도 사실은, 액션영화를 하면서도 비폭력주의자고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들인데. (웃음) 홍콩처럼 폭력이 하나의 미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풍토가 부러웠다. 한국의 전통을 깨부수고 그런 미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밑바닥부터 해나가려니까 겪는 어려움이 크다. 중국이나 홍콩의 멋진 배우가 나오면 칼을 멋있게 휘두르는 것에 감탄하는데 한국에서는 칼로 막 사시미 뜨듯…. (웃음)

정소동 | 걱정마라. 출구는 이미 찾았다. 폭력적인 것을 계속 재현하기만 하는 전통에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돌파구를 찾는 것인데. 지금 그것을 찾는 중이라면 이미 성공을 한 것이다. 지금 담화도 그렇다. 좀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찾게 된다. 두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한국 액션영화의 발전을 홍콩과 굳이 비교하지 말고 한국 전통에 먹힐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고민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고민을 영화로 표현하면 언젠가는 한 걸음 나갈 수 있을 게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뿐. 나도 항상 ‘이거 안 된다’라는 느낌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된다’라는 생각으로 하는 거다.

정두홍 | <아라한…>은 어떻게 봤나.

정소동 | 대담하고 창의력이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창의력이 있으려면 대담해야 하는 법이니까. 물론 창조적인 것이 꼭 다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틀린 지점을 계속 고치면 된다.

류승완 | 할리우드에서 작업했을 때는 어땠는지.

정소동 | 불러줘서 영광이었다. 중국의 문화를 미국에 전파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두 사람도 중국이나 홍콩의 액션영화를 배우려 하지말고 한국 문화를 할리우드에 가져가서 전파하라.

정소동은 누구인가?

장대한 무협 세계의 와이어 액션 마술사

<동방불패>
<천녀유혼>

정소동은 무협세계의 숨결을 스크린에 제대로 불어넣을 줄 아는 당대 최고의 무술감독 중 한명이다. 그는 1953년 중국 안미성에서 태어나 홍콩 동방드라마 학교에서 북파쿵후를 수련했다. 그의 아버지는 쇼브러더스에서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던 영화감독 ‘정강’이었고, 정소동이 TV드라마의 무술감독으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것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정소동이 무술감독을 맡았던 첫 번째 장편영화는 아버지 정강의 작품이었던 〈14인의 여걸>. 이후 담가명 감독의 <명검>으로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해 <촉산> <첩혈쌍웅> 등을 작업하며 무술감독으로서는 넘볼 수 없는 대가의 위치에 올랐다. 감독으로서도 홍콩 영화사의 자그마한 챕터를 하사받을 만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은 82년 한·홍 합작영화인 <생사결>이었고 이 영화는 현재까지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후 <천녀유혼>이 흥행과 비평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잡았고, <소오강호> <동방불패1, 2> <진용> 등의 작품을 감독하면서 90년대 홍콩 무협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에서 빛을 발했다. 96년에 연출한 <모험왕>의 실패 이후 무술감독에 주력해왔으나, 곧 할리우드로 건너가 스티븐 시걸 주연의 <벨리 오브 비스트>를 감독했다. 홍콩 시절의 장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최근작들에서는 연출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장이모 감독과 함께 만든 <영웅>과 <연인>으로 그가 여전히 최절정의 기량을 지닌 무술감독임을 입증했다.

정소동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는 또 다른 무술 감독계의 대가 ‘원화평’. <와호장룡>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매트릭스> <킬 빌> 등을 작업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원화평이 정적이고 유려한 (이를테면 할리우드식의 세련된) 와이어 액션에 몰두하고 있다면, 정소동은 장이모와 작업한 두 작품 <영웅>과 <연인>에서 좀더 대륙적인 유장함을 살려낸 동적인 와이어 액션에 심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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