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어온 서울의 유일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건물주인 아트선재센터가 내년 2월의 계약만료시점을 기점으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상태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2002년 5월에 그 문을 활짝 열어, 지금까지 10만명이 넘는 시네필들의 마른 목을 오아시스처럼 채워주었다. 그 유일한 오아시스의 물이 마르길 원치 않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등 12개의 영화단체는 마침내 지난 8월26일 ‘서울아트시네마는 중단없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지속적 운영에 대한 구체적 방안마련을 관계당국에 촉구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악의 상상이지만 만약 서울아트시네마를 위한 적절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제 시네필들에게 남은 장소는 ‘하이퍼텍 나다’와 ‘시네큐브’ 등 몇 안 되는 아트시네마 극장이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도시에 겨우 서너개의 아트시네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근심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하이퍼텍 나다’와 ‘시네큐브’가 그곳을 찾는 관객으로부터 얻어지는 입장수익만으로는 수지를 맞추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사실이 근심을 더한다.
80, 90년대의 대학가. 사설 운영되던 작은 불법 시네마테크들로부터 빌려온 흔들리고 일그러진 비디오 화면으로 목을 축였던 새로운 시네필들의 열망이 있었다. ‘딥포커스’의 미학을 알아볼 수도 없는 조악한 화질이나마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아내고 환호했던 그 시절의 시네필들에게,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의 설립은 마치 꿈을 이룬 듯한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꿈이 현실화되자마자, 또다시 자본의 논리는 꿈을 그저 꿈으로 치환하려는 악을 쓰고 있는 중이다. 위기의 상황에, 파리와 도쿄의 시네마테크와 아트시네마를 유유자적 돌아본 기행문을 싣는 것이 ‘배부른’ 일이라고 한다면, 틀린 지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튼튼한 시스템을 스스로 갖춰가며 성장해온 선진 시네마테크들의 움직임, 그 내부를 탐방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