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파리와 도쿄의 시네마테크 탐방 [5]
2004-09-21
글·사진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자주영화의 기반을 마련한 유로 스페이스의 유통망

△ 도쿄 시부야의 미니시어터를 대표하는 ‘유로 스페이스’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상영하고 있었다. 유로 스페이스는 상영뿐 아니라 영화의 제작, 배급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어서 사무실 한켠에는 갖가지 영화들의 영상자료로 빼곡히 차 있다.

도쿄 시부야는 대중문화의 요람이다. 대중음악의 든든한 저변을 이루는 시설 좋은 라이브 클럽들이 몰려 있고, 시네마테크와 미니시어터가 집중해 있다. 도쿄의 시네마테크가 10여곳이라면, 미니시어터는 29개 극장 40개 스크린에 이르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가 시부야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부야역을 바라보고 있는 ‘유로 스페이스’는 멀티플렉스가 아직 점령하지 못한 도쿄를 사수하고 있는 미니시어터의 대표주자다. 2개 상영관 중 한곳에서 <고양이를 부탁해>가 상영되고 있었다. 지배인 마사토 호조가 “시네마테크 부산의 사무국장 등 2명이 극장 프로그래밍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 보고 싶다고 조금 전 다녀갔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지배인은 극장 설립자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고 설립의 내력만 간추렸다. 1954년생인 극장주는 특별히 영화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지만 독일 유학 시절 뉴저먼 시네마를 즐겨봤고 이들 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도쿄에 별로 없다는 생각에 1977년 유로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프로그래밍을 회고전에 국한하지 않고 신인감독의 좋은 데뷔작을 발굴해 선보인다는 원칙을 양대 축으로 삼아왔고 이것이 유로 스페이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장르 불문, 국적 불문하고 재능있는 감독의 데뷔작을 장기 상영하는데,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나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그렇게 선택됐다. 그런데 마사토 호조 지배인, 솔직하다. “<플란다스의 개>는 관객이 적었는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관객층이 폭넓다. 극장 운영이 재정적으로 진짜 어렵다. 시네필의 숫자도 갈수록 줄어든다. 20년 전이 정점이었으니까.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이 들어도 관객층이 안 보일 때는 포기하고, 반면 아니다 싶은 작품도 관객이 몰리겠다 싶으면 타협한다. 프로그래밍의 기본은 6주간 상영이다. 인기가 높으면 12주로 늘리고 없으면 5주 정도에서 멈춘다.”

좀 부끄럽다는 듯 “타협하기도 한다”고 말했지만 유로 스페이스는 단순한 기능의 미니시어터가 아니었다. 20년 전부터 배급을 해왔고, 6년 전부터는 제작에도 손을 댔다. 직접 배급하거나 제작하는 영화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배급은 연간 2∼3편 선으로 아키 카우리스마키,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오종, 차이밍량 등 외국 감독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흥미로운 건 제작쪽이었다. “영화미학교 출신의 신인감독 중에서 매년 4명 정도의 졸업작품을 제작한다. 물론 저예산이다. 이 작품들은 심야상영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 마쓰오카 조지 등 기성 감독의 저예산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극장 운영도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굳이 제작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해야 한다는 자의식에서 한다. 그렇게 해야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런데 디지털카메라의 확산 등으로 영화 만들기는 쉬워졌으나 영화 환경의 이런 변화가 실제로 좋은 신인감독을 배출하는 기반으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만든 영화미학교 역시 여전히 16mm가 중심이다. 새 매체의 변화에 주목하지 못해 시대 흐름과 잘 조우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두려움 같은 걸 갖고 있는 듯하다.”

선뜻 이해되는 말은 아니었다. 막연히 생각해보면, 일본영화의 주요한 특징인 자주영화의 기반이 이런 미니시어터의 유통망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최근의 일이란다. “시부야만 해도 미니시어터들이 자주영화를 가져다 상영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3년 전부터 완성도 높은 자주영화를 골라서 상영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자주영화의 퀄리티가 부쩍 좋아지면서 제작 편수도 늘어났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그 선두격이다. 이런 감독 덕에 미니시어터가 자주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알레르기를 없앨 수 있었다.”

‘실험영화=이미지 포럼’

△ “실험영화하면 이미지 포럼을 떠올린다”고 할 만큼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미지 포럼의 극장은 모던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상영 중인 <바람난 가족>의 포스터를 걸어놓은 매표소는 갖가지 기념품과 책자를 함께 판다.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유로 스페이스의 반대편에 ‘이미지 포럼’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지 포럼’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오는 10월 일본 문화청 주최로 서울의 메가박스에 열리는 일본 독립영화제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고, 지난 3월엔 ‘한국독립영화 2004-영화의 새롭고 예리한 목소리’란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그때 이곳을 찾았던 김홍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프랑스문화원을 찾아 시네필의 목마름을 채우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이곳의 시설과 운영에 ‘찬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이 아주 근사하다. 라퓨타 아사가야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탐스럽다. 가난한 시네마테크가 어떻게 이런 멋진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원래는 신주쿠에 있었는데 2000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 나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대출로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조건이 까다로운데 운좋게 그 제도의 수혜를 입어 이 건물을 지었다. 지금 그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다.” 프로그램 디렉터 히로유키 이케다는 돈 이야기부터 꺼내드는 이방인의 질문에 조금 곤혹스러워했다. “실험영화=이미지 포럼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71년 설립 때부터 일본 실험영화 상영과 배급에 목적을 뒀다. 일주일에 한번씩 실험영화 상영회를 갖고 1년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실험영화 제작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업료로는 당연히 적자를 보전할 수 없다. 4층 사무실에 이미지 포럼의 운영을 지원하는 두개의 조직이 별도로 굴러가고 있다. DVD 사업을 포괄하는 다케레오 출판사와 2개의 극장 운영이다.”

2개의 극장은 시네마테크와 상업적 성격의 미니시어터로 적절히 활용 중이다. 그중 한곳에서 <바람난 가족>을 상영하고 있었다. 시부야로 이사오기 전 이미지 포럼은 자체 극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오시마 나기사의 프로듀서 출신인 여사장 도미야마 가쓰에는 꽤 오랫동안 데라야마 수지 감독이 운영하는 극단의 극장에 신세져왔다. 데라야마 수지는 실험영화감독이자 아방가르드 연극 연출가이며 시인으로 활동해온 인물. 이미지 포럼이 예나 지금이나 실험영화에 전념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60∼70년대 실험영화 감독이었던 가와나카 노부히로, 스즈키 시로야스 등 9명을 전임 강사로 두고 드라마 만들기가 아닌 영상실험에 중점을 두고 1년에 15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프로그램 디렉터 히로유키 이케다카 역시 이 워크숍 출신이다. 78년 졸업생으로 80년부터 스탭으로 일해왔다. 그는 일본의 미니시어터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오래도록 지속해온 배경에 대해 의외의 답을 내놨다. “80년대 버블경제의 여파였다. 영화에도 거품이 일어 외국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사들여 쏟아냈는데 정작 적절하게 상영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미니시어터들이다. 다행히 큰 영화뿐 아니라 작은 영화도 재밌다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지금껏 생존해올 수 있었다.”

멀티플렉스는 위협적이지만 엉뚱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9개 스크린을 갖춘 롯폰기의 버진 시네마즈는 <스파이더 맨2>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블록버스터를 상영하지만 <아메리칸 스플랜더> 같은 미국 인디영화에 스크린 하나를 내줬다. 미니시어터는 <아메리칸 스플랜더> 같은 영화를 멀티플렉스에 뺏기는 데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새 세대 공간, 업링크 팩토리

△ 카페식 극장으로 운영되는 ‘업링크 팩토리’는 DVD와 비디오를 프로젝트로 상영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비교적 저렴하지만 대신 객석 옆에 설치한 바에서 음료수를 제공한다. 극장 한켠에는 각종 시네마테크와 미니시어터의 전단들이 차곡히 모아져 있어 관객이 원하는 상영 프로그램과 행사 정보를 간단하게 얻을 수 있다.

마지막 방문지로 택한 ‘업링크 팩토리’는 시네마테크도 미니시어터도 아닌 제3의 노선을 걷고 있었다. 95년 문을 연 카페식 극장은 소박했으나 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했다. 체코괴기영화, 일본 에로틱DV, 오키나와영화제 등 영화상영을 주메뉴로 삼고 라이브 콘서트, 퍼포먼스, 사진전, 심포지엄 등 다양한 이벤트를 끊임없이 열고 있다. 마침 ‘국제학생영화제’란 행사를 열고 있었는데 초청강사 명단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올라 있다.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으나 주력은 DVD 사업이다. 그런데 출시하는 DVD가 독특하다. 기획·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가마다 에이지가 도쿄신문사 기자가 미군이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찍고 편집한 <전장의 여름휴가>란 DVD 견본품을 꺼내들고 보여준다. “상업용 DVD를 제외하고는 평균 수치라 할 1천장을 발매할 예정이다.”

업링크 팩토리 역시 정부 지원은 꿈도 꾸지 않는다.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할 뿐이어서 또 하나의 극장 ‘업링크X’ 개관을 준비 중이다. 일명 ‘하드디스크 시어터’. 디지털로 만든 영상물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곧바로 프로젝트로 쏴서 상영하는 방식이다. 매킨토시의 아이포토에 직접 연결해 상영하는 걸 고려 중이다. 이미 운영 중인 디지털무비워크숍의 후속 프로그램 같다. 가마다 에이지는 디지털무비워크숍도, 하드디스크 시어터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사진 촬영을 한사코 사양했다. 프랑스의 어느 현대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기획자로서 부재하는 존재로 남고 싶다.” 자기 철학과 열정으로 넘쳐나는 20대 후반의 가마다 에이지 같은 이들이 라퓨타 아사가야, 유로 스페이스, 아테네 프랑세즈 같은 60·70년대 시네필의 자리를 이어받을 새로운 세대일 것이다. 시네마테크에 관한 한 도쿄가 서울보다 더 희망적인 건 그들 스스로 개척의 발걸음을 멀찌감치 앞질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마다 에이지는 “나에게는 작은 시장의 성향을 잘 잡아내 상품인 동시에 문화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도 “일본 영상산업은 굉장히 세분화돼 있어 틈새시장이 가능하고 우리는 그걸 찾아가고 있다”며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진행·통역=안민화